성소수자 문학이 필요 없는 세상이 오기를
솔직히 말하면 뻔한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소재는 참신하지만, 그러니까 성소수자와 성정체성을 주된 소재로 삼은 점에서 참신하지만, 그 외의 이야기 플롯은 여느 소설과 다를 바 없는 그런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어딘가 사람을 찝찝하게 만드는 못된 버릇을 가진 현대 한국문학의 고질병을 버리지 못한 흔하디 흔한 소설. 다만 주인공이 성소수자이고 성정체성이 주된 소재로 다루어진다는 점에서 가산점을 몇 점 받을 만한 그런 소설. 과거 <대도시의 사랑법>을 읽을 때 느낀 소감과 비슷했다. 과연 성소수자와 성정체성을 정면으로 다루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작품의 문학성을 고평가해야 하는가?
그런데 괜히 아니꼬운 시선으로 이 책을 바라보게 되는 것은, 어쩌면 이 책이 (GPT식으로 말하자면) 나의 **정곡을 찔렀기 때문**은 아니였을까.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내게, 사랑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를 준 것이 불쾌했다. 고등학생 때 깊은 짝사랑의 열병을 앓은 이후로 사랑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기를 멈추었다. 대학생이 된 이후로 연애를 하고 데이트를 하고 섹스를 하기도 하였지만, 그때그때의 감정에 충실하였을 뿐, 사랑이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하려 하지 않았다. 인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할 시간에 그때그때의 삶의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그런 맥락에서.
그래서 나의 연애는 그리 순탄하지 못하였다. 학생 시절 나의 연애는 6개월을 넘긴 적이 없었다. 이따금 1달도 가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섣부른 고백을 내가 후회하거나, 상대방이 후회하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단기간의 간헐적인 연애들이 반복되었다. 연애는 하였지만 과연 사랑을 하긴 한 것인가 싶은 때도 있었다. 어영부영 관계를 이어가다 보니 해야 할 것 같아서 연애를 한 적도 몇 번 있었다. 연애를 하고 싶은 것인지 사랑을 하고 싶은 것인지 혹은 섹스를 하고 싶은 것인지 구분하지 않았고, 구분하는 것이 무익하다고 생각하였다. 더이상 10대 때처럼 사랑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지는 않았지만, 무언가 공허함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직도 사랑이 무엇인지, 연애하는 것이 곧 사랑하는 것을 의미하는지, 사랑과 데이트와 섹스가 어떤 방정식을 이루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랑한다는 말을 어떤 무게로 대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때로는 사랑한다는 말만큼 한없이 가벼운 말이 없는 것 같다가도, 때로는 너무나도 무겁고 무시무시한 말로 느껴지기도 한다. 연애가 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이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사랑이 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히 답할 수 없다. 때때로 밤에 느끼는 외로움과 공허함을 사랑이 해결해줄 수 있는 걸까. 혹은 사랑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것은 아닌가.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면서.
내 인생의 모든 문제와 근심걱정과 외로움과 공허함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이상적인 관념에 '사랑'이라는 이름의 덧칠을 해 놓고 사랑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그러한 사랑이란 인간으로서는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것일 테다. 그저 인간 뇌 속에 흐르는 어떤 신경전달물질이 기묘하게 작용하는 상태에 불과한 것을, 한순간의 설레임에 불과한 것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느끼는 '별 거 아닌 감정들'이 어쩌면 사랑의 실체였던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밤에 느끼는 외로움과 공허함은 평생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동반자인 것인가. 그렇다면 그냥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걸까.
이런 문제들을 외면하고 싶기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는 사랑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이따금 이러한 소설들이 애써 외면해 왔던 내 마음을 다시금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향하게 하는 것은, 이미 피가 멈추고 딱지가 앉은 상처에 다시 딱지를 긁어내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천착하느니 차라리 하루하루 삶에 충실하는 게 낫다면,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천착하는 대신 차라리 그때그때의 감정에 충실하는 것이 나은 것인가. 혹은 그 반대가 되어야 하는 건가.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이 소설은 **핵심을 찌르는** 책이다.
사실, 내가 성소수자와 성정체성의 문제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기에, 통속적인 연애소설과 다를 바 없다느니,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느니 하는 그런 실없는 감상을 늘어놓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대한민국 국민의 과반수는 성소수자와 성정체성의 문제를 '아무렇지 않게' 다루는 데 익숙하지 않다.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성소수자는 뿔 달린 도깨비 같은 존재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사탄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그저 '홍콩행 게이바'처럼 '밈'의 소재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성소수자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나 없다. 그런 점에서 성소수자를 가시화하는 문학은 내용과 별개로 그 가치를 인정할 수 있다.
부디 빠른 시일 내에 '성소수자 문학'이 성소수자를 다루었다는 그 이유만으로 높은 평가를 받지 않는 그런 사회가 오기를 바란다. 이 책이 그저 그런 연애 소설 중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 여자대학이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여자대학이 설립된 것처럼, 성소수자 문학이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성소수자 문학이 큰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 나는 인생이란 무엇인지, 사랑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기보다는 대가리 꽃밭으로 살고 싶으니, 이렇게 **핵심을 찌르는** 책을 읽기보다는 차라리 주식투자를 통해 부자가 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그런 책을 읽고 싶다. 두 번 **정곡을 찌르는** 책을 읽다가는 연휴를 망쳐버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