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일기(3): 사회생활의 예의범절, 어디까지?

by 장파덕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당연히 배려와 존중은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정한 배려와 존중의 형태를 사람들은 '예의'라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예의범절이 때로는 기득권의 통치수단이 되기도 한다. 어디까지나 현대 한국사회는 자유, 평등의 정신에 기반을 두고 움직이고 있다는 점에서, 예의범절은 평등한 시민들끼리 서로 배려와 존중을 갖추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의범절이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거나 기득권이 소수자를 통치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나는 자유와 평등을 기준으로 예의범절의 합리성을 판단하곤 하였다. 예를 들어, 로스쿨 1학년 시절 지도교수님과의 식사자리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지도교수님께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문자메시지를 하면 반드시 아랫사람이 '네 감사합니다.'와 같은 말로 문자를 마무리하는 게 예의범절에 맞는다고 말했다. 나는 곧바로 그 말에 반박했다. 우리나라 헌법에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나와 있는데 어째서 윗사람과 아랫사람이라는 표현을 하시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대사회에서 예의란 평등한 시민이 서로 간에 지켜야 할 배려와 존중을 말하는 것이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지켜야 할 예의라는 말 자체가 오늘날 사회상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분위기가 싸해지고 그 말이 로스쿨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내 귀에 들어오긴 하였지만, 나는 그 말을 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물론 어떤 친구는 '윗사람'과 '아랫사람'이라는 개념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내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엄연히 현실 사회에서는 윗사람과 아랫사람이라는 개념이 존재하고, 그 개념을 부정하면 본인만 사회생활에서 손해를 보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현실적으로는 내 친구의 주장이 타당하기는 하다. 그러나 그 친구의 발언은 현실과 당위의 문제를 혼동하였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구분이 있고 그에 따른 예의범절의 형태가 다르다. 하지만 업무상 관리자와 실무자, 결재자와 기안자, 상급자와 하급자가 존재하는 것과, 전자를 '윗사람', 후자를 '아랫사람'이라 부르면서 인격에 차등을 두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당연히 업무상 상급자와 업무상 하급자는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업무상 필요에 의한 역할 분담일 뿐이다. 상급자의 인격이 하급자의 인격보다 더 고귀하지 않다. 모든 사람은 동등하게 인간적인 존중과 배려를 받아야 한다. 파트너 변호사가 어쏘 변호사가 작성한 서면을 첨삭하고 업무상 지시를 할 권한이 있지만, 그것과 별개로 어쏘 변호사의 인격을 존중해야 한다. 파트너가 어쏘의 인격을 모독하거나 무시하는 발언을 하여서는 안 된다. 이상적으로 보면 어쏘와 파트너 사이에서 예의범절의 벡터값은 0이 되어야 한다. 즉 어쏘가 파트너에게 지키는 예의범절과 파트너가 어쏘에게 지키는 예의범절은 동등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당연히 그렇지 않다. 민간 법조계에서의 예의범절에 대한 강조는 군법무관 시절의 예의범절에 대한 강조보다 몇 배는 더 심각한 수준이다. 그리고 평판조회(레퍼런스 체크)가 일상이고 아무리 변호사 4만명 시대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좁은 바닥인 법조계에서 신입 어쏘 변호사가 조금이라도 '당돌한' 언행을 보인다면 현실적인 불이익을 볼 수밖에 없기도 하다. '그 친구, 개성이 강하더라고요' 한 마디면 될 취업도 안 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내 소신을 지키는 것보다는 내 소신을 조금 굽히고 적당히 파트너들 비위를 맞춰 주는 게 나에게도 조금 편하긴 하다. 굳이 마찰을 일으켜야 좋을 게 없으니까.


입사 두 번째 주에 사소한 해프닝이 있었다. 입사 첫날인 8월 1일은 휴가철에 휴정기다 보니 어쏘, 파트너들 중 절반 정도가 부재중이었다. 우리 팀 사무실을 쭈욱 돌면서 인사드리기는 했지만 많은 파트너 변호사님들께 인사를 드리지 못했다. 그 다음주 월요일에 점심회식이 있었지만, 같은 테이블에 앉은 변호사님들 이외의 분들에게는 인사를 드릴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점심회식 며칠 뒤에 어떤 파트너가 내게 전화를 걸어, '장파덕 변호사는 입사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파트너들에게 인사하러 오지 않느냐. 어제 식사자리에서도 테이블을 쭉 돌면서 인사를 했어야 하지 않았느냐. 파트너들 사이에서 말 나온다.'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신입 어쏘가 파트너들에게 '찍히면' 안 되니까 곧바로 사무실을 다시 한 번 순회하며 파트너분들께 인사를 드렸다. 한 명도 빠뜨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부재중인 변호사님들 명단을 따로 적어서 그 다음날, 다다음날까지 사무실을 계속 순회하며 인사를 드렸다. 나는 입사일인 8월 1일에 사무실을 돌면서 인사를 드렸고, 그래도 절반 정도에게 인사를 드렸으니, 나머지 분들에게는 일을 하면서 차차 개별로 인사드리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전화를 들으니, 파트너들이 다소 과도한 예의범절을 요구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 법조계가 이런 곳이구나. 조심해야겠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평등한 시민과 시민 사이에서, 그리고 평등한 동료와 동료 사이에서 인사를 나누는 것은 너무나도 기본적인 예의범절이다. 그러므로 '새로 들어왔으니 인사를 해라'라는 것 자체가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내가 이미 입사일에 한 바퀴 인사를 돌았고, 다만 그때 부재중인 분들이 좀 많았을 뿐이고, 그 다음주 월요일 점심회식 때도 내가 앉은 테이블과 옆 테이블까지는 인사를 드렸고, 아직 인사드리지 못한 분들은 차차 일하면서 인사드릴 생각이었는데, 내가 예의범절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게으리 하였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쏘와 파트너도 직급상 상급자와 하급자의 관계일 뿐, 어쨌든 '동료 법조인'이 아닌가?


그렇다면 내게 일방적으로 '파트너 변호사들에게 일일히 인사를 드려라'라고 말하는 것은 다소 과도한 의전 요구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인사를 못 드린 파트너들에게 인사를 드리도록 하여야겠지만, 동료 법조인이자 업계 선배로서 파트너들이 내게 먼저 인사를 할 필요도 있는 것은 아닌가. 내 사무실로 전화 한 통 걸어서 '새로 온 장파덕 변호사죠? OOO변호사입니다. 잘부탁해요.'라고 말하는 게 파트너들에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인사는 일방이 타방에게 일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서로서로 나누는 것이다. 옛날의 나였다면 '인사는 서로서로 주고받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하는 게 아니다.'라고 대놓고 말했을 것이다.


약간 옆으로 새는 말이지만, 나는 업무상 이메일을 보낼 때 절대 '장파덕 올림'이라고 마무리짓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평등한데 누가 누구에게 말을 올린다는 표현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적인 관계의 서신이라면 모를까, 공적인 관계에서 어쏘든 파트너든, 팀장이든 팀원이든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상대방이 먼저 '홍길동 올림'이라고 하면 나도 '장파덕 올림'이라고 답장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장파덕 드림'이라고 이메일을 마무리한다. 어떻게 보면 쓸데 없는 자존심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나는 언어가 사고에 미치는 힘을 믿는다. 편지를 올려받으시는 분이 주로 본인의 인격도 올려치기하는 경우가 많더라.


사실 아직도 입사 초기이고, 내 소신과는 별개로 파트너들과 긁어 부스럼 만들고 싶지는 않은 마음이 크다. 예전의 '강성 평등주의자' 시절과는 달리, 나이가 들어가면서 갈등 회피적인 성향이 되었다. 그래서 동료 어쏘분들에게 '파트너가 수고했다는 이메일을 보내면 내가 감사합니다 라고 짧은 답장이라도 해야 하는지', '파트너에게 질문이 있을 때 메신저로 물어보는 게 결례가 아닌지', '파트너가 문서작업을 요구할 때 한글로 작성해야 하는지, 워드로 작성해야 하는지', '법원장이나 부장판사 출신 파트너에게 원장님, 부장님이라고 호칭하는 게 맞는지' 등등 예의범절과 관련된 이런저런 질문들을 많이 던졌다.


그런데 어느 동료 어쏘분이 '파덕 변호사님, 사실 파트너를 조금 무례하게 대한다고 해도 별로 불이익 보는 거 없으니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그 말에 조금은 반성하게 되었다. 내가 예전처럼 예의범절에 대한 나의 소신을 확고하게 견지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너무 비굴하게 나와서도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소신과는 별개로 내가 편하자고, 내가 긁어 부스럼 만들기 싫어서 업무상 상급자(파트너 변호사)들에게 마음에도 없는 과잉 의전을 할 필요는 없겠구나 싶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때로는 현실적인 이유로 소신을 굽힐 때도 있어야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비굴할 필요는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파트너들 입장에서 예의범절이 물론 중요하긴 하겠지만, 어쨌거나 일을 잘 하느냐 아니냐가 더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예의바르지만 무능한 어쏘보다는 조금 까칠하지만 일 잘하는 어쏘를 더 선호하지 않을까. 내가 그렇다고 기본적인 예의범절까지 싹 다 무시하려는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동료 어쏘 변호사님 말대로, 사소한 것까지 예의를 지키려고 고민하는 건 무익한 고민일지도 모른다. 사실 어떻게 따지면 난 지금 회사에서 말뚝 박을 생각도 없다. 3년 정도 일하다가 공익인권 사건을 더 다룰 수 있는 로펌으로 이직할 계획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더더욱 내가 사소한 예의범절에 골몰할 필요가 없다. 3년 계약직이라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할 말은 하고 살아야, 만만한 사람 취급을 안 당하고 살지도 모른다. 사소한 예의범절이나 파트너들의 평판에 신경쓰기보다는, 조금 더 당당한 마음으로 회사생활에 임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다. 사실 파트너 면전에다가 욕을 하는 급의 무례한 행동을 하지 않는 이상 짤릴 일도 없다. 솔직히 한편으로는 예의없다고 불이익 주는 회사라면 짤리는 게 오히려 잘 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떼돈이라 하기에도 어폐가 있지만, 떼돈 버는 데 미련이 있지는 않다. 그저 보람 있게 살고 싶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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