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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떼아리 Aug 13. 2023

05. 이 집안의 휴전선

막내는 힘들어





나는 내 동생이 좋다. 여전히 사랑스럽다.


사실 어릴 때는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한 '아들'이자 내가 뭐든 무조건 양보해야 하는 '동생'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그러나 부모님 없이 둘이 있는 시간이 길었던 만큼, 내가 동생을 험하게 대해도 동생은 나를 쫓아다녔다. 


조금 머리가 큰 후에는 많이 싸웠다. 아마 내가 중학교 1학년 때였을 거다. 싸우다 교복을 찢어 먹었다. 말싸움만 하진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말 힘든 순간에는, 항상 서로의 곁에 있었다.


동생이 엄마와 심하게 싸우고 집을 나갔을 때. 엄마의 전화도 아빠의 전화도 받지 않았지만, 내 전화는 받았다.


나는 혼내지 않았다. 그저 용돈이 충분한지 물어봤다. 잘 곳이 있는지도.


동생은 그날 친구 집에서 자고, 다음날 학교에 갔다가 집으로 하교했다. 





처음 유학을 하러 갈 때 정말 가기 싫었다.

친구들과 떨어지는 것도 낯선 이국땅으로 보내지는 것도.


그런 내가 처음에 버틸 수 있었던 건, 동생 덕이다. 동생은 방학을 포기하고 석 달 정도 나와 함께 있어 줬다. 


낯선 이국땅에 한국인이 나만 있는 건 당연히 아니었는데, 동생과 동갑인 남자애가 몇 번이고 학교에서 말을 걸었었다.


찝쩍대는 말투가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아서 무시했는데 그만두질 않았다. 그래서 진짜 망신이라도 줘야 하나 생각했는데, 같은 날 갑자기 따로 하교하겠다고 한 동생이 얼굴에 상처를 달고 돌아왔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넘어졌다고.


누가 속을까? 누가 봐도 그게 아닌데.


나중에 다른 애를 통해 들어 보니 찝쩍대던 남자애가 내 동생에게 너희 누나 뭐 좋아하냐는 둥 자기가 사귈 거라는 둥 헛소리했다고. 동생은 안 그래 보여도 남이 자기 누나 건드는 거에 상당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언젠가 동생의 친한 친구가 나를 친누나처럼 따르자 그것조차 싫어했던 녀석이니까. 


그래서 싸웠다고 들으니 참 마음이 이상했다. 동생을 혼내고 싶기도 했고, 혼내고 싶지 않기도 했다. 

그래도 동생이 진 것 같지는 않아서 유야무야 넘어갔다.


그리고 동생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함께 밖에 앉아 쏟아질 거 같은 별을 봤다. 동생이 떠나면 나는, 어떨까? 솔직히 우울했다.


아직 중학생이던 동생이 그때 한 말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누나가 어떤 사람이 되든, 지금과 달라지든 아니든. 그래도 누나는 항상 내 누나야."



누나 소리는 잘하지도 않던 녀석이 해준 다정한 말이, 얼마나 스스로 낯간지럽게 느껴졌을까? 중학생 남자애에게 절대 쉬운 말이 아니었을 건데. 그것도 혈육에게는 더더욱.


얼마나 나를 걱정하고 있는지. 응원하고 있는지. 전부 느껴져 한동안 그 말을 떠올리며 많이 울었다. 그게 벌써 15년 전의 일인데 여전히 생생한 걸 보면, 내가 얼마나 감동했는지 대충 상상이 되겠지. 


그러니 내게도, 얼마나 크든, 그냥 사랑스러운 내 동생이다. 뭐든 챙겨주고 싶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사주고 싶고, 누가 괴롭히면 용서가 안 되고, 피곤할까 다칠까 걱정하게 되는. 


어쩌면 가족 중 누구보다 나와 가까운 혈연. 






동생과 나는 생일이 같다. 딱 2년의 차이로. 


어릴 때는 생긴 것도 목소리도 똑같아서 전화를 걸면 부모님이 늘 헷갈리셨다. 


지금도 많은 성향이 닮았고, 생긴 것도 많이 닮았다.


같은 날 태어난 것은 아니어도, 내 동생은 내 반쪽 같다고. 쌍둥이 같다고 자주 생각했다.


약간 다른 결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함께 하지 않는 건 상상도 되지 않는다. 


게다가 동생은 우리 집안의 휴전선이다.


언제나 중립을 잘 지키며 중재도 잘한다. 그것도 양쪽 모두 기분 나쁘지 않을 방식을 찾아서.


이성적이지만, 공감을 못 해주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F와 T가 정말 이상적인 방향으로 섞인 아이. T의 기질이 조금 더 강하긴 하지만, 가족에게는 F 성향을 더 발휘하려고 애쓰는.


말을 아주 살갑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늘 소소한 챙김이 있는.


일을 다니기 전에는 일하고 온 누나의 밥상도 차려주던.


지금도 자기가 제일 늦게 집에 오면서 가끔 누나에게 맛난 걸 사준다. 고기는 무조건 자기가 굽고. 어떨 때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누나를 힐링시키고. 





내가 동생을 좋아하는 건, 주변에서 남매가 그렇게 친할 수도 있냐고 경악하는 것과 다르게, 아주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잘해주는데, 어떻게 안 예뻐하지?


나는 동생에게 아주 오래 용돈을 주고, 밥도 곧잘 챙겨줬지만, 세세한 부분에서 그리 배려하는 편은 아니었던 거 같다.


오히려 동생이 내 기분에 맞춰 행동을 조심했다.


내 말은 꽤 독해서 아예 안 덤비는 쪽을 선택했다고, 다른 사람에게 말한 걸 전해 들은 적이 있다.


그때부터는 나도 말조심을 꽤 했지만, 본투비 T의 감정 없이 나오는 말은 조심한다고 완전히 부드럽게 변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래서 나는 동생에게 늘 고맙다. 악의 없이 못된 말을 하는 누나에게 악의로 대응하지 않고, 살살 기분을 풀어주는 아이.


가끔 그러지 말라고 말할 때조차 내가 좋아하는 논리를 갖추고, 내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애쓰는 아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 세상에 이만한 남동생은 또 없을 것 같다. 


주관적인 관점이긴 하지만, 내게는 내 동생이 세상에서 최고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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