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로 가서 Old Boy가 된 MZ 공무원

한의예과 1학년 1학기의 소회

by 배키


서른둘의 예과 1학년 1학기가 끝났다. 길을 헤매며 돌아온 덕분에 나보다 열두 살이나 어린 친구들과 동기가 되었다. '나락도 락이다'라는 밈을 떠올리며 '띠동갑도 동갑이다'라는 농담을 던지는 끔찍한 상상을 해본다.



MZ였다가 Old Boy였다가

학교 생활에 적응하는데 도움을 준 것은 단연 OB모임이다. 수능을 보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어느 연예인이 한의대에 방문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 영상을 통해서 전국 한의대에는 모두 나사, 즉 '나이 많은 사람들'이라는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이가 많으면 자동 가입이라는 말을 듣고 그저 웃었는데, 막상 들어와 보니 그 '자동 가입' 시스템이 얼마나 의지가 되는지 모른다. 입학과 함께 자동적으로 OB 단톡방에 초대가 된 덕분에 나처럼 숫기가 없는 사람도 무탈히 학교에 적응할 수 있었다. 훌륭한 체계를 갖춰놓은 선배 만학도들께 새삼 감사를 느낀다.


나의 삶은 남들과 속도가 많이 다르다. 회사에서는 어린 축을 담당하며 'MZ사무관'이라고 불렸는데 눈을 뜨고 보니 'Old Boy'가 되어있었다. 나이가 어렸다가 많았다가. 분명 시간은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고 배웠는데, 내 나이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완전 들쭉날쭉하다. 아인슈타인이 그랬던가. 관찰자의 위치와 속도에 따라 시간은 상대적이라고. 인간 사회에서의 시간도 포함인 거냐고 묻고 싶다. 아무래도 이번 생에는 동년배들과 비슷한 속도로 사는 것은 그른 것 같다.


처음 사무관으로 입직했을 때에는 사회에서 확실히 어린 축이었다. 보통의 이십 대들보다 앞선 곳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 같은 얄팍한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그 쾌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차근차근 현장 경험을 쌓으며 올라온 승진 사무관분들을 어깨너머로 보며, 한 겹씩 오랫동안 쌓아온 세월의 지혜를 뛰어넘기는 힘들다는 것을 여실히 느꼈다.


그렇게 아등바등하며 회사를 다니다가 결국 의원면직을 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 남들보다 빨리 가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 그동안 내 머릿속에는 냉정한 계산기가 하나 있었다. 끊임없이 숫자판을 두드리며,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어떤 루트를 밟아나가야 낭비 없이 살 수 있을지 스스로의 삶을 검열했다.


그러나 삶은 달리기 경주가 아니다. 얼마나 효율적으로 살았는지 죽을 때 누군가 나를 평가하는 것도 아니다. 나만의 철학과 취향대로 삶의 궤적을 그려나가면 그만인 것이다. 혹자는 직선보다 곡선이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고도 했다. 아예 동그라미나 별 모양은 어떤가. 어떤 것이든 당신 마음 가는 대로 그리면 된다.



평균보다 늦은 삶


누구든 살다 보면 평균에서 벗어난 시기를 겪는다. 영원히, 인생의 모든 단계를 남들과 똑같은 속도로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나름대로 인생이 고달플 것이다. 그렇다면 머릿속에서 분주히 돌아가고 있는 비교의 계산기를 과감히 꺼보는 것은 어떤가. 그리고 다시는 찾지 못하게 깊은 바다 저편으로 던져버리자.


말은 이렇게 쉽게 하지만 나도 계산기를 완전히 던져버리지 못했다. 버려도 버려도 계속 돌아오는 저주 인형처럼, 머릿속 계산기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조용히 숫자판을 두드린다. 그리곤 결괏값을 내 면전에 들이밀며 '너 지금 이만큼이나 늦었어'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나도 제법 내공이 쌓였다. '뭐 어쩌라고'라고 말하며 가뿐히 무시해 버린다. 그런데도 불안한 마음이 계속해서 커질 때면 몸을 움직인다. 주로 걷거나 뛴다. 몸을 움직이는 것은 잡생각을 없애는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불안함을 느끼더라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예과 1학년 1학기가 끝났다. 앞으로 6년, 평균보다 늦은 삶을 살아갈 거라는 것이 명확해졌다. 다사다난한 캠퍼스 생활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 같은 상반기였다. 비교의 늪에 빠지지 않고 담담하게 첫 줄을 써내려 간 나에게 칭찬을 해주고 싶다. 이렇게 한 줄 한 줄 써내려 가서 좀 더 멋진 어른의 모습으로 졸업을 맞이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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