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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Aug 31. 2022

아마도, 마지막 방학

대학교 4학년생이 여름을 배웅하며

  대학생으로서 맞이한 여름을 순서대로 다시 떠올려 본다.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었고, 다양한 길이 존재한다는 것을 접하는 순간마다 가슴이 뛰었던 시절이 있었다. 동시에 고등학교 시절과 달리, 어떤 수업을 듣든 자신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이들이 흔히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급격히 겸허해진 시기이기도 했다. 세상의 넓이가 주는 위압감에 위축되지 않고, 그것을 노력을 위한 자극으로 변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밴드에 들어가서 동아리 활동을 했을 때는 벽에 부딪힐 때마다 선배로부터 어려운 기타 연주 스킬을 배웠다. 영어로 긴 발표를 해야 했을 때는 밤새도록 대본을 만들어 외우다 한계를 느껴, 아예 근본적인 구사 능력을 키우기 위해 첫 여름방학 동안 영어 학원을 다녔다. 이런저런 시도를 하면서 잠재되어 있던 여러 가지 가능성을 느끼며, 무언가를 배우면서 시간을 풍족하게 만드는 것만으로 즐거웠던 때가 있었다.


  물론 그 가능성이라는 것들은 대체로 부풀다가 어딘가에 구멍이 난 풍선처럼 쪼그라들곤 했다. 시간이 지나며 포기하는 것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스스로에 대한 회의가 커졌던 것을 기억한다. 생각보다 많은 한계에 직면하면서 자신감이 점점 떨어졌고, 진로에 대한 고민과 압박감은 시야를 더욱 좁아지게 했다. 공무원 시험을 본 것도 자신에 대한 확신이 가장 없었을 때 부모님의 권유를 받아 고른 선택지였다.




  대학생이 된 후 겪었던 여름의 색깔은, 무채색으로 일관된 고등학생 시절의 여름과 달리 한 번도 평범한 적이 없었다. 기묘한 운명이 작용한 것인지, 두 해 연속으로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어떤 해든 나름의 목적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미래의 자신이 곁에 있었다면 만류했을 법한 길을 걸었다. 좋게 말하면 여러 길을 밟는 경험을 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한 곳으로 멀리 갈 수 있었던 시간을 낭비한 것이다.


  때로는 과거의 선택을 후회할 때도 있었지만, 그 후회라는 제약에 갇힌 채로 대학생으로서 마지막 여름을 보낼 수는 없었다. 방학 동안의 대학생만큼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성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마지막 여름방학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거듭됐다. 추억을 남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면 이내 마음이 무거워졌다.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을 하고 싶은 것은 당연한 심리였다. 내키는 선택지는 여행밖에 없었지만, 여행을 가기에는 금전적인 여유가 없었다. 그리하여 추억을 남겨야 한다는 의무감은 잠시 접어두고, 1학기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던 두 번째 브런치북 제작에 들어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최대한 빠르게 완성한 다음 남는 시간을 도모하고자 한 것이었다.


  다행히 인근에 공공도서관이 있어 약간의 수고로움만 감내하면, 얼마든지 브런치북의 내용을 구성하는 데에 필요한 책을 구할 수 있었다. 브런치북을 최단시간에 완성하기 위해 스케줄을 완전히 비워놨던 터라, 읽고 쓰는 것에 온 정신을 집중할 수 있었다. 30권이 넘는 책을 한 달여 만에 모두 정독하고 10편이 넘는 글을 작성하는 것은, 대학생의 방학이 아니라면 인생의 다른 어떤 구간에도 도저히 달성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정신적인 에너지 소모를 필요로 했던 브런치북 작업이 끝나고 나서는 한동안 집중력을 요하는 일을 할 수 없었다. 그 틈에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소중한 사람들과의 약속을 잡았다. 비록 남들과는 사뭇 다른 인생 경로를 택함으로써 인간관계의 폭이 많이 좁지만, 넓이를 희생해 두텁게 만든 관계만큼은 반드시 지킨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8월의 타이밍을 놓칠 수 없었다.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지만 서로 다른 대학에 진학하는 바람에 얼굴을 보기 힘들어진 친구들은, 이미 인생의 궤도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체감하면서 자신의 현재에 대한 감상을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 예전만큼이나 불안과 푸념이 섞인 맥주잔을 부딪히면서도, 마지막에 기대와 희망을 북돋우는 말을 전하는 것을 잊지 않으며 다음에는 좀 더 밝은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랐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신세를 진 선생님을 찾아뵙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서로가 그간 겪은 곡절을 말로 풀어놓자 그 끝이 좀처럼 보이질 않았다. 고등학생 때는 공개할 수 없었던 민감한 영역부터 말을 잘 듣지 않는 학생들이 일으킨 해프닝, 그리고 시시콜콜한 스포츠 토크까지 이야기가 꼬리를 물었다. 마지막으로 미래에 대한 덕담이 오갈 때는 제자의 장래에 대해 뼈 있는 조언을 잘해주시던 은사님의 10년 전 그 모습이 겹쳐 보였다.


나중에 다른 길이 가고 싶어지면 대학원도 생각해 보게.
교사도 나름 좋은 직업이라고?

  대학 졸업을 앞두고도 여전히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친구의 하소연과, 이번에도 어김없이 예상 범위를 벗어난 스승의 권유가 작은 마음속에서 공명했다. 자신의 가능성에 대해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선택을 위해 남겨진 시간은 계속 닫혀가고 있었다. 잔여 휴직 기간이 계속 줄고 있다는 것을 의식할수록 미련과 용기, 희망과 불안과 같은 일련의 감정이 뒤섞여 휘몰아치고 있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경험이 축적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경험이 반드시 사람을 좋은 방향으로 성숙시키리라는 법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경험으로부터 잘 배우기만 했다면 지금쯤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 되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몇 년이 지나도 완벽과의 거리가 유의미하게 좁혀지고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지금 모습은 대학교 신입생 시점에 비해 어느 면에서는 나아졌고, 어느 면에서는 나빠졌다.


  20번째 생일을 맞이하기 전에는 노력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고, 일단 무엇에든 달려드는 열정이 있었다. 지금 그런 열의가 남아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그때에 비하면 열정은 범위가 좁아진 대신 휘발성도 줄어들었다. 실패에 부딪히면 다른 길로 돌아가지 않고, 눈앞의 벽을 넘으려 한다. 그리고 상대평가와 성패에 집착하던 과거의 자신은, 도전의 가치와 성숙의 기회를 존중하는 현재의 자신으로 대체되었다.


  과거와 현재, 그 차이의 중심에는 늘 여름 방학이 있었다. 2달 간의 여유가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찬스를 주었고, 때로는 특정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분투하는 시기가 되어줬다. 덕분에 조금 아쉽지만 그럭저럭 만족할 만한 구석도 있는 지금의 모습을 구축할 수 있었다. 그는 네 차례나 찾아와 값진 선물을 주었다. 이제 좀 더 나은 삶을 살며 행복하게 지냄으로써 그에 대한 보답을 해야 할 차례가 돌아왔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여름은 이미 서쪽 지평선에 겨우 걸쳐 있다. 졸업을 앞둔 대학생의 캠퍼스 라이프도 아마도 그 부근에 위치해 있을 것이다. 여름 햇살과 가을바람이 교차하는 기묘한 8월 마지막 날이다. 다시 오지 않을 대학 학기가 눈앞에 와 있다. 그리고 졸업 예정자로서 삶의 중요한 분기점이 그 학기 중 어딘가에 있을 것임을 짐작하고 있다.


  성인이 된 이후로도 정해져 있지 않고 알 수도 없는 미래를 두려워하는 내면을 좀처럼 떨쳐낼 수 없었다. 네 번의 여름방학을 통과하며 일련의 경험을 거친 지금은, 미래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삶은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자신이 있다. 2학기에 무슨 선택을 내릴지 알 수 없지만, 이제는 미래의 자신이 내릴 결단을 존중하고 앞으로 찾아올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일 것이다. 이 삶은 그렇게 이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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