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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Jan 15. 2023

녹색의 무게에 익숙해져야 할 때

친환경의 미래를 위해 넘어야 할 고비들

유럽산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21년 스페인과 이탈리아, 터키, 그리스 등 남부 유럽에서 발생한 산불로 12만 8000헥타르가 소실됐는데 이는 평년 수준보다 8배나 큰 규모라고 한다. 여름철 산불의 규모가 커지고 빈도가 늘어나는 것은 여름 평균기온이 상승하고, 특정 지역의 건조한 기후가 더욱 심각해졌으며, 바람의 강도가 세지면서 산불이 발생하기 좋은 환경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김동양·황유식 著 『ESG 사용설명서』, 마인드빌딩, p.30)

 

  러시아 영토의 2/3에 해당하는 영역이 영구동토층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러나 절대 풀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시베리아 북부의 얼어붙은 땅 곳곳이 녹아 풀어지기 시작하면서, 지역의 건물에 균열 피해가 발생하고 도로가 파손되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미국과 호주, 유럽에서 잊을 만하면 대형 산불이 발생해 광범위한 영역이 소실되고, 북극권의 빙하가 이례적인 속도로 녹아내리며, 영구동토층의 지반이 풀어지는 일 등은 모두 인간의 산업·생활 활동이 가속화한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해석되고 있다.


  21세기 들어 기후 변화에 의한 이상 현상이 점점 파괴적인 형태로 변화하자, 아무리 환경에 무관심한 사람이라도 더 이상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신경을 끄고 살기가 힘들어졌다. 갈수록 뜨거워지는 여름에 대처하기 위해 에어컨을 더 오래 틀게 됨으로써 전기 요금이 더 많이 부과되는 등의 문제는 그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환경 문제가 더 이상 당위 의식, 윤리 문제에만 결부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오랫동안 외부 효과의 일종으로서 이론적으로 그 존재만이 인식되어 왔지만, 이젠 환경 문제로 인한 대가가 누구나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커져버렸기 때문이다. 20세기에 선진국이 석탄 화력발전을 의식적으로 줄이지 않았더라면, 혹은 산업계 곳곳에서 환경 규제가 신설되지 않았더라면 현시점의 지구는 지금보다도 뜨거웠을 것이다.



에너지 소비 구조가 더디게 변화하게 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에너지가 돈과 매우 밀접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품질이 동일한 전기에너지를 소비하는 최종 사용자에게 가격이 20% 비싼 재생에너지원 발생 전기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시장에서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녹색 에너지를 사용하기 위해 전체 전력 생산 비용을 증가시켜야 한다면 국가 전체의 산업 경쟁력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정철균·최중혁·정혜원 著 『넷제로 에너지 전쟁(e북)』, 한스미디어, p.23)


  환경을 배려하고, 사회에 다각도로 공헌하며, 지배구조의 개선을 통해 새 시대 기업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ESG라는 개념이 떠오른 것도 환경 이슈의 심각성을 반영한 변화였다. 특히 생산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업계에 속한 업체들은 갈수록 강해지는 환경 규제의 여파를 감당하고, '공해 유발 산업'이라는 낙인을 지워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가 단위로 미래 탄소중립을 발표하고 탄소 감축 계획이 수립되며,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RE100 협약에 가입한 것은 더 늦기 전에 무언가가 반드시 시작되어야 한다는 의식의 발현이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국가와 기업 측에서 선도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2010년대부터 태양광과 풍력 발전의 효율을 개선하기 위해서 막대한 금액이 투입되어 왔고, 내연기관차에 대한 전기차의 상대적인 매력을 높이기 위해 배터리 성능 극대화에도 수많은 기업과 투자자들의 돈이 집중되었다. 세상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투자에 힘입어 태양광 시장은 2010년대에만 10배 가깝게 성장했고, 풍력 발전의 발전 효율도 어느새 50% 가까운 수준으로 올라 화력발전의 자리를 차지할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그러나 세상이 모두의 바람대로 빠르게 움직이지는 않았다. 현대의 최첨단 기술로도 태양광과 풍력 발전의 효율이 지금보다 폭발적인 수준으로 향상하긴 어렵다. 점진적으로 에너지 시장에서 비율을 확장해야 하는 신재생에너지이지만, 태생적인 에너지 전환율의 한계로 인해 아직도 늘어나고 있는 세계 에너지 사용량을 감당하기 쉽지 않다.


돈과 힘의 논리보다 대의명분을 우선할 용기가 있는가

  환경 보호를 위해 대의를 중심으로 뭉쳐야 할 세계 각국이 반목하고 있는 것도 위험 신호다. 태양광 설비의 핵심 단계인 폴리실리콘, 잉곳 제작에서 가장 왕성한 생산력을 보이는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과 한 판 승부를 벌이고 있는 미국에서는 중국에서 바로 들어오는 것은 물론, 동남아시아를 경유해 미국으로 들어오는 태양광 모듈마저도 수입을 제한하기도 했다. 양대 경제 대국이 투자와 연구에서 협업을 해도 목표를 달성하기 쉽지 않은 판국에, 두 나라의 관계에서 나는 파열음이 앞으로 다른 영역에서도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글로벌 공급망의 훼손으로 현재 많은 기업이 공급망 재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비용 최적인 공급망을 포기함으로써 기업들이 기본적인 비용 상승을 감내해야 하는데, 이 상황에서 환경 개선을 위해 추가적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면 대오에서 이탈할 이가 나와도 이상할 것이 없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던 시절, 미국이 파리 협정에서 이탈했을 때 그들은 아무런 페널티를 받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돈의 논리를 앞세워 함께 거들어야 할 짐을 들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국가가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도 쉽지 않은 미션이다.



…재생에너지 자원이 부족한 나라의 넷제로 플랜에 원자력 발전이 비용 효율적이란 것은 에너지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 국토가 넓고 태양광이나 풍력발전을 하기에 입지가 유리한 미국과 호주와 같은 국가들은 원자력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넷제로의 전환이 가능하나, 한국과 같이 재생에너지 발전에 상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갖춘 국가는 원자력 에너지의 역할이 필수적이란 것이다. 
(위의 책, p. 218)


  중국과 미국이 경쟁적으로 태양광 및 풍력 발전을 확대하고 있고, 오스트레일리아는 넓은 국토를 활용해 신재생 에너지 발전을 구축함과 동시에 수소를 추출할 수 있는 갈탄을 타국에 수출하여 차세대 에너지원의 보급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태양광 발전을 대규모로 할 수 있을 만큼 넉넉한 국토를 가지지 못한 국가도 많으며, 바람이 충분히 불지 않는 국토를 가진 나라도 많다. 가진 지하자원도 많지 않다면 대안이 지극히 한정되어 있기에, 원자력 발전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원자력 발전은 탄소 배출량 감축에 큰 도움이 되는 옵션이다. 태양광 발전이나 수력 발전보다도 탄소 배출량이 적으며, 우라늄의 에너지 밀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신재생 에너지보다 발전 효율이 좋다는 강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자력 발전도 가동 시 방사성 폐기물이 계속 발생한다는 문제가 존재하며, 국토가 작은 국가라면 주민 반대를 피해 발전소와 방폐장의 입지를 선정하는 것도 굉장히 어려운 문제가 된다. 또한, 고도의 기술력을 요하는 원전의 설비와 운영, 매우 비싼 초기 설치 비용은 가난한 국가에 큰 진입장벽이 된다.


  선도적인 기술력을 가진 국가들이라면, 환경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기술적인 대안을 강구할 수가 있다. 그러나 세계엔 아직 경제적으로 꽃을 피우지 못한 국가가 많다. 사하라 이남의 많은 개발도상국들은 21세기에 폭발적인 인구 성장을 예고하고 있으며, 어느 시점에서는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또다시 몇십 억의 인구가 새롭게 급격한 구매력 상승을 경험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의 나아지는 살림은 막대한 양의 에너지 증산을 요구할 것이며, 이는 미래에 대체 에너지원의 생산 효율 한계를 다시 시험대 위로 올릴 것이다.


어느 대안도 완벽하지 않으며 우리의 대안은 계속 시험받을 것이다

  2020년대에 우리는 아직 화석연료로부터 벗어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2050 탄소중립의 중간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태양광 패널과 풍력 터빈의 갈 길이 아직 많이 남아 있고, 순환적인 청정 에너지원 후보로 주목받는 수소는 많은 부분이 연구 단계에 머물러 있다. 모두가 환경의 중요성을 알지만, 그것만으로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뀌기엔 경제성 논리가 너무도 큰 장악력을 갖고 있다.


  환경 보호를 위해 내일부터 더 비싼 전기 요금을 내거나 전기 사용량을 의무적으로 줄이라고 요구받는다면, 그것에 순순히 동의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에너지 효율을 개선할 방법을 찾아내는 것만큼이나 개인의 행동 양태를 변화시키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획기적인 기술의 발전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에너지 전환의 과도기를 지나는 동안 에너지원에 더 많은 돈을 써야 할 것이다. 외부 효과가 회계적 비용으로 전환되는 일련의 과정을 인내하는 것이, 앞으로 10년간 사회가 감당해야 할 최대의 미션이 될 것이다.



탄소중립 정책을 가장 앞서 추진하는 유럽에서는 2019년 12월 '유럽 그린딜'을 발표했다. 유럽 그린딜은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에너지, 산업, 건축, 수송, 친환경 농식품, 생물다양성 등 모든 경제 분야를 포괄하는 새로운 성장 전략이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2030년까지 1조 유로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다.
(『ESG 사용 설명서』, p.300)


  사람들은 오늘보다 풍요로운 내일을 원하며, 그 마음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내일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해야 한다.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기존 에너지원을 더 많이 사용하거나, 에너지 효율이 더 좋은 원료를 계속 발굴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화석 연료가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효용이, 그것을 사용함으로써 우리가 미래에 치러야 할 대가에 역전당하는 임계점이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인류는 그 임계점을 이미 지나쳤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시대적인 도전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친환경에 가장 절실함을 보여주고 있는 유럽이 일관적으로 가장 적극적으로 진보적인 형태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노르웨이에서는 2025년부터 내연기관차의 판매가 금지되며, 영국에서는 이산화탄소 포집 기술의 발전을 위해 인프라 구축에만 12억 달러 투자를 예고했다. 그러나 기후 변화 대처에 가장 의욕적인 유럽에서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수급 불안정으로 인해 가동하지 않던 석탄 화력 발전소를 다시 돌리는 상황에 내몰리기도 했다. 이상과 현실을 일치시키려는 노력은 앞으로도 그다지 순탄치 않을 것이다.


  환경 이슈는 21세기 인류사에서 가장 중요한 테스트가 될 것이다. 과학 기술은 에너지 효율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지 시험받을 것이며, 각국은 지구 기온 상승 저지를 위해 단기적 경제 이익을 희생할 수 있을지 시험받을 것이다. 녹색 세금이 모든 곳에 여러 가지 형태로 부과될 다음 10년을 보내고 나서, 인간 세상이 지속가능성에 가까워졌다고 우리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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