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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훈느 Oct 01. 2021

명동교자와 훈툰(馄饨)의 상관관계

부드럽게 넘어가는 밀가루의 맛

  훈툰(馄饨), 나폴나폴한 얇다란 밀가루피로 빚은 만두를 넣은 만두국이다. 한국의 곰탕처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물을 따르고 티슈를 뽑을때쯤 테이블에 서빙된다. 그 속도가 때론 패스트푸드보다도 빠르다. 맵지도 짜지도 기름지지도 않은 맑은 국물에 말린 새우와 김가루를 얹어서 나오기도 한다. 고추기름이나 양념장을 얹어 먹어도 되지만 오리지널로 간을 하지 않고 먹으면 부담 없이 배도 부르고 값도 비싸지도 않아 아침 식사로딱이다. 그러나 나는 주로 술을 마신 저녁에 집에 돌아가며 문닫기 직전 노점에서 훈툰을 찾아 먹곤 했다.

 훈툰에도 종류가 있다. 우선은 모양에 따라 따훈툰(大馄饨)과 샤오훈툰(小馄饨)으로 나뉜다. 말 그대로 안에 들어가는 만두의 크기가 크냐 작냐를 뜻한다. 훈툰의 앞머리를 잘 살펴 보면 반죽 속에 들어가는 소의 종류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돼지고기(鲜肉), 새우(鲜虾), 표고버섯(香菇) 같은 재료 이름이 먼저, 그리고 

홀랑홀랑한 밀가루 반죽 맛이 좋은 훈툰(馄饨)

뒤에 훈툰 종류가 따라 붙는 식으로 음식 이름을 짓는다. 때론 단일 재료가 아니라 두어가지 재료가 같이 앞머리에 붙기도 한다. 당연한 이치지만 크기가 클수록, 그리고 속에 들어가는 재료가 많을수록 비싸진다. 내가 즐겨 먹는건 고기와 버섯이 들어간 큰 훈툰과(鲜肉香菇大馄饨) 새우만 들어간 작은 훈툰(鲜虾小馄饨)이었는데 둘다 10~12위안 남짓하는 싼 가격에 국물까지 마시면 속이 부대끼지 않으며 든든해 좋았다. 길거리에서 馄饨 이란 간판이 붙은 집을 여기 저기 시도해보며 어디의 국물이 더 맛있는지, 어디의 반죽이 더 부드럽고 홀홀 넘어가는지, 또는 어디의 훈툰이 정말 성의없는지 비교하기도 했다.   

  앞서 써놓았듯 나는 술 마신 다음 집에 들어가며 훈툰을 즐겨 먹었다. 일하면서 스트레스가 많으면 혼자 위스키 바나 칵테일 바에 들러 제일 독하거나 강렬한 것으로 한잔 하고 집에 들어가는 날이 종종 있었는데 달아오른 얼굴을 식힐 겸 좁은 골목을 둘러둘러 돌아 걸어가다보면 꼭 좁은 길가에 한두개씩은 늦은 저녁에도 아직 문을 열고 영업을 하는 국수집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집에 가면 카운터 메뉴판에 어김없이 훈툰도 있어 기어이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하곤 했다.  - 온더록으로 천천히 시간을 들여 마시기 보다는 스트레이트로 깔끔하게 한잔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것을 선호하는 탓에 - 식도와 위장에 훈훈하게 남은 술기운 위에 뜨거운 국물을 끼얹다 보면 오늘 왜 화가 났었지? 내일은 화내지 말아야지. 내일 아침에는 평소 5km 정도만 하던 조깅을 1~2km 만 더 늘려볼까? 두런두런 일과 관계 없는 가벼운 생각들에 화나는 일이 잊혀지고, 호로록 넘어가는 밀가루 반죽처럼 기분도 훌렁훌렁 풀어지곤 했다. 

명동 교자 칼국수 위에 얹어나오는 교자가 꼭 훈툰과 닮았다

 훈툰을 먹을때 마다 생각나는 한국 음식이 있다. 맑은 국물에 담긴 자그마한 만두 조각들일 뿐인데 입안에서 잘 씹지 않고 넘겨도 부드럽게 홀랑홀랑 넘어가는 밀가루 반죽 맛이 꼭 명동 교자 칼국수 위에 네개씩 얹어 나오는 교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여기가 중국 상하이가 아니라 문 닫기 직전의 명동 교자이고, 나는 1층에 혼자 앉아 칼국수를 먹는 것 같다는 망상을 이어가며 VPN 없이 잘 터지지도 않는 SNS 창에서 #명동교자 #칼국수 를 검색해보기도 했다. 10위안 남짓하는 훈툰 그릇엔 사실 명동 교자 칼국수처럼 불내 나는 다진 고기 고명도, 전분기에 진득해진 감칠맛 나는 고기 육수 국물도, 다진마늘이 잔뜩 들어간 겉절이도, 국물에 말아 먹을 수 있는 공기밥이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그냥 아주 비슷한 음식을 먹고 있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희안한 일이었다. 한국에서 일하는 지금도 야근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서 혹시 훈툰 같은 마음을 달래주는 소울 푸드가 없을지 괜히 골목 골목 주변을 둘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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