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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훈느 Oct 01. 2021

만만하지만 든든한 계란 요리들

한끼 간단히 해치우기 좋은 계란 요리들

집에서 밥을 해 먹는단 전제 하에 1인가구 자취인에게 가장 유용한 식재료는 무엇일까? 입맛과 생활 패턴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계란을 빼놓기는 어려울 것이다. 요리법도 다양할 뿐 아니라 보관기간도 길어 한번에 20-30알정도 쟁이기도 좋으며, 어디서나 구할 수 있고 심지어 가격도 적당하다. 물론 초란이나 동물복지 농장 유정란 같은 타이틀을 달고 나온 제품은 비싸다. 어디까지나 마트에 있는, 보통의 양계장에서 출하된 계란을 기준으로 하는 이야기다. 

 중국 파견 기간 동안 나 역시 계란, 두부, 가지, 토마토, 양배추는 항상 떨어지지 않게 준비했었고 다양한 방법으로 계란을 소비했다. 잦은 외식과 음주로 군살이 좀 붙은 것 같을 땐 일주일정도 삶거나 찐 계란 두어개를 끼니 대신 먹었으며, 그냥 한끼 밥반찬이 필요할땐 팽이버섯이나 파를 듬뿍 넣은 계란찜이나 후라이를, 어쩌다 친구를 집으로 부르면 계란물을 몇번이고 부어 팔뚝만치 두툼하게 말아낸 치즈 계란말이를 해 먹는 식이다. 중국 가정식에서도 계란 볶음은 꽤나 다양한 종류가 있으며, 집에서 간편하게 휘리릭 해 먹는 요리이기도 하다. 음식점에 가도 000炒蛋(000계란볶음) 같은 이름의 요리는 메뉴판에 몇줄씩 꼭 있고 가격도 다른 요리에 비해 제법 저렴한 편이다. 밖에서 먹는 계란볶음은 집에서 한것과는 비교도 안될만치 많은 기름에 강한 화력으로 볶아서 그런지 모양도 반질하고 불향이 나 부담없고 계속 당기는 맛이 있다. 그럼 무궁무진한 중국식 계란 요리 중에서도 특히 자주 먹었던 건 무엇이 있을까? 


 계란 볶음은 밥집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저렴하고 흔한 요리중 하나이다. 계란물을 센 불에 볶아서 내어주는데 딱딱하거나 질기지도 않고, 다른 재료와 달걀이 잘 어울려 호불호 없이 누구나 밥반찬으로 먹기 좋은 맛이다. 중국 음식 못먹겠다고 손사레를 치는 친구들도 계란볶음만은 먹을만 하다고 할 정도라 입이 짧은 사람들과 식사할 때 만능 치트키처럼 애용했다. 간혹 이것 조차 느끼하고 냄새나는 것 같고 못먹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경우엔 답이 없다. 어마무시한 까탈쟁이이니 만족시킬 생각을 하면 안된다. 무시하거나, 양식만 먹이는게 답이다. 계란과 함께 볶아내는 재료도 다양한데 부추나 토마토, 잘게 썬 목이버섯, 오이, 수세미 같은 채소를 함께 볶은 요리가 비교적 가격이 저렴하다.  

흔하지만 맛있는 토마토계란볶음(番茄炒蛋)

특히 토마토 계란 볶음은 '토달볶' 이란 이름으로 한국에서도 꽤나 흔한 요리인데 동북식 요리집(东北菜馆)에 갔을 때 특히 자주 주문하곤 했다. 토마토계란볶음은 시홍시차오지단(西红柿炒鸡蛋),또는 판치에차오딴(番茄炒蛋) 이라고 부른다. 앞에 놓인 글자는 토마토, 뒤는 볶은 계란 이란 뜻으로 집에서도 쉽게 해 먹을 수 있다. 중국 친구들은 볶을때 설탕을 좀 같이 넣어줘야 맛있다고 하는데 난 요리할 때 설탕에 인색한 편이라 오로지 소금간만을 고수했다. 탄수화물을 제한하고 충분한 지방과 단백질을 섭취하는 키토제닉 식단러들에게도 인기 있는 메뉴라고 알고 있다. 수분감이 많은 토마토와 부드럽게 볶은 달걀은 확실히 포만감도 있고 영양 구성도 비교적 양호하니 좋은 선택인 것 같다. 토마토계란볶음에는 두가지 스타일이 있다. 하나는 국물을 넉넉하게 잡아 흥건하게 내 놓는 것, 또 하나는 물기 없이 비교적 건조하게 볶아낸 것 인데 토마토 품종에 따른 수분량과 볶아내는 화력에 따라 결과물이 좀 달라지는 것 같다. 밥을 말아먹거나 질척하게 비벼 먹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는 물기 없이 볶아낸 쪽을 더 좋아하는데 집에서 하면 꼭 팬 바닥이며 접시가 흥건해지곤 해 집에서 해 먹기 보단 주로 식당에서 시켜 먹었다.  

왼쪽 앞에 놓인 것이 부추 계란 볶음

부추계란볶음은 내가 가장 즐겨 먹었던 요리 중 하나이다. 지우차이차오딴(韭菜炒蛋) 이라고 부른다. 원래 고기보단 채소요리를 즐기고 파, 부추 같은 향신채를 좋아하니 이만큼 만만하고 맛있는 요리가 없다. 부추를 아낌없이 넣어주는 집에서 시켜 먹으면 일부러 찾아 먹지 않아도 풍부한 섬유소를 섭취하게 되어 배변에도 이롭다. 뭉글뭉글하게 볶은 계란물에 잘게 썬 부추를 잔뜩 넣고 볶는게 끝이라 집에서 해먹기도 간단하다. 토마토 계란볶음처럼 재료에 따라 물이 나거나 뭉개지지도 않고 언제 어디서나 안정된 모양새가 나오니 더욱 만족스럽다. 그렇지만 역시 밖에서 센 불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볶아 낸 것이 훨씬 더 맛있다. 가정에서의 볶음 요리는 절대 식당의 불맛을 따라가기 어렵다. 

이날은 그릭요거트, 약밥을 수세미 계란볶음과 함께 먹었다. 

수세미계란볶음은 중국에 오고 나서 처음 접한 음식이다. 수세미를 먹는 줄 몰랐는데 엄마는 어릴 때 드셔본적이 있다고 하는거 보니 우리나라에서도 수세미를 먹기도 하는 모양인데 정말 중국에서 살기 전까지는 말려서 설거지할때 쓰는 작물이라 생각했다. 저장성 시골 여행 때 시골 요리 (农家菜) 집에서 먹고 반해버렸다. 중국어로는 쓰과차오딴 (丝瓜炒蛋) 이라고 부른다. 쓰과(丝瓜)가 수세미인데 마트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오이와 애호박의 중간 정도 맛이 나는 수세미는 여름이 철이라고 한다. 오이도 호박도 좋아하는 나에겐 싱그러운 물향과 부드러운 계란이 '여름의 맛' 처럼 느껴져 뭘 먹어야 할지 애매할때 마다 여름 내내 수세미 계란볶음을 해 먹었다. 꼭 밥반찬으로만 먹은게 아니라 한접시 끼니로도 많이 먹었는데 요거트에 약밥에 커피와 함께 계란볶음을 먹는 괴랄한 구성으로도 심심찮게 식사했다. 하긴 요거트와 삶은 달걀도 먹는데 볶은 계란을 곁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다. 희미한 맛이 대단히 감칠맛이 폭발하고 맛있는건 아닌데 밥처럼 먹어도 질리지 않아 좋았다.   


 볶음이 아닌 계란요리엔 무엇이 있을까? 요리라고 하기에 거창하지만 계란 볶음이 아닌 먹거리도 다양하다. 우선 아침에 주로 먹는 딴빙(蛋饼)이 있다. 정확히는 계란 볶음이라기 보다는 밀가루 반죽에 계란을 까 넣고 전병처럼 부쳐낸 음식이지만 음식 이름에 계란을 뜻하는 '蛋' 이라는 글자가 들어가고 핵심 재료가 밀가루와 달걀이다보니 빼놓고 말하기는 섭섭하다.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아침 식사를 시켜먹을때 가장 많이 주문해 먹은 음식이기도 하니 대표적인 중국 아침 식사라고 해도 될 법하다.

편의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차예딴(茶叶蛋)

  동그란 계란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 음식으로 차예딴(茶叶蛋)이 있다. 차예딴은 삶은 달걀의 껍질을 살짝 깨 금을 낸 뒤 찻잎, 간장, 향신료를 섞은 물에 삶아낸 요리로 깨진 껍질 틈으로 짙은 색 물이 스며들며 그물같은 무늬가 생긴다. 세븐일레븐이나 패밀리 마트 같은 편의점에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으며 편의점 계산대 자리엔 대체로 차예단이 담긴 솥이 있다. 주문하면 오뎅 바나 전기 밥솥 같은 안에서 국자로 건져 얇은 비닐에 포장해준다. 

양저우에서 먹었던 절인 오리알(双黄鸭蛋)

계란을 소금에 절인 시엔딴 (咸蛋) 도 있다. 달걀이나 오리알을 껍질째 소금에 절인 뒤 먹는 음식인데 감동란처럼 간이 된 삶은계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다만 짠맛이 감동란보다는 훨씬 강해 그냥 먹기는 어렵고 보통 죽이나 밥에 반찬처럼 곁들여서 더 많이 먹는다. 그래서인지 중국의 호텔 조식 부페에 가면 흰 죽 옆에 슬라이스된 시엔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나 역시 양저우 여행 때 아침 식사로 흰 죽에 절인 오리알인 슈앙황야단(双黄鸭蛋) 과 양저우식 편육을 먹은 적이 있다. 탄력있고 짭잘한 흰자와 노른자가 한 대접 가득 담긴 묽은 흰죽과 곁들여 먹기에 어울린다. 우리나라 죽집에서 장조림이나 오징어젓갈을 밑반찬으로 주는 것 과 비슷한 이치인 것 같다. 절인 계란 노른자는 밥 반찬이 아니라 디저트로도 접할 수 있다. 연자육과 함께 가운데 절인 노른자를 넣은 월병은 처음엔 낯설었지만 먹다 보면 단짠단짠한 맛이 은근 중독적이다.


 계란 요리는 만만하다. 언제 어디서나 저렴한 가격으로 접할 수 있는데 맛도 어느정도 약속된 맛이라 실패하기 어렵다. 집에서 할 때에도 간단한 재료로 금방 만들어낼 수 있어 간편하다. 냉장고에서 시들해진 재료를 처리하기에도 그만이며 어느 재료에도 잘 어울려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포만감도 좋아 간단히 한 끼 해결하기에도 좋아 만만하지만 무시할 수 없고 먹을 때 행복하며 먹고나서는 든든하다. 아무래도 오늘은 냉장고 속 팽이버섯을 잔뜩 넣고 계란 볶음을 한접시 해 먹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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