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만 먹어야지 하다가 자꾸만 손이가는 마성의 간식들
우리 집 식탁과 사무실 책상 위엔 작은 종이 박스가 하나 놓여 있었다. 이른바 간식 상자. 밥을 먹긴 애매한데 뭔가 먹고 싶을 때, 너무 열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 내에 일을 해내야 할 때 마다 내 손은 간식상자로 더듬더듬 향한다. 혼자 먹기는 뭐하니 옆자리 사람에게도 인심 좋게 나누어주고, 가끔은 배고픈 동료가 야근하다가 먼저 날 찾아오기도 한다. 어떤 과자는 한국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만큼 흔하고 어떤 과자는 중국 향신료 향이 진하게 나서 껍질을 까자마자 사무실에 냄새가 진동하기도 한다.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가끔 생각나는 나의 불량한 간식 상자엔 무엇이 들어있었을까?
1. 누구나 즐겨 먹어 가장 빨리 소진되는 무난이들.
* 꽈배기 과자 샤오마화(小麻花)
향신료를 즐기지 않는 사람도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간식들이다. 주로 한입거리 달콤한 과자나 캔디류인데 샤오마화(小麻花) 라는 꽈배기 과자가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가 좋았던 것 같다. 중국 음식이라면 질색하는 옆자리 팀장님도 이것만은 즐겨 찾은걸 보니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과자임이 틀림없다.
맛동산과 꿀꽈배기의 중간같은 맛인데 길쭉한것, 짤똥한것, 모양이 다양하다. 맛도 오리지널, 흑당맛, 김맛, 파맛, 마라 맛, 참깨 맛 등 다양한데 오리지널, 흑당, 참깨 맛이 주변인들에게 특히 인기가 좋았던 것 같다. 달콤한 것 보다는 짭잘한 맛을 좋아하는 나는 파맛이나 김맛을 좀 더 좋아했다. 버라이어티 팩, 또는 멀티팩이라 이름 붙은걸 사면 100~200개 정도 소포장된 과자가 봉지에 담겨 배송되는데 다양한 맛을 한 팩으로 맛볼 수 있고 가격도 별로 비싸지 않아 간식 상자를 채우는데 즐겨 이용했다. 다만 먹다 보면 건빵같이 속이 꽉 찬 묵직한 과자라 목이 마르고 배가 불러온다는 단점이 있다.
* 입안에서 톡톡 튀는 탸오탸오탕(跳跳糖)
누구나 좋아하고, 하나로는 어림 없는 간식중엔 탸오탸오 탕 (跳跳糖) 도 있다. 티아오 (跳)는 뛰다 라는 뜻인데 뛰는 사탕. 입안에서 팡팡 튀는 팝핑 캔디를 말한다. 마화처럼 배가 불러오지도 않고 입안에서 탁탁 튀는 맛이 재밌는데다가 알록달록 포장지 그대로 달콤한 과일맛이니 호불호가 갈릴 틈이 없다.
베스킨 라빈스 슈팅 스타 좀 먹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바로 그 맛이다. 봉지를 까 보면 입자가 불규칙한 설탕 덩어리 같은게 들어있는데 달큰한 과일 냄새 혹은 풍선껌 같은 냄새를 풍긴다. 입안에 탁 털어넣기 좋은 자그마한 양인데 잘못하다 목구멍으로 사탕 가루가 튀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목구멍에 튈 경우 엄청나게 사레가 들릴 수 있으니 주의!) 워낙 양이 적어 한두개로는 간에 기별도 가지 않고, 입안에 털어넣었을 때 자글거리며 튀어오르는 느낌 때문에 재미로 먹는 간식이기에 한번에 네다섯 봉지는 기본으로 먹게 되는데 어설프게 10봉짜리, 20봉짜리를 사느니 마음 편하게 플라스틱 통에 담긴 200개짜리를 구매하는게 가격적으로도, 간식상자의 평화를 위해서도 이득이다.
2. 간식과 술안주의 아슬한 경계에 서 있는 헷갈림 템
* 다양한 콩 스낵
내가 가장 좋아하는 타입의 간식들이 여기 포진되어 있다. 짭잘하고 매콤한 맛을 즐기기에 조미땅콩이나 바삭한 칩들을 즐겨 먹는데 각종 콩 스낵도 여기 해당한다. 콩 스낵은 정말 말 그대로 콩을 조미해 가공한 간식으로 완두콩이나 잠두가 일반적이다. 해바라기씨나 호박씨도 가끔 있는데 해바라기씨는 껍질이 붙은걸 와작와작 까먹는게 더 맛있다고 생각한다.
완두콩은 비비탄같이 자그마해서 입에 털어넣고 한번에 와글와글 씹어 먹는 재미가 있고, 잠두는 크기가 크다보니 조금만 집어먹어도 입안이 충족되는 느낌이다. 조미료의 종류에 따라 소금만 뿌린 오리지널 맛(原味), 게알 맛 (蟹黄), 오향맛 (无香味), 바비큐 맛(烤肉味) 같이 여러 가지 맛이 있는데 평소 콩을 싫어하는 사람은 손도 대지 않고, 콩에 거부감이 없다면 꽤나 맛있어 하며 즐겨 먹게 되는 아이템이다. 한 봉지를 사면 12-20개 정도의 소포장된 과자들이 들어있다. 먹다보면 짭잘한 간 때문에 입술이 쪼글쪼글해진다.
* 옥수수알이 콕콕콕. 위미창(玉米肠)
맥주 안주로 즐겨 먹는 안주로 먹태와 노가리, 나초 외에 소세지를 빼면 섭섭해진다. 위미창(玉米肠)은 위미(玉米), 옥수수가 들어있는 소시지인데 상온에 보관 가능하며 익히지 않고 간식용으로 바로 먹을 수 있다.
짤막하고 탱탱한 소시지 속에 옥수수 알이 콕콕 박혀있는데 옥수수 알이 톡톡 터지는 맛이 재미있어서 자꾸 생각나는 맛이다. 10개쯤 소량으로 구매하면 양파망, 귤망같은 빨간 그물에 담겨 오고, 회사 안의 간식 자판기에서 낱개로도 사먹을 수 있었다. 가공육을 소비하는데 전혀 죄책감이나 걱정을 느끼지 않는 나는 장을 볼 때 마다 습관적으로 위미창을 담곤 했다. 그냥 먹어도 배가 괜찮지만 어슷하게 썰어 라면에 넣어 먹어도 맛이 좋아 생으로, 라면 속 부재료로 많이도 먹었다. 한국에 와서 가장 생각나는 간식 중 하나로 이게 갑자기 먹고싶어져 인터넷 중국 식재료 상을 기웃거리기도 했으니 중독성이 상당한 제품이다.
* 술고래여 잔을 들자! 마라땅콩(麻辣花生)
땅콩은 중국에서 접하기 쉬운 재료 중 하나이다. 식당에서 주전부리로 소금 뿌린 땅콩을 주기도 하고 요리나 과자에도 흔하게 쓰인다. 콩과자 처럼 땅콩도 다양하게 조미하고 가공되어 유통되는데 이름만으로 술안주임을 강력히 어필하는 땅콩이 있으니, 이름하여 '술고래 마라땅콩' (酒鬼麻辣花生). 알싸한 마라 맛 조미 땅콩인데 말린 고추와 함께 포장되어 나온다. 유사품으로는 편의점에서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 '황비홍 마라 땅콩'이 있다. 여행자 추천 간식으로도 간간히 소개 되는 제품이다. 술고래마라땅콩은 알루미늄 호일 진공 포장 제품이라 한번 뜯으면 다 먹는 편이 좋다. 양념을 해 기름에 볶은 제품이므로 공기에 오래 노출되면 산패하기 쉽고 눅눅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는 것을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마라와 땅콩에 거부 반응이 없다면 '딱 술안주인데!' 를 외치며 맥주와 함께 금새 다 먹을 수 있는 제품이니 혹시 한봉지를 다 못먹어서 남기면 어쩌지? 보다는 아 오늘 두세봉지를 뜯어서 다 먹어버리면 어쩌지? 를 걱정하는 편이 조금 더 현실적이다.
* 쌀과자 좋아해? 꿔바(锅巴)
꿔바(锅巴) 는 찹쌀 누룽지 과자이다. 찹살을 납작하게 누르고 튀겨낸 과자로 고소한 맛 그대로를 살려 먹기도 하고 다양하게 조미해서 먹기도 한다. 모양도 밥알 모양을 그대로 살린 것, 더 납작하게 눌러 감자칩같이 만든 것, 첵스 같이 그물 모양으로 만든것 등 다양한데 그 중에서도 내가 즐겨 먹은건 싼쥐송슈 (三只松鼠, 세 다람쥐) 라는 브랜드에서 나온 꿔바 이다. 원래는 견과류 가공품으로 유명한 간식 브랜드인데 과자나 젤리, 닭발, 오리발, 내장 같은 각종 가공간식(?)도 다양하게 잘 구비되어 있다. 브랜드의 마스코트인 다람쥐 그림이 그려져 있는 포장이 눈에 확 띄며 식재료에 대한 의심이 강한 중국 내에서도 믿을만하고 품질이 좋은 브랜드로 알려져있다. 여튼 꿔바는 쌀로별이나 바삭한 누룽지를 좋아한다면 능히 좋아할 맛이라 한국 출장 갈 때 팀에 돌릴 간식으로도 제격이었다. 간단한 선물용 간식을 사고 싶다는 사람에게 늘 추천하는 과자 중 하나다.
3. 나만 좋아하는 것 같아. 언제나 상자 바닥에 남아 있는 간식들
* 다들 멸치 안좋아하나? 마라 멸치(麻辣小鱼)
고추장 조림 멸치 같은 비주얼의 간식이다. 마라 향을 폴폴 풍기며 제법 매워 빈속에 먹으면 약간 위가 아려올 정도. 소포장 안에 서너개씩 들어있는데 껍질을 뜯는 순간 주변에 마라 냄새가 알싸하게 풍겨 점잖은 자리에서 먹기는 좀 애매하다.
향신료를 질색 팔색 하며 꺼리는 친구들 앞에서 먹을 때 주의가 필요할 정도. 나는 멸치나 먹태 같은 어포류를 원체 즐기고 열렬한 맵짠 파 이므로 매운게 먹고 싶을 때 애용했다. 멸치 뿐 아니라 좀 더 커다란 (디포리 정도 크기의?) 사이즈의 물고기들도 있고, 오징어도 비슷하게 가공되어 나오기도 한다. 나야 워낙 젓갈같은 짜고 맵고 한 음식을 좋아해서 그런지 거부감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흰밥이 생각날 지경. 실제로 집에서 마땅한 반찬이 없어 밥과 함께 먹어본 적도 있는데 뜨끈한 밥에 얹어 먹는게 그냥 간식으로 먹는것보다 더욱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했다.
* 불량한 쫀드기 맛 라티아오(辣条)
라티아오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뭐라고 해야 할까. 나는 언제나 구운 쫀드기에 라면 수프를 뿌려 먹는 것 같은 맛이라 표현한다. 매우면서 짜고 은근한 단맛이 있는데 먹다보니 한국에 있는 비슷한 간식이 떠오른다. 울산 등지에서 실제로 라면수프를 뿌려낸, 일명 '연필심 쫀드기'를 간식으로 먹는다고 들은적이 있는데 주변에 울산이 고향인 친구가 있다면 유년시절에 먹은 그 맛과 같은지 꼭 한번 물어보고 싶다.
라티아오 역시 봉투를 뜯는 순간 진한 향신료 냄새를 온 사방에 풍기는데 주변 친구들은 웨이롱 이라는 회사에서 나온 제품을 특히 선호했다. 그러고보니 강렬한 향신료 냄새가 인기 없는 간식의 공통 분모인가 싶다. 어쨌든 향에 거부감이 없다면 쫀드기 같은 유연하며 탄력있는 질감이라 씹는 맛이 남다르고 먹을만하다. 모양도 다양한데 국수 같은것, 넓적한 판 모양, 테이프 젤리만한 것, 연필처럼 원기둥 형인것, 작은 정사각형 모양 정도를 본 것 같다. 도수가 낮고 청량감 있는 설화 맥주와 먹으면 특히 잘 어울리는데 건전한 맛은 아니고 확실하게 불량한 맛에 가깝다. 손으로 집어먹으면 손에 양념이며 기름기가 장난 아니라 나는 주로 사진처럼 접시에 꺼내 젓가락으로 집어먹는 편을 선호한다.
* 할미 입맛이 대세인데 대추는 나만 좋아해? 호두 품은 대추
중국 대추는 한국과 완전 다르다. 일단 크기가 압도적이다. 신장 지역에서 나는 왕대추가 유명하다. 한국 대추보다 30% 정도는 큰 것 같다. 크기가 크다 보니 당연히 살이 두텁고, 당도도 매우 높은 편이다. 중국의 대추 활용은 한국보다 약간 더 다양하다.
한국처럼 요리할때 탕이나 찜에 넣어 끓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간식으로도 활용된다. 물론 한국도 떡이나 정과로 대추를 먹긴 하지만 대추 자체를 간식으로 먹는 경우는 크게 보지 못했던 것 같다. 소스라치게 단맛이 아닌 은은한 단맛이 나고, 무엇보다 생리통에 좋다고들 해서 자주 먹었는데 양념범벅에 튀기고 볶은 다른 간식보다는 건강한 느낌이라 비교적 안심하고 먹었다. 물론 당도 높은 과일을 자주 먹는것은 건강에 좋지 않다. 특히 좋아한 대추 간식은 대추 요거트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말길. 먹어보면 정말 맛이 있다.) 밀납대추 (대추정과처럼 씨를 뺀 대추를 설탕에 절여 젤리같이 만든 것) 그리고 호두 품은 대추 인데 호두 품은 대추는 말 그대로 대왕 대추의 속을 가르고 씨를 빼낸 뒤 호두 반알을 끼워 파는 제품이다. 보통 사탕처럼 한알씩 낱개 포장이 되어 나오는데 브랜드마다 대추 크기도 조금씩 다르고 호두가 짱짱하게 끼워져 있는지 헐겁게 끼워져 있는지 정도의 차이가 있다. 뭘 사야 할지 모를땐 대기업 제품을 사자! 는 마인드라 주로 산쥐송슈(三只松鼠) 제품을 주로 구매했는데 퀄리티가 일정해서 만족했었다. 여튼 나는 그 부드러운 단맛과 호두의 고소한 맛을 참으로 좋아했지만 다수의 -한국인 주재원-친구들이 "으 대추 싫어" 하며 손사레 친 기억이 있다. 하지만 또 우리 집안 식구들은 저 간식을 꽤나 좋아했으니 모든것이 그렇듯 캐바캐 사바사 갠취의 영역이다.
이렇게 내 간식 상자를 책임지던 간식들을 인기순으로(?) 소개해보았는데 소개하지 못한 간식들도 너무 많아 아쉽다. 다양한 내장과 부속 가공품, 채소나 해초 절임, 기름냄새가 진하게 나는 과자들이 가득한데 이것저것 도전해본다고 하면서도 끝내 -시간이 없어 - 못 먹은 제품도 있고, 보편적이지만 내가 잘 구매하지 않아 소개하지 않은 간식들도 있다. 혹시나 중국 식재료 상이나 어느 마트 한구석에서 이런 제품을 발견한다면 경계하거나 두려워 말고 한번쯤 도전해보시길 권한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