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훈느 Nov 23. 2021

돈 주고도 사기 힘든 착한 딸 타이틀

엄친딸들만큼만 해보자며 착한 딸을 향한 여정들

 해외 파견을 오며 한가지 약속한 게 있었다. 매일 집에 전화할 것. 카카오 보이스 톡이면 될거라고 생각했지만 중국의 인터넷 상황은 생각보다 좋지 않았고, 유료 VPN을 깔아도 툭하면 카카오톡이나 인스타그램같은 흔하디 흔한 앱이 잘 터지지 않았다. 집안 식구들에겐 짤막하게 위챗을 깔면 카톡처럼 쓸 수 있어. 라고 했지만 중국산 앱은 깔지 않겠다며 거부한 동생과, ID 가 너무 길어 이상하다며 앱을 설치하다가 지워버린 엄마 (위챗을 중국이 아닌 나라에서 설치하다 삭제하거나, 계정 로그아웃을 했다가 다시 로그인 하려면 이만저만 불편한게 아니라 다시 사용하기가 어려워진다) , 그리고 마찬가지로 잘 모르겠다며 어플 설치를 하지 않은 아빠. 원래도 사근사근한 성격은 아닌데 의무감에 매일 좋지 않은 통신상황에서 아침마다 엄마 휴대폰으로 카카오 보이스 톡으로 전화를 하다 보니 자연히 통화 내용은 짧고 연결은 불안정했다. 

 "너는 어쩌면 그러니. 다른 집 애들은 안그런다." 엄마가 늘 하는 말이었다. 오늘은 뭐하냐는 말에 운동하고 밥먹고 회사갔다가 집에 와서 운동하러 갈거다. 라고 무미건조하게 대답하는 나에게 엄마는 통화에 성의가 없다고 늘 서운해했다. 그러나 당시 나의 일과는 정말 단조로웠고, 그나마 낙이 주말에 점찍어둔 카페나 식당에 가보는 것 정도였으니 성의없단 말에 난 그게 아니라 진짜 내가 별 특별난 점 없이 살고 있다고, 한국에서도 집 회사 짐 (GYM) 만 오가던 내가 아니냐고 항변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엄마가 상하이에 오셨다. 당시 나는 휴가내기가 어려울 만큼 바쁜 상황이었고, 상하이 지리며 명소가 숙지되지 않은 상해 살이 한달차였고, 엄마는 늘 여행지에서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먹고싶은 것 이 많은 분이었기에 스트레스가 많았다. 9일동안 퇴근 후와 주말에 뭘 할 수 있을지 일하고 틈날 때 마다 찾아보았다. 이렇게 급작스럽게 길게 말고 짧게 여러번 오지 그러냐고 투정도 했었다. 그때 그 일을 보고 엄마는 아직도 니가 날 반기지 않았다고 거듭 이야기 하신다. 정말 그런게 아니었는데.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 중 내가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아무래도 먹는 것 이었는데, 위생에 철저하면서도 현지인처럼 먹어보고 싶고, 아주 유명한곳도 가보고 싶고, 니가 그냥 자주 가는 곳도 가보고 싶어. 라는 간단한 것 같지만 맞추기 어려운 조건에 따라 나는 몇군데 음식점들을 예약하고, 노점중에 갈만한데가 있을지를 생각했다. 와이탄에 있는 하카산 (Hakkasan)도 그 중 하나였다. 

하카산의 내부는 모던하고 어둑하며 차갑다. 

탕웨이가 즐겨 방문했었다는 딤섬집. 와이탄의 야경을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창가 자리와 모던한 인테리어. 전채로 먹는 간단한 채소 요리 마저도 아름다운 조형물처럼 갖추어 나오는 이 곳에서 엄마는 야경에 반하고, 음식 가격에 놀라고, 채소, 고기, 두부, 해물, 주식, 디저트를 갖추어 2명에 대여섯개의 음식을 주문하는 나의 중국식 음식 주문법에 기겁하고, 샤넬 백 모양으로 귀엽게 만들어져 나오는 튀김 딤섬에 소녀처럼 좋아했다. 다행이었다. 장 조지나 메르카토가 만석이라 예약을 하지 못했는데 이 집을 찾아 정말 다행이라고, 역시 고급은 배신하지 않는다며 나는 진심으로 안도했다. 9일 중 첫 스타트가 나쁘지 않다고, 이대로 가면 우리 둘다 기분 상해하지 않고 잘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가족 여행이 늘 그렇지 않은가. 3일째부터 문제가 생기고 투닥거리는게 대부분인데 싸우지 않고 온전히 9일을 보내는 다소 챌린징한 목표를 세웠던 나는 정말 온 힘을 다해 기분 좋은 일만 세팅하려 노력했다. 


 엄마와 나는 늘 일찍 일어난다. 5시에 일어나는 나도 요즘 애들 치고는 일찍 일어나는 편이지만 엄마는 그보다 조금 더 일찍인 4시반이면 일어나신다. 또 내가 공원에서 조깅을 하거나 수영하는 것 처럼 엄마도 오전 - 이라 쓰고 새벽이라 읽는다. - 에 공원이나 아파트 근처의 낮은 산을 빠른 걸음으로 1시간 가량 걷다 들어온다. 자연히 우리의 아침은 눈을 뜨고, 운동복을 갈아입은 뒤, 체중을 재고, 집 앞의 공원과 동네를 빠르게 걷는것으로 시작했다. 엄마에겐 중화권 아침식사에 대한 몇가지 로망이 있는데 

순두부, 두유, 요우티아오로 이루어진 흔한 아침식사

그 중 하나가 튀김 꽈배기인 요우티아오와 따끈한 두유 도우쟝 이었다. (油条豆浆)이건 어렵지 않다며 공원 옆에 이런거 하는 집 많다며 엄마를 끌고 아침식사 시간 몇시간만 영업을 하는 집에 들어가 순두부인 시엔또우화 (咸豆花) 와 달큰하고 따뜻한 티엔도우쟝(甜豆浆), 그리고 요우티아오 1인분을 시킨다. 그런데 접시가 나올때부터 엄마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니야. 이런거 말고. 길에서 파는거. 그거를 사서 먹으면서 집에 걸어가고 싶다고 하자마자 나는 아차한다. 눈앞의 음식을 먹는것부터가 식사가 아니라 만드는걸 보는 것 부터 식사인 음식들이 있다. 엄마에게 요우티아오는 그런 음식이었다. 아. 그런것도 있지. 내일 아침에 이쪽 말고 시장쪽 출구로 걸으면 그런집 엄청 많아. 하며 나는 눈치를 보며 내일은 꼭 실패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다행히 다음날 시장쪽으로 가서 먹은 요우티아오는 엄마가 생각한 중국식 아침 식사에 딱 들어맞았고 (많은 사람, 대량으로 구매하는 사람들, 계속해서 튀겨내는 반죽, 생각보다 깨끗한 기름 상태) 나는 거듭 안도하며 뜨끈한 꽈배기를 손에 쥔 채 우물거리며 저건 민물새우고, 저건 육포같이 말린 고기고, 저건 왕만두같지만 안에 아무것도 안들어있는 밀가루 빵이고, 중국말로 만두라고 하면 속에 아무것도 안들어있는 거니까 만두가 먹고싶으면 빠오즈나 쟈오즈를 찾아야 하고, 저건 상해에서 많이 먹는 셩지엔바오(生煎包) 라고 아래는 지지고 위는 스팀으로 쪄지는 만두인데 엄청 맛있다. 같은 설명을 속사포같이 해댔다. 엄마는 너가 여기 있는 동안 저런거(밀가루, 튀김, 밀가루를 튀긴 음식) 많이 먹으면 살이 엄청 찌는거 아니냐 먹는거 조심해라. 하면서도 저 채소는 뭐냐, 저건 왜저렇게 크냐, 과일은 원래 맨날 이렇게 다양하게 파냐 하며 말을 이어갔다. 아침 시장의 활기차고 복작한 모습이 싫지 않은 눈치였다. 그러다 우리 눈에 지엔빙(煎饼果子) 이 들어왔다. 

엄마가 원했던 바람직한 요우티아오의 상태 

이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아침식사인데 산동지엔빙(山东煎饼) 이라고 하기도 하고 지엔빙 꿔즈 라고 부르기도 한다며 하나 사서 반씩 먹어보기를 청했다. 커다란 철판에 반죽을 얇게 두르고 소스를 휘휘 발라 재료와 함께 순식간에 말아내는 중국식 크레페에 엄마도 관심을 보이며 저거 tv 에서 본것같다고, 우리도 뭐 많이 넣지 말고 제일 기본으로 하나 사보자고 한다. QR코드를 찍고 돈을 지불하자마자 주인 아저씨가 놀라운 속도로 반죽을 휘휘 편 뒤 계란을 까 넣는다. 매운 소스 넣을거냐고 무심하게 물어보면서. 나는 괜찮다고 먼저 대답한 뒤 매운맛 괜찮지? 하며 엄마에게 묻는다. 이미 자기가 다 말해놓고 뭐하러 물어보냐며 엄마도 웃는다. 저건 감자채고, 저건 해초고, 저건 뭐야, 이건 뭐야, 저 소스는 뭐야, 저 안에 넣는 판데기 같은건 뭐야? 하며 엄마가 묻는다. 

바삭한 궈즈와 채소 조각만 들어간 지엔빙 

나는 감자채 맞는데 여긴 감자채볶음에 식초를 넣어. 저건 해초 맞고 넣어서 먹어본적은 없어. 이건 잘게 썬 쪽파고, 저건 잘게 썬 깍지콩이고, 저건 중국집에서 밑반찬으로 나오는 자차이 이고, 저 소스는 잘 모르겠는데 해선장 같은 맛이 나는 것 같아. 하고 대답하는 사이 어느새 솜씨 좋게 반으로 턱 갈라 비닐에 포장된 지엔빙이 손에 들린다. 또띠아 같은데 훨씬 얇고 크레페 같은데 바삭하고 안에 들어간건 과자같이 바삭하네? 하며 엄마가 평가를 한다. 역시 이것도 제법 마음에 든 눈치다. 내일 아침엔 이거랑 비슷한데 달걀 더 많이 들어간 단빙(蛋饼) 먹으러 가볼까? 하니 엄마가 아니. 나 총요우빙이나 쇼좌빙 먹고싶어. 대만 여행 tv 프로그램 에서 봤어. 하고 무뚝뚝하게 대답한다. 아무래도 잘하는 총요우빙 노점을 찾아야겠다며 나는 남은 요우티아오와 지엔빙을 입안에 밀어 넣으며 어디 총요우빙 맛있는 집 있냐고 친구들에게 sos 문자를 쳤다.       


그렇게 지엔빙 다음날 먹은 총요우빙.

아침 식사 이야기를 상당히 많이 써놓았지만 아침 노점만 우리가 줄창 방문한 것은 아니었다. 주로 저녁엔 유명하다는 집, 예약 없이는 들어갈 수 도 없는집, 대기가 2시간이 넘어 적어도 2-3시간 전에 대기표를 받아야 하는 집들을 도장깨기 하듯 돌아다니며 배불리 먹었다. 뭐 이런걸 줄서서 먹는다니. 이걸 두명이 어떻게 먹는다니. 라고 핀잔하면서도 엄마는 그래도 니가 애쓴다. 돈 많이 써서 어쩌니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고. 난 상해식 갈치조림이나 게살 두부나 파기름 비빔면같은건 한국 가면 없잖아. 하며 최대한 많은 음식을 주문했다. 상해에 일본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일식 데판야키 집도 괜찮다며 불쇼를 거듭하는 철판 요리집에 가기도 하고, 아빠랑 동생은 이런거 못해서 너무 아쉽겠다며 제법 잘한다고 소문난 양식집에서 하우스 와인잔을 부딪히기도 했다. 그럭저럭 제법 괜찮은 시간을 보내고 엄마는 그렇게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다. 나도 후. 미션 클리어! 를 외치며 아쉬움과 홀가분함이 공존하는 이상한 기분을 느끼며 빈집에서 그간 너무 많이 마시는거 아니냐는 소리에 자제하던 커피를 맥주잔에 잔뜩 내려 호쾌하게 들이켰다.  


그리고 그 다음 날 통화. 집에 잘 들어갔냐 안피곤하냐는 말에 엄마는 대뜸. '넌 어쩜 그렇게 정이 없니. 아빠랑 동생 데리고 오란 소리도 안하더라. 다른 집 애들은 안그런다.' 라고 한소리 한다.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아니 우리 좋았잖아. 지금 이게 할 말이야? 라고 항변하니 어쨌든 다른 집 애들은 안그래. 얼마나 애들이 싹싹하고 잘하는데. 하는 말을 귀로 흘려들으며 나는 지난 9일동안 내가 지불한 (나 혼자 쓴다면 2달 식비는충분히 될 만한 금액의) 액수와 그간 어딜 갈지 에둘에둘한 시간들을 생각한다. 역시 착한 딸 타이틀은 돈 주고도 사기가 힘들다며. '난 원래 그래. 다른집 애들이 마음에 들면 걔네를 데리고 살아~ 그래도 걔네가 이렇게 중국에서 엄마 데리고 다니면서 편히 다니게 할 수 있진 않을거야' 라고 태평하게 답한다. 남의 집 애들은 대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 그래도 나는 안다. 중국에서 복귀한지 한참 된 지금도 엄마가 가끔 그떄 그 또우쟝에 그 요우티아오같은걸 안산에서 판대. 가볼까? 하는거 보면 엄마도 그때 그 시간이 꽤나 재밌었음을.    


작가의 이전글 찬바람이 불면 털게를 쪄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