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상하이 외노자의 국수처럼 훌훌 읽힐 푸드 에세이
사무실에 출근해보니 모르는 위챗 방 하나에 초대되어 있다. 중국의 카카오톡과 같은 위챗은 여느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와 크게 다르지 않고, 그 사용방법도 간편할 뿐 아니라 친구 추가도 QR 코드 하나면 순식간에 이루어져 나도 모르는 사이 수많은 친구 리스트를 가지게 된다. 함께 일할 부서에 자기 소개와 함께 내 위챗 QR 코드를 이미 이메일로 공유했으니 모르는 채팅방에 초대되는건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일. 다만 채팅방의 이름이 좀 이상하다. “有人一起点蛋饼么?(누구 단빙 같이 주문할 사람?)” 누가 봐도 업무 목적의 방은 아닌 것 같고 단체 광고 방에 들어온건가 싶다. 채팅창을 살펴보니 스무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죄다 한자반 영어 반의 닉네임들 뿐이라 누가 누구인지, 이게 무슨 목적의 채팅 창인지 도무지 알 수 가 없다. '이게 뭐지?' 하며 주변을 둘러봐도 아직 출근한 사람은 한국 출근 시간에 맞춰 현지 직원들보다 한시간 일찍 8시반에 일터에 나와 자리에 앉아있는 영업팀 주재원 팀장님 한명 뿐이다.
곧이어 링크 하나가 채팅 창에 올라온다. 饿了么 (어러머) 라는 배달 음식 링크이다. 有人一起点外卖么?(같이 배달 주문 할까요?) 라는 링크를 보고 그제서야 감이 온다. 한국어를 좀 할줄 안다는 직원이 나에게 다가와 설명했던 일명 '아침 단톡방' 인가보다. 그 친구 말에 의하면 다들 아침에 잠이 많아밥을 챙겨 먹고 회사에 출근할 여유가 없고, 당연히 오는 길에 뭘 사올 시간도 없으며, 혼자 아침으로 배달을 시켜봤자 아침에 먹는 메뉴의 비용이 뻔하니 배달료를 아끼기 위해 마음 맞는 친구들이 모여 회사에서 아침 식사를 단체 주문 하는 방이 하나 있다고 했다. 나도 생각이 있으면 초대하겠다는 얘기를 했는데 웃으며 "네 좋아요" 라고 하자마자 바로 다음날 초대가 된 것이다. 추진력도 친화력도 좋은 친구다.
9点05看看能不能开车 (9시05분에 주문해도 되겠죠?) 라고 이내 글이 하나 또 달린다. 주문 마감 시간이다. 9시 5분까지만 링크에서 원하는 음식을 주문하면 된다. 물론, 배가 고프지 않다면 무엇도 주문하지 않아도 된다. 오늘 내가 다른게 먹고 싶으면 다른 링크를 올려 사람들의 의견을 물어도 된다. 한마디로 취존이 좀 되는 채팅방이다.
다들 아침으로 뭘 먹나 메뉴가 궁금해 나도 링크를 타고 들어가본다. 小桃园 (샤오타오위엔) 이라는 흔한 아침 식사 체인이다. 메뉴를 보니 두유, 만두, 죽, 주먹밥, 면, 두부, 단빙, 지엔빙 같이 흔한 중국식 아침식사 들이 가득하다. 지엔빙 (煎饼)을 워낙 좋아해 이걸 하나 시켜볼까 하는데 속속들이 들어오는 주문들을 보니 대부분 단빙(蛋饼)을 두유와 함께 시킨다. 아무래도 이 집은 단빙 맛집인 모양이다. 뭐가 뭔지 모를땐 사람들이 많이 하는걸 따라하면 중박 이상은 친다고 믿는 나이기에 마음을 바꿔 베이컨이 들어간 단빙(培根蛋并)을 하나 시켜본다. 돈을 어떻게 지불해야 하나 그냥 이 방에 위챗페이로 보내면 되는건가 고민하고 있는데 이내 또 메시지가 온다. “一人-2元哈(인당 -2위안)" 단체주문 금액에 할인이 붙어 인당 지불할 가격이 싸지는 모양이다.
나도 주문한 금액에서 2위안을 제하고 돈을 보내려는데 재빠르게 채팅창에 봉투들이 올라온다. 다들 정신 없이 바쁜 출근길이지만 식사 주문과 정산에는 군더더기 없이 신속하다. 나도 12위안에서 2위안을 제한 10위안을 재빨리 단체 방으로 보낸다. 순식간에 채팅방에 줄줄이 홍바오(红包,돈봉투를 일컫는 말로 물리적 용돈봉투, 모바일로 전달하는 페이 금액을 통칭. 여기서는 위챗 페이로 전송된 돈을 뜻한다) 가 들어찬다. 짤막한 고맙다는 인사와 이모티콘도 함께 들어선다. 사무실은 아직 텅 비어있는데 채팅창은 왁자지껄 요란하다.
9시반쯤 되었나 이거 니가 시킨거 맞지? 하며 한 친구가 비닐봉투를 책상에 두고 간다. 내가 주문한 베이컨 단빙이 도착했나보다. 묽은 밀가루 반죽에 계란과 채썬 파를 올린 뒤 재료를 넣고 접어낸 단순한 음식인데 단순한 조리법에 비해 맛이 꽤 좋고 배도 불러 오래 전 대만 출장 때도 잘 먹었던 음식이다. 종이에 싸인 단빙이 담긴 비닐봉투가 제법 뜨끈하다.
기름 냄새가 물씬 올라오는 비닐봉투 채로 단빙을 베어 먹으며 일을 하고 있으니 내 맞은편에 앉은 영업팀 주재원 팀장님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내게 다가온다. "니 벌써 애들이랑 이런거 시켜먹나" 가리는 음식이 많아 중국에 온지 몇년 되었지만 로컬 음식을 거의 먹지 않는다는 그가 강렬한 경남 사투리로 묻는다. "네 저 이런거 좋아해서요. 지엔빙도 좋아하고 셩지엔도 좋아하고. 좀 드실래요?" 하니 손사레를 치며 머리를 도리도리 하고 자리로 돌아간다. 이 브랜드에 오래도록 유일한 한국인으로 있었던 그는 내가 온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꽤 기뻐했다고 한다. 아마 그의 기쁨엔 점심시간에 함께 한식이나 일식을 먹으며 중국 음식 못먹겠다고 한탄할 사람이 조만간 생길 거란 계산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점심시간마다 로컬 음식점을 도장깨기 하듯 찾아다녔으며, 점심 뭐 먹었냐는 말에 듣기만 해도 그가 몸서리치는 음식 이름들을 줄줄 읊었고, 당연히 아침 식사도 거의 빼놓지 않고 직원들과 어울려 매일 시켜 먹어 그의 기대를 무색하게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파견 후 출근 일주인 째에 "너도 같이 시킬래?" 라는 짤막한 말과 채팅방의 링크가 나에게 준 의미가 무엇인지 그는 아마 영원히 이해도 공감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만두 4개, 단빙 1개, 지엔빙1개, 두유 1잔을 싸게 주문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너도 이제 우리 사람이야' 라는 소속감과 인정이었고 밥을 나누어 먹는 사이가 되었다는 가벼운 우정의 표시였으며 외로움을 이겨내고 앞으로 잘 지내볼 수 있을 것 같은 용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