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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훈느 Oct 01. 2021

저마다의 국수 취향, 닭 내장 면(鸡杂面)

'구' 상하이 외노자의 국수처럼 훌훌 읽힐 푸드 에세이

 어제 술을 많이 마셨으니 오늘 점심에는 해장이 필요하다고, 국물 있는 면 먹으러 같이 가자고 수년 전 부터 안면을 튼 친구가 자리로 다가와 말한다. 출장으로 회의실이나 행사장에서 하루 이틀 정도만 마주치던 Johanna 가 이제 상하이 와서 일한다고 마련한 사적인 환영회였다. 이미 이직해서 자리를 잡은 옛 동료와 아직 회사에 남아 브랜드를 지키고 있는 친구까지 대여섯명이 모인 술자리는 복작복작하고 거했다. 사실 나는 숙취가 없다. 주량이 좋아서가 아니라 숙취가 올 만큼 술을 먹지 못해서, 그렇지만 술 마신 다음 날 국물 있는 음식은 숙취와 관계 없이 반가우니 '완전 좋아!' 하며 냉큼 휴대폰을 들고 따라 나선다. 

흔한 면관의 메뉴판. 일인분 가격과 메뉴만이 빼곡하다

 입구 카운터 뒤편에 걸려있는 메뉴판을 보며 주문과 결제를 한번에 마친 뒤 번호표를 받아 자리에 앉으면 음식을 가져다주는 중국의 흔한 작은 면관(面馆)시스템. 빼곡한 메뉴판엔 영문 병기도, 어떻게 생긴 메뉴인지 그림이나 사진도 없다. 오로지 국수 이름만이 가지런히 적혀 있을 뿐이다. 얼핏 보니 외국인 손님도 한명도 없는 것 같다. 여기는 지자미엔(鸡杂面) 이 정말정말 맛있다고, 한번 먹어보라며 친구가 추천한다. 메뉴를 좀 더 탐구해보고 싶었지만 붐비는 점심시간에 계산대 앞에서 천천히 메뉴를 읽어보기엔 뒤에 잔뜩 줄 선 손님들 눈치가 보여 얼른 친구 추천을 따라 주문한다. 좀 매울 수 도 있다며 음료를 꼭 같이 시키라는 친구 말에 '나 매운거 잘 먹는 한국인이야' 라고 생각하면서도 얼른 병에 든 두유도 뜨거운걸로 하나 추가한다. 

 

 鸡杂面(지자미엔), 이 음식을 뭐라고 소개하면 좋을까. 닭 내장면? 닭 내장탕면? 국물이 있는 버전도, 없는 버전도 있으니 닭 내장 고명 면? 정도가 가장 적합할 것 같다. 닭똥집으로 흔히 알고 있는 모래집이니 창자니 하는 닭 부속물을 잘게 썰어 맵게 양념해 볶은 뒤 탕면이나 비빔면에 고명으로 얹어주는데 섞지 말고 따로 달라고 하면 작은 그릇에 따로 담아 주기도 한다. 친구는 늘 그렇게 한다는데 나도 그냥 따라서 고명을 따로 달라고 조심스럽게 주인에게 부탁해본다. 

유리병 두유. 레트로한 외관과 달큰한 맛에 매운거 먹을 때마다 자꾸만 손이 간다. 

   자리에 앉아 길쭉한 유리병에 든 두유를 한모금 빨아본다. 부드러운 두유 끝에 희미한 단맛이 퍼져 온다. 이런 음료를 오늘 출근길에 노점에서도 본 것 같은데 그건 초코맛이었나 아닌가 같은건가 하는 생각을 하다 보니 무서운 속도로 면이 세팅된다. 통통한 중면 위에 청경채가 몇줄기 올라가 있고, 고수를 얹은 닭 내장 토핑이 작은 그릇에 함께 딸려온다. 고수도, 매운것도, 향신료도 좋아하고 어제 신나게 술까지 마신 나는 매콤한 기름 냄새가 스물스물 오르는 토핑을 와르르 그릇에 쏟아내고 한데 섞어 국물 부터 떠 마신다. 상하이 토박이인 친구는 고수를 전혀 먹지 않아 아까도 고수와 파를 빼 달라고 신신당부했는데 고수 잎사귀 몇개와 채친 파가 조금 딸려 왔는지 콧잔등을 주름잡으며 젓가락을 들고 초록 조각을 골라낸다. 친구가 날 보며 어떻게 샹차이를 그렇게 잘 먹냐고, 한국에서 출장 온 사람들은 다 안좋아하던데 너는 진짜 특이하다며 놀라워한다. 

주문하고 10여분 안에 나오는 신속 서빙 시스템

 매끄럽고 동그란 형태의 쌀국수는 부드럽게 입안에 빨려 들어오면서도 힘들이지 않고 뚝뚝 끊기는게 소화가 잘 될것 같은 맛이다. 베트남 쌀국수 집에서 흔히 파는 납작한 면보다 더 무르고 부드러운 느낌이다. 닭 내장 외에도 절인 고추와 생강, 마늘이 듬뿍 들어 매콤 짭잘한 고명이 부드러운 면발에 섞여 맛을 더한다. 짜고 매운 것, 그리고 뜨거운 음식을 좋아하는 나는 '와 이런 음식이 다 있나. 심지어 상하이 중심가에서 국수 한그릇이 20위안 밖에 하지 않다니 완전 꿀이다. 자주 와야지. 다음엔 비빔으로도 먹어봐야지. 저기 메뉴에 있는거 다 먹어봐야지.' 라고 생각하며 입과 손을 바쁘게 놀린다. 콧등과 이마와 목 뒤로 스멀스멀 땀이 솟고, 땀구멍 하나 하나에서 어제 마신 설화 맥주 (雪花啤酒) 기운이 죄다 빠져나가는 것 같다. 난 분명 면보단 밥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말이 무색하게 그릇이 금새 비어버린다. 

  그 뒤로 딱히 점심 메뉴가 생각나지 않아서, 날씨가 흐려서, 비가 와서, 어제 술을 마셔서, 깜박하고 도시락을 챙기지 않아서, 혹은 그냥 생각나서.... 실로 다양한 핑계로 친구와 면집을 들락거렸는데 식사가 반복되면 될수록 우리의 국수 취향은 판이하게 갈렸다. 

닭 내장 고명에 깨소스와 간장, 식초를 넣어 비벼 먹는 麻酱鸡杂版面 (마장 지자 반미엔)

국물을 즐기고 고수와 마늘을 먹지 않는 친구는 첫날 먹었던 것 처럼 언제나 고명을 따로 받아 조심 조심 가리는 내용물을 골라가며 담백하게 먹었다. 계란후라이나 채소 반찬을 몇가지 추가 하는 경우는 있어도 언제나 메인은 늘 그 메뉴였다. 반면 나는 깨소스와 고명, 흑식초를 한데 버무려 비벼 먹는 반미엔(版面, 비빔면을 통칭)이나 시큼하고 얼큰하며 화한 맛이 나는 시뻘건 솬라펀(酸辣粉, 시큼하고 매우며 화한 맛이 나는 녹말국수 면)을 주로 시켜 먹었다. 뻑뻑한 깨소스와 고추 기름에 버무려진 면 속에서 닭 내장과 마늘을 쏙쏙 골라 먹는 나에게 친구는 언제나 '반미엔은 너무 건조하다고, 자기 국물도 좀 먹으라'고 채근했고, 나는 '어 이 목이 막힐 것 같은 뻑뻑함이랑 고추기름이 어우러진 맛이 너무 좋다고, 그래서 반미엔을 먹는거라고' 대답하며 연신 면에 식초를 추가했다. 

땅콩이 토핑된 얼큰하고 시큼한 鸡杂酸辣粉(지자솬라펀)

솬라펀을 먹을때에도 마찬가지로 친구는 매운거 많이 먹으면 열이 많아져 얼굴에 여드름이 난다고 너무 자주 먹지 말라고 걱정했고, 나는 평생 매운걸 즐겼지만 아직 피부엔 별 문제가 없는 것 같다고, 고맙게도 타고 나길 엄마가 원래 피부가 좋게 낳아줬다고 걱정하지 말라며 화자오와 고추기름, 고추가 둥둥 떠 있는 국물에서 닭 내장과 녹말 면을 쏙쏙 골라 먹었다. 정말이지 너무나도 다른 국수 취향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판이하게 다른 우리의 국수 스타일엔 언제나 단 하나의 공통점, '맵게 볶은 닭 내장 고명'이 있었고 20~22위안의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점심 한끼를 넉넉하고 쫄깃하게 채워주었다. 이따금 한국에 온 지금도 비가 오거나 오래된 냉방에 으슬하면 닭 내장 국수 한 그릇이 생각나 친구에게 위챗으로 메시지를 보낸다. “지자면이 먹고싶어 (我想要吃份鸡杂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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