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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훈느 Oct 01. 2021

나는 괜찮아, 커피를 마실게

밀크티(奶茶) 천국에서 아메리카노로 소신을 지킨다는 것

 아침에만 요란하던 '아침주문' 단체 채팅방이 웬일인지 오후에 요란하다. 다같이 밀크티를 주문한단다. 메뉴만 얼핏 봐도 단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HEY TEA (喜茶)라는 잘나가는 과일차 & 밀크티 브랜드 인데 위에 치즈 맛이 나는 촘촘한 우유 거품을 얹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복숭아 치즈크림 (芝士桃桃)딸기 치즈크림(芝士莓莓)같은 귀여운 이름의 메뉴가 특히 인기있고 어느 밀크티 브랜드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망고+겔 타입의 아주 작은 버블이 들어간 메뉴도(杨枝甘露)잘 나간다. 

헤이티(喜茶)에서 잘나가는 메뉴들. 위에 흰 부분이 짭조롬하며 부드러운 치즈 폼 이다. 

여름엔 양메이(杨梅, 5-6월에 나는 산딸기 같은 과일. 크기는 호두만하다) 겨울엔 검은깨가 들어간 시즌 음료도 한정적으로 판매한다. "Johanna 얼른 시켜요, 우리 퇴사하는 친구 있어서 그친구가 사는거에요." 하고 친구에게 개인 메시지 하나가 날아온다. "잘 모르면 내가 고르는거 도와줄게" 하며 연이어 메시지가 들어온다. 그도 그럴것이 중국의 밀크티 주문엔 고를 것들이 꽤나 많다.


 1. 우선 메뉴를 고르고 (과일베이스로 갈것인지, 차 베이스로 갈것인지) 

2. 당도를 정한다(무당, 30%, 50%, 70%, 100% 로 보통 정하는데 30%정도도 충분히 달다) 

3. 아이스 메뉴를 골랐을 경우 얼음 양을 정한다 (0, 조금, 반절, 많이)

4. 때론 위에 올라가는 크림의 종류나 양도 정한다. 


  처음 접하는 사람에겐 왜 이렇게 결정할게 많아? 싶을 수 도 있다. 하지만 서브웨이 샌드위치 주문법을 생각해보면 비슷한 수준이다. "주문하는덴 어려움이 없는데 나는 그냥 커피 마실게. 고마워" 라고 하니 친구가 의아해 한다. 이거 엄청 맛있고, 유명하고, 요즘 잘나가고 지금 시켜도 1시간 반은 지나야 먹을 수 있을 만큼 사람들이 많이 주문하는 거라고, 그리고 '공짜로' 퇴사자가 사는거라고 다시 한번 강조한다. 헤이티가 유명한줄은 나도 알고 있다. 가게마다 워크인 고객과 배달원들이 줄을 지어 서 있고, 한번 시키면 백팀 이상 대기는 기본인 브랜드. 여느 로컬 밀크티 브랜드와는 차별화되는 세련된 외관의 인테리어와 그만큼 차별화된 비싼 가격. 너무 인기있는 나머지 비슷한 심볼과 이름의 짝퉁 브랜드마저 덩달아 잘되는 브랜드. 브랜드나 메뉴엔 문제가 전혀 없다. 문제라면 우유가 들어간 음료도, 과일 주스도 즐기지 않아 헤이티에 아무 감흥이 없는 나 자신이 문제일 뿐. 우유가 들어간 커피인 라떼나 카푸치노도 잘 먹지 않고 액상 과당을 마시는 느낌이 싫어 수 년간 시판 과일 주스를 돈 주고 사먹은 일도 없다. 유당불내증이나 알러지가 있는것도 아니다. 유제품인 버터와 치즈, 요거트는 무척 좋아하고 소화에도 아무 이상이 없다. 그저 우유가 들어간 음료를 먹었을 때 입안이 텁텁한 느낌을 싫어 바로 양치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면 별로 즐기지 않을 뿐. 그래서 바깥에서 내가 사 마시는 음료는 80% 의 확률로 뜨거운 아메리카노 이다. 나머지 20%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이거나 드립 커피.

상하이엔 드립 커피를 취급하는 근사하고 작은 개인 카페가 제법 많아 골목 골목 찾아다니는 재미가 있다. 

  "그냥 커피를 마실거라 내 음료는 내가 따로 사올게. 고마워 " 하고 말하니 채팅방에 일제히 왜 맛있는데, 혹시 다이어트 중이라서 그러냐고 물음표들이 달린다.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 여자가 몇이나 될까? 나 역시 타이트하게 식단 조절을 하진 않지만 적당한 몸 관리를 위해 운동을 쉬지 않고,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 다음 끼니는 가볍게 먹고, 과음하면 16시간 이상 공복을 유지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이어트를 위해 블랙 커피를 고집하는건 아니다. 그냥 취향이며 버릇이고 입맛이다. "아니 난 원래 아무것도 안 탄 블랙 커피를 좋아해" 하는 말에 친구들은 와 난 라떼만 가끔 마셔. 커피는 너무 쓰던데, 오후에 마시면 밤에 잠 못자지 않아? M stand coffee 가봤어? 거기 쿠키 라떼가 요즘 핫한데 너도 한번 먹어봐 하고 조잘조잘 말들이 달린다. 그저 밀크티 대신 커피 한 잔을 택했을 뿐인데 반응이 뜨겁다. 그 뒤부터 밀크티를 단체 주문할 때마다 친구들은 '오늘도 커피 마실거지?' 하며 나에게 묻는다. 밀크티 천국, 밀크티 러버들 사이에서 커피로 소신을 지킨다는 것, 그것도 라떼가 아닌 아메리카노나 드립커피를 고수하는 것은 생각보다 설명할 것들이 많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아침에 집에서 내린 드립 커피가 가득 담긴 텀블러나 카페에서 방금 사온 커피 컵을 한 손에 들고 잰 보폭으로 종종거리며 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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