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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삐 Jun 30. 2023

79화. 남편의 육아 생색에 대처하는 자세

남편처럼 편한 육아(=날로 먹는 육아)를 하고 싶다.

말 안 들으면 가끔 머리도 쥐어 박고,

아무거나 먹이고.

티브이를 보여주면서 아이의 칭얼거림을 달래고.

놀이는 힘들다며 애 혼자 놀게 하고 핸드폰이나 하는.

세게 넘어지거나 애가 울어도 안아주지 않고 말로 호통치는.

애가 열이 39도가 넘어도 숙면을 취하는 쉬운 육아.


뭐 좋게 말하면, 자유분방한 육아라고나 할까.


남편에게 물었다.

♡♡이가 어린이집에 갔을 때 호텔 뷔페에서 점심 먹을까?

남편이 말한다.

우리끼리? 그러지 말고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다녀오는 게 어때?


다 늙어서 효를 실천하려는(굳이 결혼 후) 남편의 행동은 기특하고 가상하지만,

아기를 데리고 외식을 나갈 때면 항상 아등바등하는 건 나다.


보통 남편은 먼저 밥을 먹고 나는 아이먼저 먹인 뒤 남편이 남긴 식어빠진 음식으로 대충 배를 채우고 돌아온다. 밥이 코로 넘어갔는지도 모르게.


그런데 대뜸 부모님을 모시고 가자는 말을 툭 던져버리면 나는 생각이 많아진다.

자기는 혼자 편하게 먹고, 나는 정신없이 먹으란 거냐.

갑자기 첫사랑 생각이 난다.

결혼은 했으려나.



아무튼 남편의 그런 방관적인 태도에도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데 이따금씩

세상에 나 같은 남편이 어디 있느냐라고 말하면 도무지 할 말이 없다.


아이가 아프면 밤새 간호도 내가 하고

목욕도 내가 시키고

아이 식사도 내가 만들고

아이 용품과 옷도 내가 사고

잠도 내가 같이 재우고

등하원도 대부분 내가 하고

어린이집 행사도 내가 가는데


도대체 얼마나 많은 육아를 한다고 이렇게 생색을 내는 건지. 특히 사람들 앞에서 육아하느라 바쁘다고 말하거나, 주양육자를 자처할 때면 얄미워죽겠다.


나는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에 독을 품는다.

'늙어서 두고 보자...'

혹시라도 늙어서 남편이 먼저 떠난다면

꼭 다정한 영감을 만나서 연애를 하겠다는 은밀한 다짐을 하면서 혼자 통쾌해하기도 하고

옷을 사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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