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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삐 Jun 30. 2023

80화. 복직 전 위시 리스트를 쓰다

육휴가 6개월 남았다.

브런치에서 주기적으로 알람이 왔었다. 글 좀 쓰라고.

글 텀이 길어진 건 인정한다.

그도 그럴 듯이 매일 반복되는 육아와 집안일로. 시간이 없었다. 아이가 짧은 낮잠을 자고 나면, 아이와 놀면서 저녁을 지어야 했고 밥을 먹여야 했다. 밤에는 아이와 함께 잠들기 일쑤고 그게 아니면 밤늦게까지 밀린 집안일에 파묻혀 있어야 했다. 글을 쓸 에너지가 없었다는 건 어쩌면 핑계일지도 모르지만.. 육퇴 후에는 브런치를 켜고 뭔가를 끄적이는 일조차도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날들이 지속되었다.


끝없이 돌을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와 같은 삶을 산 지 어언 17개월.

달력을 보다가 복직이 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흠칫 놀랐다.

내년 1월 워킹맘이 된다. 아이를 두고 출근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아이가 아플 때면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으로 직장에 갈 것이다. 새로운 부서에서 낯선 사람들과 생소한 업무에 적응하면서도 야근이나 회식을 눈치 보면서 해야 하고, 시도 때도 없이 아이 핑계를 대야 할지도 모른다. 퇴근 후에는 쌓인 집안일을 해야 하고, 아이와 놀아주면서 남은 에너지를 다 쓰고, 어린이집 선생님이 써준 키즈 노트를 보면서 아이의 하루를 유추하겠지. 주말엔 쉴 새 없이 아이와 놀러 나가야 할 것이다. 때론 그 상황이 버거워서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아이를 떼 놓고 일을 하나, 그냥 그만둘까.라는 순간도 올 것이다. 벌써부터 마음이 무겁다.

 

하지만, 복직은 6개월이나 남았다. 이럴 때가 아니다.

남은 6개월 동안 어떤 걸 하면서 보내야 할까, 거의 한 달간은 그 생각에 몰두했던 것 같다. 복직하면 하기 어려운 것들을 남은 기간에 하기로 했다.


。수영 배우기 : 자유형, 평영 마스터 하기

。미싱 배우기

。(다시) 운전하기 : 남양주 카페, 친정집, 이마트, 동네 백화점, 직장에 혼자 차 끌고 가 보기

。 건강검진 : 국가 건강검진, 유방암 초음파, 치아 스케일링

。집 정리 : 드레스룸, 주방 수납, 아기 옷장 만들기, 필요 없는 유아 용품 당근에 팔기

。가족과 평일에 네스트 호텔, 파라스파라 호텔에서 1박 2일 하기

。필살기 요리 10개 만들기(레시피 외우기)

。임신 전 몸무게로 돌아가기(51kg)

。내 사진 많이 찍기

。20년 지기 친구들이랑 호텔 뷔페에서 송년회 하기


수영과 미싱은 한 번도 시도해 본 적 없지만 상단 목록에 넣은 이유는 아주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인데 하지 못한, 간단히 말하면, 인생의 숙제 같은 것이라 휴직 기간에 하지 않으면 또 바쁘다는 핑계로 후순위로 미뤄질 것 같기 때문이다. 호텔 수영장에 가서 우아하게 평영을 하고, 아이가 입을 옷을 짓는 게 올해 작은 목표다.


시간을 내서 해야 하는 건강검진도 완료해야 한다. 만 40세가 되어, 올해부터는 국가 건강검진에 위 내시경과 유방암이 추가되었다. 국가 건강검진과는 별개로 나는 엄마가 유방암에 걸린 적이 있어서 1년에 한 번씩 초음파 검진을 받고 있다. 그래서 초음파 검사도 따로 받아야 한다. 치아 스케일링도 일 년에 한 번 하는데 그것도 복직 전에 해야 한다.


복직을 하면 주말에는 쉬어야 하니까, 미뤄 두었던 집안일 - 창고화된 드레스룸과 주방, 욕실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철 지난 옷과 필요 없는 유아 용품들은 미리미리 당근을 통해 팔아야 한다. 또한 평일에 가족과 시간을 많이 보내야 한다. 아이를 데리고 주말에 나가는 일은 힘드니까. 아, 24개월 미만 유아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곳을 잘 찾아다녀야지.


복직을 하면 지금처럼 매일 다양한 메뉴의 집밥을 여유롭게 해 먹을 수는 없다. 짧은 시간에 만들 수 있는 필살기 요리 레시피를 10개 정도 외우려고 한다. 동네 맛있는 반찬 가게, 정육점, 유아 반찬 전문점 등 동네 맛집은 지역 카페+경험치를 통해 이미 섭렵해서 든든하다.


하고 싶은 걸 생각하면서 '내가 이런 것에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구나' , '일(직장) 외에도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이 많구나'라는 생각에 기뻤다. 그동안 육아와 집안일에 바쁘다 보니 정작 나를 아끼는 일은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앞으로 남은 휴직 기간에는 훨씬 더 즐거운 일들로 하루를 가득 채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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