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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수부 Sep 08. 2023

나는 농담이 아니에요

마릴린 먼로 1인칭 인터뷰


 이름은 노마 진 모텐슨. 1926년 6월 미국 LA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없이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 생활고에 시달렸던 탓에 나는 고아원과 위탁가정을 전전했다. 


어머니가 정신병원에 입원한 후 여러 집을 떠돌았다. 8살 때 한 위탁가정에서 성적 학대를 당하기도 했다. 학교에선 아이들이 날 놀려댔다. 그 시절 유일한 낙은 영화였다. 좋아하는 작품을 서너 번씩 볼 정도로 영화광이었다. 영화를 볼 때면 현실과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고아원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 16살에 제임스 도허티란 남자와 결혼했다. 그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느라 집을 떠난 뒤 나는 군수공장에서 일했다. 그곳에서 잡지 모델로 캐스팅돼 연예계에 데뷔했다. 그토록 사랑하던 영화에 출연하게 된 것이다. 이후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 <뜨거운 것이 좋아> 등의 주인공을 맡았다. 나의 두 번째 이름은 마릴린 먼로다.   




1950년대 할리우드에서 여배우로 성공하기란 어려웠다. 그 당시 영화 산업은 남성 위주의 회사들로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난 재능과 노력 덕분에 성공했다. 데뷔한 후에도 공부 욕심이 나 뉴욕의 배우 학교에 다녔다. 심리학, 철학, 시 등 다양한 분야에도 관심이 많았다. 나를 발전시키기 위해 많은 책을 읽었다. 


어릴 적부터 시달린 애정결핍은 배우 생활 도중 나를 괴롭혔다. 무대 공포증이 생겼고, 촬영 도중 몸이 아프기도 했다. 트라우마와 불안을 이겨내기 위해 약물을 복용했다. 두 번의 결혼은 실패했고, 아이를 유산했다. 도저히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고 느꼈다. 


불안은 점점 커졌다. 어머니를 괴롭혔던 정신질환이 옮은 것만 같았다.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몇 차례 병원에 실려갔다. 유서를 쓰고 약을 먹기도 했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삶이었다.  


그렇게 36살에 세상과 작별했다. 나의 죽음을 두고 여러 음모론이 제기됐다. 대외적인 사인은 수면제 과다복용이다. 케네디 형제와의 스캔들 때문에 타살이 아니냔 의혹이 많다. 진실은 나만 알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죽음의 정치적 진실을 가려내는 것보다 한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세상은 나를 ‘섹스 심볼’이라 부른다. 실력 있는 배우로 인정받고 싶었지만, 모두가 내 금색 머리칼, 몸매, 드레스에만 관심 있었다. 어떤 잡지는 동의 없이 내 누드 사진을 게시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아마 케네디 형제와의 관계일 거다. 존 F. 케네디와는 그저 가벼운 사이였다. 그는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수많은 여자와 하룻밤을 보낸 사람이다. 동생인 바비 케네디와는 조금 복잡하다. 중요한 건, 이런 스캔들은 내 삶을 단정 지을 수 없다. 


세상이 날 기억하는 모습과 내가 원하던 모습은 다르다. 나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과 영화가 쏟아져 나왔다. 마릴린 먼로는 정치 이념이 뚜렷하고 철학과 예술에 조예가 깊은 여자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를 아직도 멍청한 금발 여자로만 기억한다. 



농담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요. 저는 성실한 배우이자 예술가가 되고 싶습니다.
-마릴린 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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