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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수부 Sep 01. 2023

언제까지 외양간만 고칠 것인가





“별일 없어?” 문자가 온다. 흔한 안부인사다. 답장을 망설인다. 지난밤 폭우가 내려 사람들이 실종되고 죽었다. 지난 10월에는 “어디야?” 라는 문자를 받았다. 그 전날 밤에는 이태원에서 압사사고가 났다. 지난여름에는 “잘 지내지?”라는 문구를 몇 번이고 대화창에 썼다 지웠다. 간밤에 신림동 반지하에 물이 들어찼단다. 서울 상경의 꿈을 안고 올라온 대학교 동기들은 신림동과 사당역 근처 반지하에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불안함에 포털 메인화면만 새로고침 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안부를 묻는다. 별일 없느냐는 흔한 안부인사는 어느덧 뉴스 헤드라인에 뜬 숫자 1이 아는 이가 아니길 바라는 우려가 된다. 언제 어디서든 죽을 수 있다는 불안이 엄습한다.


집중 호우로 전국에서 46명이 사망하고 4명이 실종됐다(19일 기준). 충북 청주 오송 궁평 지하차도에선 14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차도의 길이는 430m, 높이는 4.5m. 짧으면 30초, 길어야 1분이면 빠져나올 수 있는 거리. 그러나 갑자기 들이닥친 물이 지하차도를 2~3분 만에 메웠다. 첫 신고가 접수된 것은 오전 8시36분. “오송 오창 터널 입구에 차가 침수됐다”는 전화. 잇따라 차도에 갇힌 이들은 구조요청을 보냈다. 하천물이 차도로 쏟아진 지 20여 분 후, “도와주세요.”라는 간절한 신고전화가 피해자들의 마지막 구조요청이었다. 


지하차도 인근 공사 현장을 관리하는 감리단장은 사고 발생 전 다섯 차례 청주시와 경찰에 범람 위험을 알리며 주민 대피를 요청했다. 공사 발주청(행복청)은 관계기관에 열아홉 차례나 주민들을 대피시키라고 요청했다. 요청 이후 다른 곳은 통제됐지만 이 지하차도엔 통제가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 해 8월에도 집중호우로 19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시간당 141mm의 폭우가 동작구·서초구·강남구 일대에 쏟아졌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다세대주택 반지하에서 일가족 3명이 집으로 들이닥친 물살을 피하지 못해 변을 당했다. 피해자들은 침수가 시작될 무렵 119에 신고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신고가 폭주 탓에 통화에 실패했다. 당시 소방당국은 119신고 접수대를 24대에서 40대로 늘렸으나 절반 가까운 신고가 접수에 실패했다. 


얼마 지나지 않은 10월, 이태원 참사로 159명의 희생자가 발생했다. 참사가 벌어지기 전 신고 전화는 이미 수차례 접수됐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압사당하고 있다”는 전화와 “인파가 너무 많아 사람들이 떠밀려 사고가 날 것 같다”는 신고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접수됐다. 그러나 적절한 교통통제는 없었다. 


정부는 연이은 사고에 재난안전에 만전을 기울이겠다 강조했다. 지난여름 침수 사고 이후 서울시와 국토교통부는 반지하 거주 가구의 지상층 이주를 지원하는 제도를 개선했다. 지난달 30일에는 이태원 특별법이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됐다. 데자뷰(DEJA VU)다. 수많은 사전 경고. 무능한 행정. 이어지는 인명피해. 그제야 고쳐보는 외양간. 익숙하지 않은가. 


이 고리를 끊어낼 방법은 하나뿐이다. 고장 난 안전 대응 시스템을 고치는 것. 다가올 재난 위험을 파악하고 사전에 대비해야 한다. 비가 많이 오면 반지하가 물에 잠긴다. 길에 사람이 몰리면 사고가 난다. 지하차도에 물이 들어차면 통제가 필요하다. 어려운 추론이 아니다. 오히려 상식에 가깝다.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들이었다. 


18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이권 카르텔, 부패 카르텔에 대한 보조금을 전부 폐지하고, 그 재원으로 수해 복구와 피해 보전에 재정을 투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양간 고치는 일도 뒷전, 재난으로 정쟁이나 하겠다는 소리다. 


재난의 원인과 대책을 짚어야 할 감사원은 정권 출범 이래 정치 감사에만 열중하고 있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은 ‘긴급성’을 요구한다며 감사위원회 의결도 패싱하고 감사를 진행했다. 반면 이태원 참사의 감사계획은 올 초 상반기 감사계획에 포함하고도 뻔뻔하게 “계획이 없다”며 거짓 브리핑을 했다. 행정은 시민을 보호하지 못하고, 책임자를 가려내야 할 기관은 정권 비위만 쫓기 바쁘다. 


우리는 내년 여름에도 서로의 안부를 물을 것이다. 또 다른 외양간이 물에 잠길 터. 얼마나 더 많은 소를 잃어야만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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