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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수부 Sep 01. 2023

공존인가 위협인가? 불붙은 21세기 러다이트 운동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HAL9000’은 인공지능이다. 당시 ‘인공지능’이란 개념이 없었음에도 영화에 묘사된 ‘기계지능’은 지금의 ‘AI’와 똑같다. ‘HAL9000’은 인간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심지어 감정까지 느낀다. 급기야 인간을 지배하려는 욕망에 우주선 공격을 감행한다.


영화나 소설 속 인공지능은 대부분 악당으로 등장한다. 인간은 편의를 위해 만든 창조물로부터 공격받는 창조자 딜레마에 빠진다. 기계가 인류를 지배할 것이란 공포는 스크린을 넘어 현실이 됐다. 사회가 인공지능의 발달을 어디까지 용인할 수 있을지가 앞으로의 숙제다. 


최근 할리우드 영화 산업이 멈췄다. 작가·배우 노동조합이 파업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파업한 이유는 급여 인상, 연금, 스트리밍 수익 공유 등이다. 그 중 가장 큰 이유가 인공지능이다. TV·영화 대본 작성을 ‘Chat GPT’ 등의 생성형AI가 작성하며 작가들은 입지를 잃었다. AI 디에이징(de-aging)기술의 등장으로 특수효과, 영상편집 등의 기술 스태프들도 설 자리가 좁아졌다. ‘AI 아바타 저작권’ 개념이 생겨나며 배우와 성우들의 얼굴과 목소리는 딥페이크가 만든다. 할리우드 제작사가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작가와 배우들의 일자리가 축소된다는 우려가 파업의 시발점이었다.


5월 한국에서는 ‘네이버 웹툰’의 신작 웹툰이 AI로 제작됐다는 의혹이 화제가 됐다. 해당 작품을 두고 ‘다른 네이버 웹툰의 작품과 그림체가 비슷하다. 다른 작가의 그림을 무단으로 사용한 것 아니냐’는 도 지적도 나왔다. 논란 이후 네이버 웹툰 아마추어 작가들은 ‘AI웹툰 보이콧 운동’을 열었다. 이들은 AI가 저작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향후 네이버 웹툰에 업로드 된 작품들이 AI 학습에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내비쳤다.


얼마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사람들이 로보택시 보닛 위에 고깔을 씌웠다. 무인 자율주행차 도입을 반대하는 시위대의 운동이었다. 샌프란시스코 교통 당국이 로보택시 운행허가를 내준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로보택시가 소방차와의 충돌사고 등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고깔을 씌우자 로보택시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이 운동은 첨단기술의 맹점을 지적했다. 


대중은 이런 운동들을 ‘21세기 러다이트 운동’이라고 일컫는다. ‘러다이트 운동’은 18세기 말 산업혁명 시기 영국에서 노동자들이 일으킨 기계 파괴 운동이다. 기술발전이 대량실업의 원인이라 생각한 노동자들은 망치로 기계를 부쉈다. 그러나 기계화된 산업을 멈출 순 없었다. 파업은 실패했지만,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의 임금 조건과 근무 환경은 개선됐다. 


4차 산업혁명을 맞아 인간은 또다시 기계와의 싸움에 돌입했다. 친절한 슈퍼 아주머니와 집 앞 커피숍 점원 대신 우리를 반기는 건 네모난 키오스크 기계다. 기업은 비용을 절감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인간 대신 기계를 선택한다. 그러나 일자리가 부족해지며 노동 시장은 불안해지고 부의 양극화는 심화된다.


영국의 노동자들은 공장의 기계를 때려 부수며 이 같은 미래를 예견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계는 이제 단순 노동직을 넘어 창작의 영역과 일상까지 도맡으려 한다. 


기술 발전이 인간사회에 이로운 점이 많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제 와서 스마트폰, 컴퓨터, 의료 기계를 망치로 부술 수는 없다. 


현재 인류가 맞닥뜨린 고민은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가’이다. 다양한 일자리 창출과 사회적 안전망 없이 기업이 기술 개발에만 힘쓴다면, 러다이트 운동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적절한 제도와 윤리적 고민이 앞서야 사회가 첨단 기술을 수용하려는 자세가 만들어진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속 ‘HAL9000’의 빨간 렌즈는 여전히 우리를 응시한다. 그 시선을 공존으로 받아들일지, 위협으로 받아들일지는 인간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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