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발달은 인류의 무지를 걷어내어 세상을 더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새로운 앎에 발을 디디면 기존의 사고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 일례로 양자 역학이 그렇다. 과학자들은 이미 100여 년 전에 이중 슬릿 실험을 통해 전자가 고정된 물리적 특성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미시 세계의 존재들은 입자성 또는 파동성이라는 배치되는 특성들을 확률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특성이 발현되는 데에는 관측 여부가 유효한 변수로 작용한다.
거시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의 입장에서 전자의 특성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더욱 난해한 사실은 관찰자가 개입(관측)하느냐 또는 하지 않느냐에 따라 전자의 특성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 관측 행위의 정의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어떤 전문가들은 관측 도구만으로도 충분히 관측이 성립되며, 관측기구와 전자의 물리적 상호 작용이 작고 가벼운 전자의 운동에 간섭한다고 본다. 이때 관찰자(사람)의 개입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관측 도구만으로는 관찰이라는 조건을 충족했다고 볼 수 없다는 전문가들도 있다. 지적 능력과 의식이 있는 존재(관찰자)의 특수한 목적을 지닌 관찰 행위가 전자의 행동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과학과 인간의 의식이라는 철학적인 주제가 결합하는 순간이다. 만약 관찰자의 의식이 외부 존재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세상의 실재 여부와 의식적인 행위를 수행하는 나라는 주체에 대한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어떤 주장이 옳든, 적어도 미시 세계에서 관측 행위의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객체(전자)는 주체(관찰자)와 무관하게 절대적으로 고유한 특성을 지닌 존재가 아니다. 관측하기 전까지 전자는 확률적인 특성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미시 세계의 존재들이 모여서 우리에게 익숙한 사물들, 즉 아이스크림이나 컴퓨터, 식탁이나 신체 등을 구성한다. 그렇다면 비록 우리가 거시 세계에 속해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사실이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볼 수는 없다.
다시 무지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만물은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늘은 파랗고 나뭇잎은 초록빛인데, 거기에 나의 관찰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나 미시 세계의 규칙을 들추지 않더라도 객관적인 실재란 우리의 관념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사과가 붉은빛을 띠는 것은 사과가 본질적으로 붉기 때문이 아니라, 사과에 부딪혀서 반사되어오는 빛의 파장에 의하여 붉게 보이는 것이다. 광원이 없거나, 조명을 달리하면 사과의 색은 다르게 보인다. 사과의 본질적인 색은 없다.
이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은 세상을 대충 볼 수 없다. 세상을 대충 볼 수 없다는 것은, 우리가 객관적으로 옳다고 여긴 많은 사실이 특정한 맥락에 한하여, 다시 말해 아주 제한적인 상황과 조건에서만 참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무지의 관점에서 세계는 단단하고, 고정되어있고,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배움의 관점에서 세상은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로 구성되었으며, 근간이나 축이 되어줄 수 있다고 여긴 것들도 고정되어있지 않다. 무엇보다 만물은 전체의 맥락 밖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관찰이라는 행위를 수행하는 주체인 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점이 있다. 관찰 행위가 어떤 식으로든 관찰 대상에 개입하는 것이라면, 객관적으로 대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고작 수십 년을 산 개인의 견해로 세상을 이리저리 관찰하여 판단을 내리더라도 그것이 옳은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더 나아가 관찰 대상이 아무리 이질적으로 보여도 나와 불가분의 관계가 아니라, 나와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은 존재가 된다면 만물과 나는 어떻게 이어져 있는가를 궁금해하는 것이 당연하다.
아무리 탐구하더라도 앎의 세계는 끝이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고정관념을 버리고 질문을 던진 자들에 의해 우리가 오늘날 세상을 더 바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기존의 상식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새로운 진실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한 단계 더 진리에 가까워질 수 있다. 그렇게 배움은 우리의 좁은 상식을 넓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