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로 대표되는 자연은 그 자체로 이상향이다. 반짝이는 해변과 파란 바다, 끝없이 웅장한 산맥과 새하얀 만년설은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끝없는 사막 위를 줄지어 걷는 낙타 무리나 오랜 세월 풍화되어 지구의 모습 같지 않은 깊은 협곡들은 기가 막힌 영상과 사진에 담겨 우리에게 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나를 포함하여 대개 나름의 방식으로 자연을 사랑한다. 탁 트인 풍경과 질서 정연한 듯 무질서한 모습은 일상생활의 골치 아픈 일들로부터 우리를 끌어올려 의식을 환기해주는 효과가 분명히 있다. 그러나 내가 자연을 좋아하는 것은 단지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자연의 어떤 모습도 의도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얼마나 많은 우연이 겹쳐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는지를 상상하게 한다. 수십억 년의 세월 동안 지각의 운동, 물과 공기의 순환, 미생물부터 시작하여 각종 동식물의 등장과 소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요소들이 자연을 만들고 변화시켰다. 그 기나긴 시간 동안 지구를 거쳐 간 생물과 무생물 중 어느 하나 "우리 힘을 합쳐 아름다운 자연을 만들자"라고 다짐하고 행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파도에 수없이 깎여나간 절벽은 해안가의 절경을 이룰 줄은 스스로도 몰랐을 것이다. 햇빛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기다랗게 뻗어 나간 나무들도 울창한 산림을 조성하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자연의 모습은 꽤 그럴싸하지 않은가? 인위(人爲)의 아름다움도 물론 값지지만 어떠한 의도도 반영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에는 의식의 깊은 곳을 두드리는 울림이 분명히 있다. 비를 뿌리고 지나가는 구름도, 흙 속의 박테리아도, 아침이 되면 짹짹 우는 산새들도 서로 약속한 일 없이 행동하지만 함께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만든다.
변함없는 조건 아래 잘 보존되어 옛 모습을 간직한 곳도, 예기치 못한 변수로 천지가 개벽하듯 완전히 탈바꿈한 곳도 각자 나름대로 눈길을 끈다. 그 안에는 반드시 이래야 한다, 이렇지 않아야 한다는 규칙도 없고 서로 더 잘나고 못함을 가르는 기준도 없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 있는 그대로의 자유분방함을 사랑할 여유가 분명히 있다.
더 물러날 수 없을 정도로 뒤로 가야만 보이는 큰 그림에서는 우리의 실수도, 미숙한 판단들도 그럴싸해 보인다. 하나의 사건 속에서는 무엇을 위해 애쓰고 그것을 손에 넣거나 넣지 못하는 직관적인 결과가 우리를 괴롭게 하겠지만, 전체의 맥락에서 개별적인 성과와 상실은 그다지 중요하지도, 눈에 띄지도 않는다. 방대한 무질서의 조화 속에 나의 선택들에 대한 엄격한 잣대는 힘을 잃고 모든 순간이 스스로 그러하다(自然). 구태여 판단하고 가르는 데에 매달릴 일은 무엇일까.
엉망이었지만 괜찮았고, 잘해서 또 괜찮았던 게 멀리서 본 인생의 모습이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고, 자기 자신의 한심함을 곱씹고, 받아보지 못한 결과물이 아쉬워질 때 그 개별적인 의도와 결과에 대한 집착을 끊을 수만 있다면 우리가 자연을 보듯이 인생을 조망할 수 있게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