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랑 Jan 26. 2022

명상과 자발성

    종교적이거나 영적 활동으로써 명상의 역사는 결코 짧지 않지만, 최근 몇 년간 명상의 대중화에는 사업가, 엔지니어, 인플루언서 등 성공한 사람들의 추천이 큰 역할을 했다. 외출이 자유롭지 못한 시국과 맞물려 명상의 긍정적인 효과에 대한 재조명이 명상의 인기를 높인 것이다.


    명상을 추천하는 사람들은 꾸준한 명상을 통해 생산성과 능률이 향상되거나, 일상에서 느끼기 어려운 높은 차원의 기쁨과 환희를 맛본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장점들에 이끌리더라도 꾸준히 마음먹고 명상 수행을 하기란 쉽지 않다. 다른 취미 활동들과 달리 명상은 수행하는 이의 높은 자발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자발성이라는 특성을 자세히 살펴보자. 우리가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행위들, 예를 들어 휴대폰을 보거나 간식을 찾아 먹는 일 등은 큰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도 할 수 있다. 이보다는 능동적이고 의식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행위들도 있는데, 악기 연주나 독서가 여기에 속한다. 이처럼 자발성이라는 척도로 따지면 명상은 가장 상위의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명상하기 위해서는 온전한 본인의 의지로 생생하게 의식을 깨워야 하며, 주의가 흐트러지는 순간, 즉 자발성이 사라지는 순간에 명상도 깨져버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명상을 하는 동안 우리는 그 행위에 오롯이 자기 자신을 맡겨야 한다. 이는 멀티 태스킹에 익숙해져 버린 현대인에게 무척 어려운 일이다. 다른 데로 주의를 돌리지 않으려 할수록 생각은 마구잡이로 뻗어 나가고, 그다지 의식하지 않았던 몸의 어떤 부분이 불편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의식을 깨운 상태에 머무르는 것은 찰나에 그치고, 곧 자발적인 고요함에서 밀려나게 된다.




    명상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는 일은 수행에 도움이 된다. 우선 명상은 조명이 은은한 넓은 공간, 가부좌를 튼 자세, 잔잔한 배경 음악과 향초 따위가 없어도 실행할 수 있다. 차분히 앉아있거나, 원한다면 어떤 자세로든 일정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라면 충분하다. 만약 내킨다면 지금 당장 화면으로부터 눈을 돌려 명상을 시작할 수도 있다.


    또한 명상을 수단 삼아 어떤 효과를 얻거나 목표를 쟁취하겠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의식에 대한 관찰은 어지러운 생각들이 피고 지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런 명상의 무(無)지향성은 일견 난해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어떤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마음으로 명상을 하는 것은 도리어 수행에 방해가 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명상을 통해 어떤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고 확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놀라운 효과를 체험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명상의 본질적 목표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굳이 시간을 들여 명상해야 하는 이유는 일상생활에서 먹고, 움직이고, 생각하는 동안은 자기 자신을 바로보기가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내가 깨어있는 시간에도 내 자발성의 상당 부분이 잠들어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차분히 앉아 산란한 마음을 고요히 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잠깐이라도 자신의 주인이 되고, 더 바람직하게는 자발성에 익숙해짐으로써 모든 순간 자신의 의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스스로 단련할 수 있다.


    온갖 자극과 산더미 같이 쌓인 할 일 속에서 진정으로 살아있기란 쉽지 않다. 명상은 이런 비자발성과 주도권을 잃은 상태에 대한 거부이며, 자기 자신의 의지로 존재하는 순간을 체험하는 사치이다. 이런저런 효과를 기대하고 시작하더라도 곧 고요에 머무르는 그 자체가 더 귀한 경험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상식의 세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