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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좀좀이 May 27. 2021

그곳의 나, 여기의 나 - 1부 2화

2006년 나의 정말 정신나간 이야기 2화 속 나와 만나기


2006년 경상북도 풍기, 충청북도 단양 여행기

나의 정말 정신나간 이야기 2화 - 경상북도 풍기

https://zomzom.tistory.com/38


태어나서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쭉 고향인 제주도에서 살았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 진학하면서 드디어 서울 생활이 시작되었다. 대학교 합격 통지서를 받은 후 합격한 대학교에서 서울에 있는 지정 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이때 태어나서 처음 혼자 서울로 올라갔다. 김포국제공항에서 지하철을 타고 신체검사를 받기 위해 가야 하는 병원 근처까지 가는 길은 그렇게 신기하지 않았다. 지하철은 불과 약 한 달 전 논술 시험 때문에 서울로 올라왔을 때 여러 번 타봤기 때문이었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병원까지 가는 길. 지금처럼 스마트폰으로 지도 보며 길을 찾아가던 시대가 아니었다. 조잡한 약도를 보며 병원까지 찾아가야 하는데 약도 보고 길을 찾으려 해도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사람들에게 물어가며 병원까지 갔다. 여기까지만 해도 딱히 뭔가 크게 이질적이라고 느낀 건 없었다. 낯선 동네에서 길 찾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신체검사도 특별할 것 없었다. 고등학교까지 학교에서 받은 신체검사와 별 다를 게 없는 평범한 신체검사였다. 고작 이런 고등학교 신체검사 같은 것을 받으라고 제주도에서 서울까지 올라오라고 한 거야? 그래도 서울까지 와서 신체검사 받으라고 하니까 TV에서나 보던 기계에 사람 집어넣고 사진 촬영하고 보다 더 거창하고 굉장한 검사를 할 줄 알았다. 학교에서 받던 신체검사와 다를 게 하나도 없는데 이런 걸 왜 서울까지 와서 받아야하나 싶었다. 이게 아침 첫 비행기로 제주도에서 올라와서 받아야할 만큼 엄청난 검사인가 싶었다. 마지막까지 내심 굉장한 검사 과정이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그런 건 없었다. 신체검사가 끝나자 비행기표 값이 무지 아까웠다.


신체검사를 받고 나오는데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 사람들은 같은 과 선배들과 동기들이었다.


'진짜 이런 말을 쓰는 사람들이 있었어?'


TV, 라디오 방송에서나 듣던 '했어'로 끝나는 표준어 반말. 이걸 정말 일상에서 구사하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동기가 말을 놓자고 했다. 짧게 '어'라고 대답했다. 동기가 내게 뭔가 물어봤다. 약 2초간 고민에 빠졌다. 대답 내용 때문에 고민에 빠진 것이 아니었다. 나도 똑같이 저렇게 '했어'라고 대답해야 하나? 머리로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정답을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동안 '머리로만' 알고 있었다.


고향에서도 말할 때 존댓말을 사용할 때는 문장 마지막이 표준어와 똑같았다. 우리 또래에서 존댓말조차 순수한 사투리로 말하는 애들은 순수 제주도 사람 수준을 뛰어넘어서 제주도에서도 완전 시골에서 온 사람 급이었다. 어쩌다 누가 서울에서 전학오면 초기에는 '했어'로 끝나는 표준어를 사용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대체로 말이 아주 빠르게 동화되어갔다. 그래서 서울에서는 사람들이 정말로 '했어'로 끝나는 표준어 반말을 구사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상황이 전혀 상상되지 않았다. 그런 상상 자체를 해본 적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를 에워싼 그 '방송'에서나 듣고 '책'에서나 보던 표준어 반말의 파도. 정말 많이 놀랐다. 머리로는 서울 사람들이 표준어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겪어보니 언어 충격이었다.


그때 대학교 동기는 내게 신체검사 바로 다음날에 있는 신입생 OT에 참석할 거냐고 물어봤다. 매우 오래 전 일이라 그때 대학교 동기가 말한 문장을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 한다. 그러나 그때 그 충격은 여전히 생생하다. 나는 머리로 '했어'라고 말을 끝내야 한다고 엄청나게 의식하며 '했어'라고 또박또박 말투를 바꿔서 말하는데 그 말투를 아주 당연하게 여기던 사람들. 서울 가면 표준어 반말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지만 막상 처음 그 상황을 겪어보니 습관적으로 해오던 젓가락질을 억지로 다르게 하는 것만큼 상당히 어색했다.


한동안 고향 친구와 같이 간 여행의 여행기 쓸 때 대화 파트를 쓸 때마다 매우 혼란스러웠다. 있는 그대로 쓰려고 하면 방언으로 써야 하는데 방언으로 쓰면 반드시 표준어로 바꿔서 한 번 더 써줘야 한다. 내가 다시 읽을 때는 보다 생생하게 그 당시 장면을 떠올릴 수 있어서 좋기는 하다. 그렇지만 표준어로 바꿔서 한 번 더 써주면 어떤 식으로 해도 글이 매우 지저분해진다. 나의 정말 정신나간 이야기 2화 도입부를 보면 이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볼 수 있다. 내가 다시 볼 때는 그때 한 말을 그대로 볼 수 있으니까 좋지만, 그와 동시에 글이 지저분해보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고쳐버리고 싶어진다.


더욱이 방언으로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저때나 지금이나 매우 어색하다. 왜냐하면 방언으로 글을 써 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말은 방언으로 하더라도 글을 쓸 때는 무조건 표준어로 바꿔서 글을 써왔다. 그것이 당연한 거였다. 초등학생 시절 매일 숙제로 일기를 써서 선생님께 제출할 때도 그랬고, 학교에서 글을 쓰도록 시켜서 글을 쓸 때도 그랬다. 항상 그랬다. 그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만약 누군가 대화를 그대로 방언으로 적는다면? 바로 빨간 줄 쫙 그어지고 다시 표준어로 고쳐서 써오라고 했다.


단순히 방언으로 글을 써 본 일이 없기 때문만은 아니다. 심지어 나조차도 다른 사람이 글로 제주도 방언을 써놓은 것을 보면 이게 대체 무슨 소리를 적어놓은 건지 한참 봐야한다. 들으면 별 거 아니고 바로 알아듣는 말이지만 글로 써놓은 것을 볼 때는 심지어 소리내서 읽어보고서야 이걸 이렇게 써놨구나 하기도 한다. 제주도 방언 표기법 같은 건 배워본 적도 없고, 제주도 방언으로 적힌 글을 제대로 본 적도 없는 데다 표준 제주도 방언, 표준 제주도 방언 맞춤법 같은 건 없기 때문이다. 대체로 사용할 수 있는 '범용' 제주도 방언은 존재하지만 확실하게 맞고 틀린 여부를 완벽히 정할 수 있는 '표준' 제주도 방언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에 제주도 사람들 모두 타지역 사람들이 방언을 매우 못 알아듣는다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어리고 타지역 사람들 만나본 적 별로 없어서 타지역 사람들이 어떤 말을 사용하는지 잘 모른다 하더라도 타지역 사람들이 제주도 방언을 못 알아듣는다는 것은 기초 상식처럼 알고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방송매체에서 나오는 말, 글에서 볼 수 있는 문어체와 실제 사용하는 방언이 워낙 다르다보니 이건 누가 가르쳐주고 억지로 교육시키지 않아도 본인 스스로 자연스럽게 그렇게 체득하고 깨닫게 된다.


이런 기억들이 여전히 강하게 살아있기 때문에 글에 방언을 조금이라도 쓰려고 하면 먼저 엄청나게 어색하고, 두 번째로 방언을 쓴 부분은 무조건 표준어로 따로 해석을 달아놔야 마음이 편하다. 보나마나 글 읽은 사람이 방언으로 쓴 부분을 읽고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들을 거 뻔히 아니까. 서울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표준어 반말로 말하는 것이 편해졌다. 그리고 표준어 반말로 대화하는 것이 편해지는 것의 제곱으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제주도 방언을 못 알아듣기 때문에 글에 방언이 들어간다면 쉽든 어렵든 무조건 표준어 해석을 달아놔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문제는 나의 정말 정신나간 이야기를 쓰던 당시에도 계속 고민했던 문제였다. 나의 정말 정신나간 여행기에서는 그래도 대체로 일관되게 실제 나눴던 대화를 그대로 방언으로 적고 괄호 안에 표준어로 바꾼 내용을 썼다. 그렇지만 그때도 이렇게 하는 게 좋을지 그냥 깔끔하게 대화를 표준어로 바꿔서 쓸 지 많이 고민했었다.


지금은 이 문제에서 완벽히 벗어났다. 대화를 표준어로 했든 사투리로 했든 글 쓸 때는 표준어 문어체로 쓴다. 어렸을 적부터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글 쓰는 나도 편하고, 글 읽는 사람도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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