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렌디피티 Oct 24. 2022

공무원, 그만두고 싶지만 후회는 하기 싫어.

간만의 친척모임, 반갑다는 인사 대신 건넨 뼈아픈 충고를 듣고...

몇 년 만에 참석한 가족 모임에서 만난 작은어머니는, 내가 공무원을 그만두고 싶어 한다는 걸 아버지께 전해 듣고 이미 알고 계신 듯했다. 만나자마자 반갑다는 인사 대신 성급한 질문을 던지신다.

"너 회사는 어떻게 할 거야? 계속 다닐 거니? 니 남편 회사는 정년도 빠른데 나중에 어떻게 하려고 그래? 공무원 안 하면, 뭐 할 수 있는 건 있니? 이제 애들 다 컸잖아. 그냥 아무 생각하지 말고 공무원 계속해."

'내' 인생을 내가 살아가는데 왜 아무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아무 생각 없이 부모님이 되라는 공무원을 해서 이렇게 갈팡질팡 하고 있는데 다시 한번 아무 생각하지 말고 가다 멈춰버린 길을 계속 걷다 보면, 나아질까? 이런 류의 충고를 들으면 곧게 빗어놓은 그만두겠다는 다짐의 가닥들이 도로 엉켜버린 듯한 기분이 든다.


유튜브를 보는 중  유명한 스님의 말씀 중에 '구슬치기'에 대한 내용이 기억났다. 스님이 어렸을 때 구슬치기를 잘해서 친구들의 구슬을 몽땅 따면 싸들고 와서  집 안에 엄청 큰 단지안 에 보관해놨는데 '그렇게 소중했던' 그 구슬들이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모르겠다는 말씀이셨다. 현재 우리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중에도 그 구슬 꾸러미 같은 것들이 있을지 모른다는 말씀이었다. 나중에 죽기 전에 내가 중요하지도 않은 것들에 얽매여 인생을 허비했구나 라는 후회를 하지 않으려면 '자신만의 중요한 가치'를 우선적으로 지키고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너무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유지하는 것은 나의 인생에서 과연 얼마나 중요한 가치 일까?

부모님의 '체면'을 유지시켜 드리는 것, 남편과 아이들에게 안정적인 수입을 제공해 살림에 보탬이 되고, 직업적 소명감과 자아실현 욕구의 완성? 뭐 이런 거?

공무원을 계속하다 보면 아... 내가 그때 그만두지 말라는 충고를 듣고 안 그만두길 정말 잘했구나라고 생각하며 뿌듯해할까?

지금 내가 움켜쥐고 놓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는 것 중에 나중에 기억도 못할 구슬 꾸러미는 과연 무엇일까?

내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사랑하는 가족’인데, 가족을 위해서 내가 너무 힘들어도 공무원을 계속하면서 돈을 벌어야 할까? 돈을 버는 대신 '나'를 잃을 텐데? 사랑하는 가족들을 챙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잃고 날카로워진 손톱으로 나 자신과 가족들을 상처가 아물 새도 없이 긁어댈 테지. 잠을 못 자 벌게 진 두 눈을 부릅뜨고 회사에서 버티다 집에 오면 다시 쓰러져서 소중한 가족들에게 제발 나 좀 이해해달라고 강요하겠지? 머리가 커져 버린 아이들은 그런 나를 이해하는데 한계가 오겠지?


아이들이 엄마의 복직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뭘까 생각해본다. 평일에 모든 에너지를 써버리고 주말 내내 드러누워 끙끙 앓는 내 모습을 보기 힘들어서 일수도 있고, 엄마의 웃는 얼굴을 보기 어려워 지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라는 생각이 든다. 한창 회사생활에 힘들었을 때 3개월 정도 아이들을 보고 웃어본 기억이 없었다. 휴직을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마스크 쓴 아이의 모습을 처음으로 자세히 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 아이들이 마스크를 쓰면 이런 얼굴이었구나..'새삼 놀랐다. 얼마나 다른 곳에 빠져 있었으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의 얼굴이 낯설게 느껴졌을까 싶었다.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란 생각도 했다. 열심히 살다 보면 내가 탄 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살 수도 있다지만, 옆에 탄 사람의 얼굴 한 번 쳐다볼 새도 없이 배를 타고 항해를 한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함께 배에 탄 가족들과 함께 항해를 하며 자주 식구들의 얼굴을 보며 안위를 살피며 살고 싶다. 그렇지만 회사일을 하면 이마저도 쉽지 않다. 그저 깊이를 알 수 없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고 있음을 느낄 뿐이다.


한 번은 갓 지은 밥을 주걱으로 젓고 있는 신랑을 쳐다보다 밥솥 깊숙이 주걱을 집어넣어 휘젓는 걸 보고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방금 한 밥 저을 때 안 뜨거워? 난 너무 뜨거워서 깊숙한 곳까지는 주걱으로 휘젓지 못하겠더라." 남편은 심드렁하게 대답한다. "뜨거워도 참는 거지 뭐."

왜 그 순간 난 나 자신이 어른 같지 않음을, 비겁한 것 같단 느낌이 들던지.. 같이 회사생활을 하면서 남편도 분명 힘에 부치는 날들이 많았을 텐데 말이다. 남편과 같이 달려보기로 했으면서 나만 힘이 들다고, 숨이 너무 찬다고 혼자만 살겠다고 그 전투에서 기권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남들은 왜 그렇게 갈팡질팡 결정을 못 내리는지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그렇지만 솔직히 내겐 공무원을 그만둔다는 결정이 그리 쉽지 않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만두지 말라는 그들의 충고가 맞아떨어질까 두렵다. 보고 싶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현실의 뾰족함이 날카로움으로 다가와 살갗을 쿡쿡 찔러대고 있었다.


잠들기 전 비밀스럽게 본 나의 화단에는 햇빛을 보지 못하게 뚜껑을 닫아둔 줄 알았던 내 마음 반대편, '망설임의 싹'이 여전히 살아있었다.

뿌리가 뒤엉켜 버린 '결심의 새싹'은  오늘따라 유난히 작은 바람에도 심하게 흔들거리고 있는 듯했다.


작가의 이전글 순종적인 외동딸, 부모님 뜻에 따라 공무원 되어보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