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렌디피티 Apr 13. 2023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샤넬립스틱

손가락만 한 립스틱이 가져다준 커다란 생활의 변화

내가 구비하고 있는 이목구비 중에 그나마 내세울 수 있는 건 도톰한 입술뿐이다. 그래서인지 화장을 시작할 수 있을 때부터 립스틱 바르는 걸 좋아했고 그만큼 많이 사기도 했다. 그중에서 제일 좋아했던 건 샤넬립스틱이었는데 깔끔한 외관에 반짝거리는 블랙이 주는 도도함이 맘에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메이크업에 쏟는 관심과 시간도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절친이던 립스틱과도 멀어지게 되었다.

요즘 봄바람이 살랑살랑 부니 내 마음에도 호랑나비 두어 마리가 찾아와 팔랑대기 시작했다. 갑자기 립스틱이 사고 싶어 져서 동네 화장품가게에 들어갔다. 형형색색 고운 립스틱을 오래간만에 마주하니 심장이 쿵쾅거리고 이 황홀한 봄날씨를 내 입술에 담고 싶어 고심, 또 고심 끝에 한 가지 색을 골라 집에 왔다.

머리도 손질하고 옷도 갖춰 입고 마지막으로 봄날씨를 담은 그 아이를 입술에 바르는 순간, 뭔가 2% 부족한 아쉬움이 엿보였다. 자연스럽지 않은 색이었다. 입술과 어우러지지 않은, 입술 따로 립스틱 따로인 느낌이었다. 그 순간 직감했다. '이 아이와는 절친이 될 수 없겠군.'

아쉬웠다.

립스틱을 하나 사면 닳을 때까지 한 가지만 고집스럽게 바르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터라 절친이 될 수 없다면, 바를 때마다 아쉬움이 2%씩 남는다면... 아무리 돈도 중요하지만 바를 때마다 안타까운 너는 내게 행복을 줄 수 없을 것 같다라고 조용히 고백을 한 후,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폭풍 웹서핑 중 발견한 샤넬 립스틱! 오호라, 사고 싶어졌다. 갖고 싶어졌다.

카톡창을 열어 신랑에게 노크를 한다.

"나, 립스틱 하나만 사주라. 샤넬 립스틱!"

뭘 사달라고 하는 일이 별로 없는 부인의 발주에 남편은 잠시 당황하는 듯하더니 냉큼 사주겠다고 하는 게 아닌가?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이듯 같은 립스틱이어도 남편에게 받으면 기분이 더 좋아질 것 같아 말했는데 역시, 땡큐였다. 한참 뒤 주말에 백화점에 가서 오래간만에 이것저것 발라보고 가장 친해질 수 있는 베스트프랜드를 골라서 데리고 왔다. 요즘은 그 아이를 바르기 위해 옷도 더 차려입고 머리도 꼬박꼬박 손질하니 생활에 활기가 더해진 기분이다. 손가락 만한 작은 립스틱 하나가 바꿔놓은 내 생활의 큰 변화가 그저 고맙고 소중하다.

이런 사소한 변화로 큰 변화를 이끄는 건 앞으로도 또 도전하고 싶은 일이다.


절친, 고맙고 사랑해~ 닳고 닳을 때까지 나와 함께 있어줘.

매거진의 이전글 완벽주의자의 어설픈 글쓰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