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미새벽 Sep 24. 2021

악마의 편집의 종말을 바라며

스우파가 의외의 럭비공이 된 이유


첫번째로 탈락한 크루 웨이비의 리더 노제의 한마디.
모두가 행복하게 춤을 출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Mnet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에서 추석 직전 방송분에서는 크루 웨이비가 탈락했다. 탈락이 꼭 필요했을까? 정말로? 여기에서까지?


11명만 남겨 아이돌 그룹을 데뷔를 시켜주는 것도 아니고,  1위를 하면 몇억씩 하는 상금을 주거나 음원 출시를 도와주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따로 데뷔가 필요한 것도 아니며, 각자의 자리에서 이미 국내 탑 댄서로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방송에 노출되는 것으로 본인을 PR할 수 있다고? 그러니 이 모든 걸 감수해도 된다고? 글쎄. <댄스9>과 같은 프로그램이 증명했듯 댄서들이 주목받는다 해도 잠시 반짝일 것이고,  일반인들을 데뷔 시켜주는 오디션 프로그램들에 비교하면 이 수고의 대가로는 미비하다.



<슈퍼스타 K> 시즌2는 경이로운 시청률을 보이며 화제를 끌었는데, 특히 조별 미션 등의 과정에서 몇몇 출연자들이 '빌런'처럼 그려지면서 매회마다 투표 전쟁이 벌어졌다. 이 때 짭짤한 성공의 맛을 본 Mnet이 이후 숱하게 비슷한 프로그램들을 내놓으면서 악플테러, 눈물바다, 사과문, 해명문 등이 매번 휩쓸고 지나갔다.


이 과정 중에 우리는 배운게 하나 있다. <악마의 편집> 이라는 것.


편집 때문에 오해를 사는 일은 모든 방송에서 다반사지만 이 단어가 유행한 것은 Mnet 의 오디션 프로그램의 공이 크다. 왜냐하면 단순히 일부 내용을 잘라내는게 아니라 화난 표정을 잘라두었다가 엉뚱한 장면에 집어넣고, 한 사람의 다리가 3개가 되도록 이 장면과 저 장면을 덕지덕지 갖다 붙여 합성하는 식이기 때문이다.


이번 '스우파'를 기획하면서도 Mnet은 또 빌런들을 앞세우고, 실력없이 눈물흘리는 밉상을 제물 삼아 흥을 돋구고자 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첫 탈락 크루로 웨이비가 호명되는 순간 가장 탄식 했을 사람이 누구였을까. 웨이비의 팬이 된 시청자들? 웨이비의 댄서들?


Nope. 이 탈락시스템을 만든 제작진들.

연예인들을 제치고 화제성 2위에 오른 노제.


노제가 창작한 안무는 틱톡, 인스타그램, 유튜브를 점령해버렸다. 물론 한 두달 전인 촬영 당시에는 제작진이 이런 미래를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제 발등을 찍듯 프로그램 최고의 스타를 제 손으로 내보낸 셈이다.


지금 와서 추석 때 '노제 특집'을 하겠다는 어이없는 자막. 어떻게 1등을 해도 아무 보상이 없냐는 시청자 의견이 쇄도하자 급하게 5천만원 상금을 내건 것을 보면 얼마나 이 댄서들을 '가수들의 백업 댄서'로밖에 여기지 않았는지 알 수 있다.


아이돌 채연이 나온 이유는 딱 하나다.


아이돌 채연이 나온 이유는 딱 하나다. 배틀에서 매번 지고 예고편에 쓰기 좋게 눈물흘리라고. 가수와 댄서의 영역은 동요과 판소리만큼이나 멀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참여시킨 목적이 투명하다. 심사위원으로 앉아있는 보아조차 이 배틀에 참여하면 어떻게 될 지 모르는데, 평생 춤만 춤 사람들 사이에 춤은 부가적으로 배우는 가수를 던져놓다니.


가비 캐릭터는 어쩐지 언프리티 랩스타에서 본 듯했지만..

첫회에서의 가비 캐릭터는 어쩐지 언프리티 랩스타에서 본 듯하다. 화려하게 화장하고 꾸민 외모와 승부욕을 불태우는 댄서들의 모습에서, 서로 견제하고 감정싸움하는 그림을 얼마나 기대하며 이 방송을 기획했을까?

시청자들이 가장 열광했던 순간. 리헤이와 허니제이의 포옹.

그런데 시청자들이 감동받고 화제가 되었던 장면은 오히려 그들이 포옹하고 정정당당하게 겨루고 서로를 리스펙하는 순간들이다. 조별 미션 과정에서 얄밉게 굴다가 제작진이 그 과정을 다 촬영해서 심사위원에게 보여준  뒤 혼쭐이 나는 (슈퍼스타K에서는 정말 이런 장면이 많았다. 특히 출연자들이 어렸기 때문에 '어른'인 심사위원들은 어린 애들을 엄하게 혼내곤 했다.) 장면도 없다.


인원수를 조정하는 과정에서도 쿨하게 받아들이고, 한참 제자인 댄서와 배틀에서 붙게 되도 받아들인다.

출연자 허니제이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저는 평가하러 나온 게 아니라 평가 받으러 나온 사람이니까요. 받아들여야죠.


춤으로 먹고 사는 사람은 전국에 그렇게 많지 않다. 댄서 판이 작아서 그들이 모두 스승-제자 이거나 언니-동생이라 굳이 격력하게 싸우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친분이 없더라도, 그들에겐 이 어려운 직업을 선택한 이들끼리의 동지애와 전우애가 있고 시청자들은 더 이상 지저분한 짜깁기 편집에 속지 않는다.


'악마의 편집'을 하면서까지, 오류 투성이인 룰로 탈락을 시키고, 희생양을 만들면서까지 하지 않아도 이 프로그램은 지금보다 몇 배는 더 흥할 수 있었다.


안무 비디오 과정에서 워스트 댄서로 지목이 됐는데 거기서 갑자기 또 아무 상관없는 댄서를 지목해 배틀을 한다던가, 1등 크루가 데스매치에 갈 크루를 임의로 정한다던가 하는 순간들은 최소한의 명목조차도 없이 그저 싸움붙이기 위한 싸움이라 가슴이 절로 답답해지게 한다.


시청자들이 환호하는 장면들, 심사위원이 해줘야 할 댄스 기술 분석을 대신 해주는 유튜버들까지.. 모든 시계는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춤 자체를 정확하게 보고 즐기고 싶다는 것.


수많은 희생자들이 눈물로 대인기피증을 호소하고 프로그램이 끝난 뒤 PD를 원망하고, 문자 투표수 조작으로 PD가 실형까지 살았던 그 채널에서 10년도 더 전에 하던 방식을 반복할 필요는 없다. 그 정도의 소동을 치뤘으면 이제는 한 걸음 나아갈 때가 됐다. 불변의 흥행공식 같았던 신파 장면을 모두 도려내고 성공한 영화 '극한직업'이나 '엑시트'처럼 말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