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신파라고 욕도 많이 먹었는데 왜 외국에서는 말을 못 이을 정도로 울고 깐부 구슬치기 6회 평점을 제일 높게 평가하고 감정 몰입이 잘 된다며 극찬을 할까?신기할 노릇이다.
그럼 한국의 수많은 불치병 부모님 죽음 기억상실 등등 장면만 보여주면 다 좋아할까? ( 내 유튜브에도 이런 댓글이 참 많다)
넷플에 최근 공개된 한국 시리즈 중 지옥, D.P, 지금우리학교는 등이 있었는데 완성도와는 별개로
지옥에도지우학(지금우리학교는)에도 누군가가 죽는 장면이 나오지만 외국인들은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았다.
왜 어떤 신파는 먹히고 어떤 신파는 안 먹힐까?
예를 들어보겠다.(모든 작품 스포가득)
부산행에서 마동석이 죽을때 만삭인 아내에게 자신이 생각해놓은 아이 이름을 외치고 죽는다는 포인트가 있다.
노숙자가 죽을 때는 지금껏 무시당하고 버려질 것같던 노숙자가 결정적 순간에 희생을 해서 관객인 나를 부끄럽게 한다.
공유가 죽을때는 태어난 아기를 처음 안았을 때를 떠올린다는 포인트가 있다(한국관객들은 분유cf라고 욕했지만..)
오겜에서는 오일남 노인이 치매증상으로 이정재를 갈등하게 하더니, 또 다 알아챘다고 해서 식겁하게 했다가, 다시 용서를 해주고 구슬을 양보해서 감동을 준다. 즉 오일남의 죽음이라는 하나의 장면에 굴곡이 세네번이나 있다.
허성태와 똘마니가 구슬치기를 할때는 방금전까지 형님 형님 하고 충성하던 인간이 순식간에 "아뉜데~~" 약올리며 돌변한다. 거의 허성태의 패배가 확실시되어서 통쾌하려던 찰나, 구슬이 2연타를 꺽어치는 바람에 반전으로 똘마니가 죽는다.
이처럼 오징어게임의 신파에는 굴곡과 변주가 있다. A가 질 것같다가 B가 지고, B가 죽을 것같다가 A가 죽고 한마디로 감정씬인데도 액션씬처럼 쫄깃쫄깃 긴장감이 있다가 감정을 펑 터트리게 한다.
이제 지우학을 보자. 지우학은 부산행처럼 해외에서 선호하는 좀비물인데다가 10대들의 다양한 스토리 등 장점이 참 많은 시리즈다. 그런데 소위 신파 장면에서 이상하게 슬프지가 않다.
나연은 3회에서 정말 이기적으로 친구를 죽게 하고 시청자가 화면을 찢고 들어가고 싶을만큼 분노를 유발했다. 그럼 나연이 죽을때 통쾌하던지, 반성을 하고 용서를 구한뒤 죽어서 안타깝던지 뭔가 드라마틱한 감정을 터트릴 수 있었다.
그런데 나연은 교실에서 나오자마자 선생님이 희생해서 죽는걸 봤고 그것때문에 반성하는듯 보인다. 상식적으로 방금전까지 극단으로 이기적이던 애가 한순간에 변할리가 없다. 적어도 며칠동안 선생님과 함께 있으면서 산전수전 끝에 깨달음을 얻던지 했어야했다.
과자와 음료수를 챙겨서 친구들에게 가려고 나서자마자 죽어버리니 통쾌하지도 않고 불쌍하지도 않고 용서가 될듯 안 될듯 애매하고 찝찝하다. 이는 외국인들의 표정을 보면 알 수가 있다. 다들 떨떠름 어정쩡한 표정이다.
먹을 것을 옥상의 친구들에게 가져다주고 눈물로 용서를 구한뒤에 친구들을 위해 완전히 희생하는 장면이라면 지금보다 훨씬 안쓰럽고 안타깝지 않았을까?
구조대원인 온조 아버지는 1회부터 긴 여정을 지나서 아이들에게 오자마자 죽는다. 죽는 순간에 "돌아가는 길에 리본 매어놨어!" 라고 말이라도 하고 죽던가. 좀 더 구조대원적인 면모로 기가 막히게 아이들을 구해주고 죽던가. 아무 활약도 못하고 갑자기 물려버렸다. 외국인들도 잉???? 하는 표정으로 허탈하다고 할 뿐이다.
신파는 포인트가 있어야 한다.
사람만 죽으면 해외에서 울고불고 난리나는구나. 라는 건 말도 안되는 오해다. 미드나 헐리웃 영화가 그렇게나 쿨하고 신파 장면이 없는데는 이유가 있다. 그게 그쪽 정서일 수도 있겠지만 웬만해서는 정말 효과를 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감정이입이 되도록 서사 쌓기, 적절한 타이밍,
기억에 남을만한 포인트, 시원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분하기도 한 복잡한 감정이 들게 만들기 등등이 필요하다. (오겜에서 알리가 죽을때 불쌍하기도 하고 상우가 밉기도 하며 순진한 알리가 한심하기도 한 것처럼)
신파는 우습고 지긋지긋한 게 아니다.
잘 만들기가 대단히 어렵지만 터지기만 하면 전세계를 눈물바다로 만들 수 있는 강력한 무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