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박사과정의 디펜스
같은 학과의 친구가 박사 디펜스를 했다.
덴마크 박사과정의 디펜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공개형식이다. 디펜스를 하는 날에는 동료, 가족, 친구, 평가위원까지 한 자리에 모인다. 이 친구는 독일 친구인데 독일에서 부모님도 오셔서 참석하셨다.
디펜스는 2시간 정도 걸리는데 초반 30분은 논문의 내용을 강의 형식으로 발표하고, 이후 약 1시간 30분 동안 평가위원들과의 질의응답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리셉션 하는 장소로 옮겨서 박사 학위 수여 발표를 하고 참석한 사람들끼리 축배를 드는 자리가 열린다.
다른 친구들의 디펜스에 여러 번 참석한 적이 있지만, 오늘은 감동받고 돌아와 이 마음을 잊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이 친구의 디펜스에 유독 감동 포인트들이 더욱 많았기도 했고, 박사 초기에 디펜스를 보던 마음과 다른 걸 보니 내가 점점 학자로서 빙의해 가는 거 같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나도 디펜스를 하게 될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마음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감동받은 마음을 글로 쓰는 와중에도 이 마음을 세 가지 포인트로 정리를 해야 하나 싶지만, 진짜 세 번 감동받았다.
첫 번째의 감동 포인트는 친구가 30분 동안 자신의 논문 결과를 강의 형식으로 발표하는 걸 들으면서, 이 친구가 이 주제에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있었는 지 마음이 내게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다각적으로 깊게 파헤치려고 노력했던 그녀의 4년 간의 고군분투가 그 30분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동시에 내가 디펜스를 하게 되는 날을 미리 떠올리며 나도 스스로 그런 마음이 들도록 지치지 말고 논문을 완성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두 번째는 발표가 끝나고 진행된 평가위원들의 질문이었다. 사실상 덴마크의 디펜스 날은 이미 박사학위를 수여할 자격이 됨이 결정 나고 열리는 자리이다. 이미 디펜스 전에 평가위원회가 논문에 대해 평가하고 코멘트를 박사생에게 제출한다. 만약 논문에 수정이 필요하면 디펜스가 열리기 전에 수정 작업이 이뤄지고 다시 제출해야 하는 형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가 위원으로 참석한 교수들은 세심하고 날카로운 질문들을 던졌다. 그러나, 그 질문들은 압박하거나 난처하게 하기 위함이 아닌, 오늘의 디펜스가 끝이 아닌 미래의 독립 연구자로서, 그리고 동료 학자로서 이 주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탐구해 나갈 수 있도록 생각하게 하고 도와주는 질문들이었다. 평가위원과 친구의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 걸 바라보면서 연구 주제에 대한, 그리고 미래의 동료 학자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것만 같아 뭉클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디펜스가 끝나고 열리는 리셉션 자리에서였다.
그녀의 슈퍼바이저와 공동 저자인 또 다른 교수가 축하 메시지를 전하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슈퍼바이저는 그녀가 함께 연구할 수 있는 것이 자신에게도 영광이었다며, 그녀가 좋아하는 가수의 리미티드 앨범을 구해서 선물했다.
또한, 그녀와 함께 논문을 작성하는 공동 저자 교수는 졸업 선물로 가방을 선물하며 가방을 꺼냈는데, 그것은 케틀벨이었다 ㅎㅎ 그녀가 앞으로 연구를 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들 때, 또는 학교 안에서 정치적인 상황에 휩쓸리게 될 때도 있겠지만 그때마다 이 케틀벨을 들고 단단히 무게 중심을 지켜가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했다.
지도 교수와 박사 학생으로 만나 서로 지적 탐구 여정을 함께 하고 그 과정에서 우정을 만들어 나가며 그녀가 동료 학자로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본다는 것이 참 행복한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사과정 1년 차 때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 나에게 다가오는 걸 보니 지난 시간들이 비단 헛된 것만은 아니었으리라는 위안이 되었다. 동시에 내가 디펜스를 하는 날을 그려보며 나 역시도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겠다는 다짐으로 또 나아갈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