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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앨 May 21. 2024

행복한 장례식

내가 접한 네덜란드의 안락사

처음에 가까운 주변에서 누가 안락사를 통해 세상을 떠난다고 전해 들었을 때 내 마음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깜짝 놀라고, 화도 나고, 슬펐던 감정들. 왜, 자신의 삶을 그리 쉽게 놔버릴까. 그런 연유에서 나온 마음이었다. 울컥한다고 시부모님께 털어놓으니 자신 역시 그렇다고 들었다.


그로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주변에서 안락사를 통해 세상을 떠난 이가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나와 가까운 사이는 아니어도 내가 만난 사람들이었다. 두 분 다 우리의 가족 혹은 친구의 부모님이었다. 내게 있는 마지막 기억은 함께 밥을 먹거나 파티에서 인사를 한 거라 죽음의 그림자도, 병마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에 더 충격이었다.


이번에도 나는 마음이 착잡했다. 알 수 없었다. 만약 내가 불치병에 걸려 하루하루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더 좋아지리라는 희망이 없다면. 그런데 당장 내일 죽을 수 있다면. 죽음을 선택하기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우리 아이를 한 번 더 보고, 하루 더 보고, 그러고 싶지 않을까. 그런 미련도 없이 갈 수 있을까. 그만큼의 미련도 없을 고통이란 얼마니 처참할까. 내가 알지 못했던 고인들의 삶은 병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한 분은 심장마비 후 건강은 물론 언어능력을 잃어갔고, 다른 분은 몇 번에 걸친 유방암이 다시 또 재발한 경우였다.


학창 시절 내가 가장 좋아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여자 주인공이 쓰레기 마을에서 온갖 수난을 겪다가 힘을 길러 만인이 우러러보는 하늘 위의 마을에 도착한다. 그리고 천국이라 불리는 그 마을에서 발견한 게 길거리 곳곳에 있는 모종의 부스. 그 부스는 자살부스였다. 자살을 존엄하게 만든다니 그런 역겨운 곳이 있다며 그 부스들을 모두 부숴버리던 주인공. 아직도 그 장면이 기억에 남을 만큼 나는 딱히 종교적이지는 않아도 삶을 스스로 놓아버리는 것에 슬프고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안락사를 결정하기까지 과정이 아주 철저하다고 하지만 난 아직도 잘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믿을 수밖에 없다. 아니면 그렇게 떠나보낼 수 없으니.

남편에게 안락사는 결국 남이 해주는 자살 아니냐고 물었다. 직접 할 수 없어서 의사의 손을 빌려 떠나는 것이 아니냐고. 묻고 보니 생각이 돌아갔다. 그렇긴 하다. 혼자 할 수 없다. 환자가 어떻게 스스로 생을 마감할 수 있겠나. 그리고 아픈 방법으로 생을 마감해야 한다면 아파서 떠나려는 사람에게 너무 가혹하다. 그래서 안락사, 이것이 안락한 죽음인가.


실제로 조력자살이라는 말도 있다. 조력자살은 마지막 순간에 환자 자신이, 예를 들어 직접 약을 먹어 생을 끊는 것이고 안락사는 의사가 주사를 놓는 방법으로 환자의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주체가 다르다는 것이 중요하다. 네덜란드에는 안락사와 조력자살이 모두 허용되고 있고 12세 이상의 경우 나아지지 않을 극도의 고통이 지속될 때 여러 절차와 검사를 거쳐 이를 허용하고 있다.


안락사를 통한 죽음은 날짜가 정해져 있다. 아무리 끝날 것 같지 않은 고통도 날짜가 정해져 있다면 참고 견디기에 조금이나마 쉬운 걸까. 그 끝을 가족과 자신과 전문가가 함께 결정해 죽음의 주도권이 환자 본인에게 있으니 몸과 마음이 병에 잠식된 무기력, 고통의 상태에서 한 줄기 내 뜻대로 되는 것을 찾는 걸까.


얼마 후 장례식에 다녀온 남편을 통해 들었다. 장례식에서 많은 친구들이 고인을 위해 적어온 편지를 낭독했다.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추억을 나누었는지, 무엇을 좋아했는지 소소하고 절절한 이야기였나 보다. 부부 의사로 아프리카에서 진료를 하고 여행을 많이 다녔다는 이야기는 처음 알게 되었다.


듣기만 해도 따뜻한 장례식 이야기를 들어도 누가 우리나라의 안락사나 조력자살을 지지하냐고 묻는 다면 아직도 쉽사리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 만약 나나 내 가족의 경우라도 어떻게 할지 모르겠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게 솔직한 마음이다.


장례식 일주일쯤 후, 집으로 고인의 사진이 담긴 카드가 왔다. 보통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어 가족, 친지, 지인들에게 보내는데 장례식 후에 오는 카드는 처음 받았다. 바다 앞에서 환하게 웃는 버버리 코트를 입은 아줌마의 모습이다. 이렇게 지내시다 그렇게 가셨구나, 싶었다. 안락사로 돌아가시고 장례식이 언제라는 말을 들었을 때보다 내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갑자기, 기계적으로 죽음이 왔다는 충격보다 웃는 모습으로 사랑하는 이들의 배웅 속에 떠났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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