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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앨 Jun 18. 2024

미팅 내용을 정하기 위해 미팅을 하는 나라

네덜란드의 직장문화

네덜란드에서 살면서 영국, 독일, 네덜란드 회사에 다녀봤다. 네덜란드 회사에 다닐 때에는 아무리 외국인이 많아도 고위직은 모두 네덜란드 사람이었고 네덜란드 문화가 많이 회사 문화에 스며들어있었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도 없었고 한국 내 외국계 회사에서 일하던 방식을 그대로 썼었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은 네덜란드만의 일문화가 눈에 들어오고 나의 작업방식이나 태도도 많이 바뀐 게 느껴진다. 편한 예로는 격식 없는 직장문화다. 인터뷰에서도 '나'를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고, 개인적인 친밀감을 형성하고, 농담도 조금 하고 이런 식이다. 보일 듯 안 보일 듯 상사에 대한 충성과 정치의 정글이 존재하지만 이 나라의 평평한 땅처럼 대부분의 관계는 상명하복 하는 수직체계가 아니고, 팀장이라면 팀장으로, 팀원이라면 팀원으로 제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는 동등한 자격이다. 더 깊이 알아갈수록 네덜란드의 직장문화는 참 우리와 다르다.  


빨리빨리보다 천천히

내가 겪어본 회사들에서 일을 빨리 잘하는 건 소용이 없었다. 그럴수록 일만 더 늘어난다. 멀티 태스킹을 할수록, ‘그 사람은 얕게 너무 많은 일을 하려고 한다’는 말을 듣게 된다. 많은 일을 완벽하게,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건, 사람인 이상 권하지도 않고, 믿지도 않는 게 이곳 사람들의 생각인 것 같다. 복지도 잘 되어있고, 경쟁도 덜 하니 헝그리 정신이 없어서 그런지, 우리처럼 빨리 어딘가에 도달할 필요가 없는 게 네덜란드의 문화다. 이들은 일을 잘한다는 것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고 느껴진다. 기계처럼 쉬지 않고 일을 ‘처치’하는 게 덕목이 아니라 한 발짝 물러서서 ‘왜’라고 물어보는 게 중요하다. ‘발코니 모멘트 (Balcony moment)’라는 표현도 있다. 한창 파티장의 발코니에 나가 서서 파티를 밖에서 바라보며 순간에 치이지 않는 관점을 회복하고 큰 그림을 보라는 취지에서 나온 표현이다. 주어진 문제나 업무에 냅다 뛰어들어 고전하기보다도,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다른 일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는지, 목적과 근본을 확실히 하는 것이 일을 잘하는 것이라 느껴진다. 그래야 결과에 의미가 있으니까.

만약 빨리 할 수 있는 일을 느리게 한다면 어떨까. 느리게 할수록 문제의 본질에 가까워질 생각과 시간의 여유가 생긴다. 혼자서 하면 훨씬 빨리 할 수 있는 일을 여러 사람에게 의견을 물어보고 그들의 참여를 받는 다면, 시간 소요 대비 일의 경과는 아주 비효율적이지만,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일에 반영할 수 있고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다. 하물며 혼자 맡은 일이라도, 누군가에게 먼저 보여주고 생각을 들어보고 반영할 수도 있겠다. 여러 번 검토하면서 처음에는 보지 못한 부분을 개선할 수 도 있다. 서둘러 써서 답해버린 이메일보다도 시간을 갖고 페이스를 맞춰 쓴 이메일이 실수가 덜 하다. 맡은 일이 천천히 가도 되는 일이라면, 느리게, “비효율적”으로 일하는 게 오히려 좋은 일이다.


미팅에 미팅에 미팅, 하루 종일 미팅

내 달력이 30분 단위 미팅으로 8시부터 5시까지 차던 시절이 있었다. 이런 백투백 미팅(Back-to-back)은 화장실도 못 가게 하기 때문에 직장에서의 하루가 끝나면 유체이탈할 것 같은 지경에 이른다. 미팅마다 만나는 사람도 다르고 주제도 다르고, 긴장을 늦출 수 없기 때문이다. 새삼 점심을 일하면서 샌드위치로 때우는 직장 상사나 동료들이 이해가 갔다. 미팅이 끝나고 다음 미팅에 늦어지는데 정말 화장실에 가야 하면 사내 메신저로 "바이오 브레이크 (Bio break)"가 필요하다는 말까지 하면서 양해를 구했다. 이렇게 몰아치는 미팅은, 가끔은 진짜 중요한 내용이지만 가끔은 '정말 이런 것까지 미팅을 해야 하나' 싶은 경우도 있다. 한 번은 모 미팅의 참여가 저조해 그 미팅의 내용을 고찰해 보는 미팅에 초대되었다 (가지 않았다).

이렇게 미팅을 통해 의견 수렴에 시간을 들이고 결정에 신중한 문화는 사실 네덜란드의 지리적 취약점 때문에 나왔다는 분석도 있다. 해수면 보다 낮은 땅 때문에 물의 범람이 잦아 수로를 만들고 방둑을 만들어야 했던 게 네덜란드의 조상들이다. 그러자니 마을 모든 사람들의 동의와 협조가 필요해서 누가 독선적으로 일을 처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회의에 회의를 더 하고, 또 회의에 회의를 더 해서 모두가 만족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현명했다고 한다. 네덜란드가 정부를 수립하는 과정도 약간 비슷하다. 서로 다른 색깔의 십 수개의 당이 서로서로 미팅을 거쳐 협상하고 동의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과반수 의석이 만들어지고, 그렇게 과반수 의석을 만든 당이 정부가 된다.  

때로는 너무나 비효율적이고, 느리고, 답답한 미팅문화라고 생각해도 결국 일은 서로의 기대를 조율하는 과정이다. 상사나 일과 관계된 동료들과 대화하면서, 그 속도도, 필요한 완성도도, 반영해야 할 의견도 참작해 보면 좋다.

의견이 없는 것보다 의견 가지고 대립하는 게 좋다

여기서 똑똑하려면 자신의 의견에 대한 확고함과 관철도 필요하다. 영어로는 Assertive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솔직하고 거래에 능숙한 네덜란드 사람들은 자기 할 말을 하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데 아주 능숙한 사람들이다. 덧붙여 영미권 사람들은 모국어를 더 세련되게, 외교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내가 만난 프랑스 사람들은 어렵고 긴 단어를 사용해 창의에 바탕한 논리적 서술에 우수하다. 그리고 이들 모두 자기 의견을 제시하면서부터  타협점을 찾지 않는다. 우선 ‘내가 100% 맞다’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어린 시절부터 어른을 비롯해 또래 친구로부터 까지도 항상 배울 점을 찾고, 혹은 비교를 당하며, 자신을 개선시킬 방향을 찾아야 하는 우리의 교육관에서는 이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좀 위험하다고 여겨진다. 가끔 이의 부작용으로 권위자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함구하거나  “까라면 까야지” 하는 수동적인 자세를 가지게 되는 게 아닐까.

앞서 말한 미팅을 통한 의견 수렴하고는 좀 다른 이야기다. 미팅에서 눈치를 봐가며 생각도 없이 그냥 "예스"하는 것은 자기 확고도, 관철도 아니다. 미팅에서도 경청하면서 자신의 의견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큰 목소리와 부리부리한 눈빛으로 관철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건 일상생활에서도 느낄 수 있는 네덜란드 사람들의 생활방식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요구해서 얻어내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위해 배려해주지 않는다. 아픈 사람을 위해 있는 의료시스템도 마찬가지다. 너무 아픈 데 진료를 기다리라고 한다? 얼마나 아픈지 어필해서 응급진료를 요구해야 한다. 내가 아는 어떤 네덜란드 엄마는 아기를 분만하고 너무너무 졸려서 좀 자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데 간호사들이 이거며 저거며 자꾸 해야 한다고 들이밀길래, “모두 그만해주세요. 저 진짜 자고 싶어요. 나가주세요”.라고 했다고 한다. 병원이라는 환경에서 권위자인 간호사한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우리나라 산모가 얼마나 될까?


비슷한 맥락에서 자신을 낮춰 이야기하는 ‘토킹 다운 (Talking down)’도 불필요하고, 비생산적이다. 오히려 반대로 내가 잘하는 것, 자신 있는 것을 어필하는 ‘토킹 업 (Talking up)’이 중요하다. 실력이 있어서 회사에 채용이 되었고, 함께 동료가 되었을 텐데, 자신을 낮출 필요가 없다. 자신을 낮춘다고 다른 사람들이 좋아해 주고 존경해주지 않는다. 그냥 만만하게 보인다. 그리고 자신감이 없고, 자신의 장점도 잘 모르고, 완벽주의자라 자신을 채찍질한다고 말도 안 되는 오해를 받기가 쉽다. 자신이 잘하는 것을 어필해 자기 자리를 빨리 찾는 게 중요다. 여기서 중요한 건 자신감이지, 자만심이나 자랑은 아니다. 칭찬을 들으면 온갖 변명을 지어내며 불편해하지 말고, 그냥 감사히 받아들이면 된다. ‘고마워요’하면 될 일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지만, 이곳의 주식인 감자는 익을수록 커진다. ‘아니 별말씀을요, 천만에요, 아 아직 부족해요, 잘 부탁드려요’도 아니고, 무조건 ‘나 좀 봐줘요, 내가 최고지요’도 아니다. 우리의 어떤 경험을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지 잘 파악해서, 상황에 맞게 자신의 경험과 장점을 어필하는 게 먹힌다.


그리고 워라밸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가족이 우선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이를테면 누가 집안사정 때문에 회사 출근 시간을 조정해야하한다던가, 집 안의 누가 아파 조퇴해야 한다던가 하면 누구나 가족의 안부를 염려하거나 챙기며 “Family first”라고 이야기해 주는 것이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이 ”다 먹고살려고 일하는 것“이라 점심 식사 메뉴나 회식 메뉴 고르는 것에 진심이라면 여기는 가족과의 행복을 위해 일하지 주객이 전도되지  말라는 취지의 표현이다. 내가 싱글일 때였다. 나의 네덜란드 상사가 아이 때문에 일찍 가야 하는 팀원을 배려해 주는데, 나의 요가 학원 (당시 요가가 회사 끝나고 내 삶의 중심이었다) 스케줄은 배려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에겐 요가가 가족 같은 것이라고 말도 안 되는 말을 했지만 그 말에 수긍해 주었었다. 워라밸은 제도를 떠나 문화인 것 같다. 회사 밖의 개인의 삶을 존중해 준다는 것은 직원을 회사인으로 보기 전에 생활인으로 봐서 가능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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