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나앨 Jul 10. 2024

네덜란드에서 느끼는 한류

오늘도 네덜란드의 가장 큰 슈퍼마켓 체인 알버트 하인에서 일주일치 장을 봤다. 이번에도 농심 제품이 25% 할인이라 통조림된 신김치를 쟁여뒀다. 신라면, 순라면, 짜파게티며 불닭라면까지 파는데 기존에 가던 한국슈퍼보다 가격이 훨씬 저렴하고 앱으로 주문해 배달받을 수 있다니 너무 편하다. 한국사람이라고는 나 밖에 안 사는 것 같은 이 교외 동네 슈퍼마켓에 한국 음식이 들어와 있다니 새삼스럽다.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에 관심이 많은 네덜란드 사람들이라 김치는 Kpop의 인기 전에도 찾는 사람들이 있었다. 현지 셰프들이 김치(맛)를 버거토핑이나 양념에 쓴다거나 음식도 파는 카페 같은 데서 김치 워크숍도 한다 (거기서 김치 담그는 법을 배운 1인). 현지 피클 회사에서 김치는 몇 년째 팔고 있고 (먹어보진 않았다), 김치맛 감자칩도 있다. 볼 때마다 신기하고 반가워 사진을 찍어둔다. 요새는 대형 코리안 바비큐집들도 교외에 생기나 보다. 암스테르담 근처에 위치한 한국/일본 슈퍼마켓에는 한국인/동양인과 비 동양인이 2:1 구성인 것 같다.

코리안헤럴드가 인용하길, 네덜란드가 2023년 11개월간 480억 규모의 라면을 수입했는데, 그게 중국, 미국, 일본 다음, 네 번째 수입량이란다. 사실 그 정도는 아닌데. 옆나라 독일만 해도 한국사람도 훨씬 많고 한국 슈퍼도 규모가 큰 곳이 더 많다. 정말 뉴스기사에서처럼 네덜란드에서 수입해서 다른 유럽 국으로 가는지도 모른다. 고작해야 1천7백만이 사는 나라에서 그만큼의 라면을 다 먹는다니 그 게 사실이라면 그건 좀 이상한 일일 거다. 오히려 네덜란드가 한국물품을 유통하는데 지리적 강점이 있다는 게 보인다.

음식뿐만이 아니다. 내가 종종 보는 청소년 대상 뉴스프로그램인 NOS Jeugdjournaal 에는 Kpop 관련 클립이 한 달에 한 번쯤은 올라오는 것 같다. 좀 특이하고 비주류 컬트 제품이었던 한국 화장품은 이제 카테고리화가 된 것 같다. 아직 백화점이나 주류 화장품 체인에 들어갈 정도는 아니지만 인터넷으로 꽤 팔리고 있는 모양이다. 한 번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친구가 K-드라마 팬인데 어떤 식으로 한국스타일 베이비샤워를 해줄 수 있을까' 물어보는 글까지 보았다. 그래서 '아 우리나라 문화가 사소한 곳까지 스며들고 있구나' 싶더라.


하지만 10년이 넘게 암스테르담에서 느껴온 일상 속 한국에 대한 인식은 아직도 기초 수준이다. 오랫동안 식민통치를 한 인도네시아, 네덜란드로의 이주민이 많은 중국, 여름휴가 여행지로 자주 가는 태국, 스시와 오리엔탈리즘으로 동경의 대상이 된 일본 사이에 한국은 정치적인 이미지 외에는 별 다른 게 없다가 갑자기 새로운 문화가 보편화되기 시작해 그런지 모른다.

- 남한이 나쁜 나라? 북한이 나쁜 나라?

어느 날 누가 내 이름을 듣더니 어느 나라의 이름이냐고 묻더라. 남한 (South Korea) 이름이라 하니, 뜸을 들이다가, '북한이 가고 싶지 않은 나라죠?'라고 물어본다. 그러고 아는 척하듯 김영은(네덜란드는 J가 Y 발음이라 김정은이 김영은이 된다)과 미사일 이야기를 한다. 한두 번이 아니고 새로 만나는 사람의 반 정도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한국을 가장 쉽게 접하는 길은 아마 뉴스에서 보이는 미사일과 오물풍선 이야기일 테니,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헷갈리는 것도 이해는 간다.


- 남한이 춥다고?

북한과의 차이는 알아도 앞에 '남' (South) 자가 붙어 막연히 따듯한 동남아로 생각한다. 보통 아시아의 여행지가 태국이니 열대기후를 먼저 생각하는 것 같다. 겨울에는 영하 15도까지 내려가고 눈이 많이 온다고 하면 정말 뜻밖이라는 반응이니 평창 올림픽을 한 번 더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한나라를 직접 경험하는 것만큼 이해하기 빠른 루트도 없을 텐데.


- 한국전쟁 때 네덜란드 군인들이 참전했다.

군사력이 강한 나라도 아니고 징용제도 없으니 자기 나라의 젊은이들이 머나먼 타국에서 정의를 위해 싸우고 희생한 스토리가 아주 인상 깊은 것 같다. 내가 2012년에 암스테르담에 처음으로 이주를 했을 때 그저 들어간 서점에서 6.25를 특집으로 다룬 잡지를 볼 정도였다. 휴전국인 우리나라도 네덜란드사람들만큼 전쟁에 대해 관심이 많지는 않은 듯한데. (이와는 별개로 누가 나에게 한국전쟁에 참전한 이야기를 하면 난 항상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다.)


- 가족의 누가 한국에서 입양이 되었다.

우리 옆집 이웃만 해도 한국에서 입양된 사람이다. 사실 숫자로 보면 4000명 규모 밖에 되지 않음에도 (출처: 위키피디아) 가족의 가족까지 친다면 마치 누군가는 한국에서 입양된 것처럼 들리는 수도 있다. 한국출생의 재외동포가 4000명이 안 되는 정도고 (출처: 위키피디아) 이 대부분은 대도시 주변에 살 테니, 어떻게 보면 한국에서 입양된 네덜란드 사람을 접하는 게 한국에서 자라 이주한 사람을 접하는 것 보다 더 쉬운 일인지 모른다.


일반적인 네덜란드 사람들의 마음에 새롭고 신선한 한국 음식, 한국 화장품, 한국 팝이나 드라마에 대한 생각은 없다. 그리고 어쩌면 그게 주류문화다. 굳이 이미지를 찾는 다면 아이를 포기하는 비극적인 문화나, 전쟁을 겪어 도움이 필요했던 약한 나라, 아직도 전쟁의 위험이 도사리는 어떤 나라. 특별히 가보아야 할 이유가 없는 나라. 한국 사람인 내가 생각해도 참 K-XXX과의 그 괴리가 크다. '그랬던 나라가 이렇게 되었다'고 여러 이미지를 연결해 생각하기에는 사람들은 바쁘다. 단편적인 정보가 인상이 되어 차곡차곡 쌓이면 이 나라는 이렇지, 라고 보게 될 뿐. 유튜브만 보면 마치 우리나라 것이 최고인양 "한국에 처음 온 00의 반응" "한국 00을 처음 먹은 00의 반응" 이러는 과장(?)이 많지만 말이다. 사실 한국 내 네덜란드의 이미지는 더 없거나, 아주 niche이다 (유모차 브랜드...). 시간이 난다면 이 두나라가 더 가까워질 방법을 생각해보고 싶다.


동네 슈퍼에서 김치를 다 사다보니 잡생각이 많아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팅 내용을 정하기 위해 미팅을 하는 나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