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동물체험농장
어느 날 남편이 네덜란드 뉴스기사를 공유했다. 읽어보니 요새 애들이 아토피나 알레르기가 많고 그 이유 중 하나가 좋은 박테리아에 노출되지 않아서란다. 핀란드 학교의 의무 숲 체험을 예로 들며 자연에서 놀 때 아이들이 흡입하고 접촉하는 박테리아와 균이 중요해 보인다는 기사였다. 그 끝맺음은, 단순한 것부터 시작하라며 집에서 신발을 신기를 권하는 내용이었다. 바깥의 흙이 자연스레 집안에 들어오기 때문이라나.
이 정도 문화차이는 이제 그냥 별 감흥이 없다. 틀린 말도 아니고 말이다. 예전에 어린이집에서 신발 신고 다니는 선생님들 사이로 아기들이 더러운 마룻바닥을 뽈뽈 기어 다닐 때도 같은 반응이었다. 어린이 집에서 애기들이 빨고 문 걸 헹구고 소독하지도 않고, 하다 못해 내 아기한테 다른 아기가 빼앗아 물던 쪽쪽이를 다시 끼워주기까지 하는데, 뭐.
기사에서는 핀란드의 예를 들었지만 네덜란드도 아이들이 자연과 동물과 어울려 놀기 좋은 환경이다. 특히 페팅 주 (Petting zoo) 혹은 체험 동물 농장이 여기저기 많다. 규모도 다양해 카페나 음식점까지 딸려있고 커다란 동물농장에 온 것 같은 곳이 있는가 하면 우리 동네 동물농장처럼 작은 곳도 있다.
입장료도 없고 보통 구나 시에서 운영한다. 염소, 토끼, 돼지, 닭, 양, 소가 주요 동물들이다. 정말 농장인 거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동물들을 보고, 가까이 가보고, 사료도 주고, 만져보기도 하면서 세상은 사람만을 위한 곳이 아니라 깨닫는다. 책에서 보던 꼬꼬며 꿀꿀이며 음메가 있으니 재밌고 말이다.
무엇보다 동물들을 위한 곳이라 그럴까. 동물농장에는 냄새가 있다. 짚과 똥 냄새다.
대형 농장은 똥냄새랑 똥이 많아 남편은 가길 꺼려할 정도다.
내가 한국에서 가본 동물체험장은 어떤 쇼핑몰 옥상에 우리를 만들었었는데, 똥냄새는 덜 나도 갇힌 염소가 슬퍼 보이던지. 그걸 떠올리면 동물 복지는 네덜란드가 훨씬 앞선 것 같다.
동네 동물농장에 두 살 반 첫째랑 7개월 둘째를 데리고 갔다. 지붕 고치는 아빠 따라 한 몫 톡톡히 도와주는 어린아이, 갓 태어난 아기 토끼를 보여주는 할머니.. 평화로운 화요일 아침이었다.
농장을 관리하는 아주머니가 기운차게 인사하며 커피를 권했다. 오는 사람들과 이야기도 하고 커피도 마시는 아주머니다. 나한테 다가오더니 유모차에서 엎드려 구경하고 있는 7개월 둘째를 보고 말을 걸었다.
“애기 길 수 있겠는데요? 바닥에 내려줘요”
“네?? 길 수 있는데, 이 땅바닥에요?”
“네 여기서 기게 해요”
“여기요? 땅이요????” 난 정말 믿기지 않았다. 하다 못해 잔디나 모래도 아니고 벽돌 타일로 만들어진 바닥인데? 까슬리면 어쩌라고?
“네! 더럽지 않아요”
오, 됐다고 했다… 아주머니의 권유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정말 더러운 세발자전거를 가져오더니 앉혀보란다.
“아직 못 앉아요…”
“한 번 해봐요. 안고서”
내 귀가 얇은 건지, 아기를 한 번 앉혀보려는데, 힘센 둘째가 무다리를 버팅기며 싫어한다. 그래서 다시 유모차로 안착.
아주머니는 또 왔다. (…) 이번에는 땅에서 주운 검고 긴 깃털을 들고서. 둘째에게 건네준다.
“더럽지 않아요”
음… 그래. 남편이 준 기사가 떠올랐다. 더럽지 않아… 그래, 깃털 만져봐도 좋지.
“… 감사합니다”
아기에게 쥐어줘 봤다. 너도 체험해 보렴 - 기쁘게 생각하는 순간 입으로 향하는 깃털… 으아. 그 짧은 순간, 아무래도 좀 핥은 것 같았다…당장 뺏어서 첫째한테 보여주었다.
아주머니는 더럽지 않다고 정말 알려주고 싶은 모양이다. 더럽다기보다는 혹시나 위험하고 다칠까 봐 사리는 건데. 다음에는 다 사양해야겠다.
4주 된 아기 토끼를 첫 째에게 보여주는데 첫째가 손가락을 우리 안에 넣었다. 화들짝 놀라 잔소리가 나왔다. 위험하다고, 토끼 이빨이 날카롭다고, 보라고, 깨물릴 수 있으니 절대 안 된다고… 그런데 다른 아이들은 손가락도 넣어보고 만져보는 게 아닌가. 그것도 막 걸음마를 시작한 돌쯤 돼 보이는 아기가.
그 아기는 나를 더 놀라게 했다. 할머니와 부모는 울타리를 열고 동물들이 사는 곳에 들어가더니 한가로이 앉아있는 염소 옆에 아기를 데려갔다. 아기를 앉히니 당연히 아기는 염소를 만져본다. 염소가 짜증내는 게 보였다. 그런데도 부모는 아기를 가만히 둔다. 또 만졌다. 염소는 귀찮아서 뿔로! 아기 얼굴을 여러번 밀어 버렸다. 그 재서야 엄마가 나서서 아기를 떼어놓았다.
충격 속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돌아보니 첫째도 보고 있다.
“와, 엄마 깜짝 놀랐어. 저러다 염소가 아기를 다치게 할 수도 있잖아. 저 아기 엄마아빠는 저렇게 했지만 엄마는 못해주겠어. 위험하잖아. “
이제는 나도 어린이집에서 올 때마다 얼굴이며 주머니에 모래가 가득한 아이를 보면 잘 놀았구나 하고 그냥 털어주고 만다. 하지만 내가 동물들하고 같이 자라지 않아서 그런가? 흙이 묻는 건 그런가보다 해도 분변이 묻거나 동물 옆에 너무 가까이 가는 게 꺼림칙하다. 아무래도 네덜란드 부모들은 뭐가 위험한 상황인지 기준이 다른 것 같다. 상해 뿐 아니라 건강을 헤치는 바이러스나
박테리아에 감염이라도 되면 어쩌나. 또 있었다. 지붕 고치는 아저씨가 낡은 플라스틱 슬레이트 지붕을 바닥에 그냥 던져버려 조각이 튄 거다. 내 아이는 멀리 있었지만 충분히 잘 못 튈 수 있었다.
7개월 아기를 땅에서 기게 하고, 떨어진 닭 깃털을 건네 주고, 돌 아기랑 염소를 어울리게 하고, 지붕을 아기들 노는데서 고치는 동네 동물농장. 생각해 보니 황당함을 지나 안전을 위해 다시는 가지 말아야 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벌써 또 갈 생각이 든다…
아마 내 마음은 이런가 보다.
안전은 내 기준에서 돌보면 되고 아기들이 장난감 트랙터 타보고 자연과 어울리는 게 집 안에서 플라스틱 장난감만 가지고 노는 것보다 훨씬 더 멋진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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