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둘째 아들이 6개월, 첫째 아들은 두 살 반이다. 둘 다 네덜란드에서 낳고 기르는데, 여기라고 다를 건 없다. 요새 종종 힘들고 어렵다. 육아가 그렇겠지, 이 또한 지나가고, 그리워하려나 생각하며 하루를 보낸다.
어느 날 첫째를 위해 놀이공원에 갔다. 점심때가 되어 피자와 바게트 샌드위치를 사 셋이 나눠 먹었다 (한국이었다면 좀 더 건강한 옵션이 있었겠지만). 그러고 보니 이제 이유식 시작한 둘째도 뭘 먹고 싶은 눈치다. 내가 안 보는 사이 베이글을 먹고 있던 먹성이라 아마 피자나 샌드위치가 궁금했던 걸까. 소금이 많이 들어간 걸 차마 줄 수 없어 가지고 온 식빵 한 장을 유모차에 넣어줬다. 아직 앉지 못해 엎드려 있는 아기가 빵을 잡고 먹으려 하는데, 안쓰러우면서 드는 생각.
내가 네덜란드 엄마가 되어가는구나.
여기 이유식은 식빵으로 시작한다. 빵이 주식이고 오물거리며 씹기 연습이 되기 때문이다. 첫째가 이유식 시작할 때는 자주 안 줬는데 이제 빵은 우리 집 필수템이다. 카페에서 애들용으로 빵 한 줄을 가져온 엄마를 보고 흥미로웠는데 이제 내가 종종 그런다. 외출할 때 몇 장만 가져가는 게 더 일이다.
첫째는 식빵을 이렇게 먹는다.
그냥 조금씩 떼서
버터 발라서
크림치즈 바르고 딸기 넣어서
치즈랑 치킨햄 넣어서
버터랑 치즈 넣고 파니니처럼 구워서
지난번에는 땅콩버터에 치즈와 치킨햄을 넣어 달리더라. 바쁜 와중 간단하고 가지고 다니기도 편해 어쩔 수가 없다.
식빵뿐 아니라 크루아상도 자주 주게 된다. 첫째랑 집에서 크루아상을 만들어 먹는데 둘째가 아주 빨리 기어와 잽싸게 하나 먹었다. 맛있는 건 어떻게 아는지!
이유식 고민은 다했다. 네덜란드식 육아 2년 하고 6개월, 난 빵에 기대 산다.
첫째 때 이 빵이 최고 이유식을 접하고 느낀 감정을 여기 적어뒀다
내가 네덜란드 엄마가 다 되었다는 느낌은 또 이럴 때 받는다. 아기가 불편하면 비가 와도 밖으로 나와 유모차를 민다. 야구모자 쓰고.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방수되는 옷이 유용하다) 정처 없이 걷다 보면, 그 유모차의 움직임에 아기는 스르르 잠에 빠진다. 그러면 다 잘 때까지 한 30분은 더 걷는다. 검은색 유모차에 검은 잠바에 검은 신발과 모자까지. 까마귀가 따로 없다.
생각해 보니 이 유모차로 아기를 달래는 건 땅이 평평한 네덜란드라 쉬운 것 같다. 유모차에 태워 한 시간가량 걸을 만한 길이 많고, 꽤 조용하고, 인도에 유모차가 (아니면 휠체어가) 내려가고 올라가게 턱이 낮게 디자인되어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무거운 유모차도 밀기가 너무 힘들지는 않다.
밖으로, 안되면 정원으로 나가는 것도 네덜란드 엄마가 돼 가는 신호일까. 6개월 미만 아기가 있으면 알 것이다. 외출공포… 언제 울고 보챌지 몰라 집 안에 있어도 언제고 터져 버리는 울음. 순둥이 둘째라도 집안의 소음과 혼잡함, 내가 다른데 주의를 뺏기는 모든 순간이 어려운 거다. 그래도 밖에 나간다. 우선 첫째가 밖에 나가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에서 귀한 일조를 하고, 더 에너지를 쓰게 되고, 자연을 보거나 새로운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하루 세 시간 바깥에서 놀게 하라고 한다. 날씨가 좋으면 어린이집에서 하루 종일 모래놀이만 하고 돌아온다. (다른 프로그램 없이 그냥 시설 놀이터에서 노는 것이다.)
그래서 둘째가 2개월째 때부터 유모차에 유아용 보드를 달아 첫째를 태우고 산책 중이다. 둘째는 누워 자거나 나무를 보다 이제는 종종 같이 산책하는 기분이다. 그래도 둘째가 불편해하면 집으로 돌아가는 게 약속이다. 정원에 바운서나 매트를 사용해 둘째를 내 시야에 두고 첫째가 노는 것도 방법이다.
산후조리라는 것도 짧게 하고 2-3개월 때부터 몸쓰는 현실 육아에 유모차 밀고 밖으로 나가는 나, 칭찬한다… 20kg 찐 만큼 체력은 20배 없어졌지만, 없는 힘이라도 짜내야하는거다. 옆집 사십대 중반의 엄마는 얼마전 넷째를 봤는데, 한달만에 자전거에 신생아를 태워 장을 보러 가더라 (신생아용 카시트를 안전하게 자전거에 달린 박스에 달 수 있다. 궁금하다면 Bakfiets를 검색해보기를 권한다.)
아이들이 한국어로 듣고 말하고 읽고 쓰게끔, 난 한국어만으로 대화한다. 명절도 챙기고 한복도 입히고, 한국 음식도 먹이고, 한국에 갔던 일, 한국 만화도 보여준다. 그래서 네덜란드에서 난 한국 엄마지만, 주변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는 내 엄마로서의 습관이 느껴졌다. 이제 운동 시작하고 살만 빼면 더치 엄마다 (는 아니지만). 왜 다들 그리 살이 안 쪘는지… (이유는 안다, 임신 중에도 운동이 생활습관이고 식습관이 건강하기 때문이다)
훗날에는 어떨까. 키나 성적에 연연하지 않는 네덜란드 엄마들 모습은 닮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