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나앨 Sep 16. 2023

마가린 바른 빵이면 이유식 땡

네덜란드식 육아는 쉽구나

남녀노소가 체격이 크고 좋은 편인 네덜란드 사람들의 아침은 뭘까요.

간단하게 빵 두쪽인데요. 그럼 점심은 뭘까요. 똑같이 빵 두 쪽이에요. 우리가 생각하는 탄단지 균형 잡힌 식단이나 보기만 해도 즐거운 푸짐한 한 끼는 저녁으로만 먹어요. 그리고 따뜻한 음식은 저녁에 한 끼면 충분하다고 하고요.

음식이 에너지를 보충해 주는 연료일 뿐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정신세계인데요. 먹을 것에 신경을 쓰지 않으니 좋은 점도 많은 것 같아요. 살도 안 찌지, 뭐 먹을까 궁리하지 않아도 되지, 식비 굳지…


지독한 식문화 미니멀리스트인 네덜란드 사람들을 알게 되면, 건강과 음식의 상관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죠.


대부분의 어린이집에서는 점심밥을 주지만 샌드위치를 줘요.


네덜란드 친구가 어릴 때 채소는 캔에 들은 채소만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학대받았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 마냥 깜짝 놀라 가슴이 벌렁거렸고요.

손질되어 나오는 채소들 (출처: ah.nl)

키가 엄청 큰 남편이 한창 성장기 때에 식빵에 초콜릿 스프링클을 뿌려 직접 점심을 (간식도 아니고) 싸갔다고 했을 때는 세상이 불공평하다 싶었죠. (나도 식빵에 초콜릿 스프링클 잘 먹을 수 있었을 텐데 싶어서는 아니고) 먹는 걸 떠나 키는 유전이구나 싶어서요.

성장기 아이들은 물론 성인들의 점심식사 (출처: 위키피디아)

달콤한 케이크는 누구 생일 일 때 한 달에 한 번 정도면 충분하다고 누가 그러더군요. (식후땡으로 커피에 케이크 한 조각시키는 요새 카페 문화랑 너무 다르죠)


다수의 네덜란드 사람들이 뭘 어떻게 먹든 이제는 초연해져서 그냥 우리 가족의 식문화 버블 안에 살고 있는데요. 특별히 한국적이지도, 네덜란드적이지도 않고 그저 국적 없이 편리와 영양소에 신경 쓴 식사를 하고 있어요. 그런 만큼 이제 이유식을 제법 먹는 아기에게 무엇을 주어야 할까는 고민거리예요.


사실 아기가 먹는 식단은 제가 먹는 식단보다 더 영양이 풍부해 보입니다.

삼시세끼 때면 초록색 (예를 들면 완두콩), 노란색 (호박), 주황색(당근), 빨간색 (토마토), 흰색(잣죽), 갈색 (소고기) 혹은 분홍색 (연어)가 조르륵 담긴 그릇을 보며 잘 먹어주기를~ 바라게 되죠.

탄단지와 과일과 채소를 생각하고 단 거 좋아하는 입맛을 생각하고, 손질하고 요리하고 냉동하고, 식단 생각해 해동하고 데우고, 노래를 부르거나 숟가락을 바꾸거나 하면서 온갖 수단을 동원해 아기가 밥을 먹게 하는 게 일과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이유식을 고민하는 모든 초보 엄마아빠가 그럴 것 같은데요.

조금 더 노력해 더 많은 영양분과 칼로리를 섭취하게 도와주고 싶은 마음 아닐까요. 그래서 신체가 클 수 있을 만큼 크게, 건강하게 도와주고 싶은 거죠.


우리나라에서 식기세척기가 보급이 잘 안 되는 진짜 이유가 엄마들이 설거지라도 직접 해야 한다는 모종의 강박 같은 책임감 때문이라고 한 마케터가 이야기를 해줬는데요.


정성이 들어가는 아기자기 예쁜 도시락들

아기용 유산균을 비롯해 키까지 크게 해 준다는 온갖 영양제들

이런 걸 생각해 보면 엄마들의 노력과 이를 더 부추기는 아기와 어린이 식산업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엄마의 강박 같은 책임감을 더 키우는 건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네덜란드 권장사항을 읽다 보면 이 복잡한 이유식을 너무 쉽게 풀어주네요.

초절정 음식미니멀리스트 어른들처럼 아기들도 먹는 것은 심플해요. 노력은 최소로, 영양은 (그들 생각에) 최대로 하는 가이드 아닐까 싶습니다.

9개월 이후 권장 스케줄

처음에는 놀랐지만 이유식이 어려워질수록 쳐다보게 되는 네덜란드식 아기 음식. 소개해봅니다~


1. 빵이 최고야

우리나라가 주식인 쌀로 이유식을 시작하듯,  이곳은 빵으로 시작합니다. 맞고 틀리고, 뭐가 좋고를 떠나 그냥 문화의 차이입니다.


2. 빵이 하루 두 끼

어른들이 먹는 것처럼 아기들도 아침에 빵, 점심에 빵. 뭘 곁들이는 게 아니고 그냥 빵입니다. 아침 점심으로 밥만 한 공기씩 먹는 거랑 비교가 될까요?

출처: voedingscentrum.nl

3. 빵에는 마가린을 발라서

아 곁들이는 게 있습니다. 살면서 사 본 적이 없는, 트랜스지방으로 악명 높은 마가린… 마가린이 아기 성장에 필요한 지방을 주니까라는 게 이유입니다. (이 것만큼은 패스~~~ ) 아니면 땅콩버터를 발라주랍니다.


4. 슈퍼에서 사는 빵이면 오케이

사워도우, 아티잔, 홈메이드 전혀 상관없이 그냥 폭신폭신한 빵이면 됩니다. 크러스트 떼고 주라는 이야기는 있어도 첨가제 확인하라는 내용은 없어요.

빵을 얼마나 먹는다고? 얼마 못 먹던데… 하니까, 모유나 분유에 적셔 눅눅하게 주라고 합니다.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건강한 빵 사워도우를 사 먹여보니, 눅눅하게 하는 게 잘 안 되더군요.


5. 빵이 별로면 물에 바로 풀어지는 쌀가루나 비스킷을 주고

6. 간식은 과일

7. 저녁은 영양소 잘 잡힌 음식

8. 9개월 후면 한텀은 물 배 채우기(!)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획기적입니다.


이대로 하면 너무 쉽지 않을까?

이유식 뭐 대충 해도 되지 않을까?

엄마가 지치지 않으려면 육아도 쉽게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래도 될까?


이렇게 초간단 네덜란드식 방법이 제 생각을 조금씩 바꾸어가는 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은 맛있어서 줄 서먹는 프렌치베이커리에서 산 빵입니다. 슈퍼에서 아기용 빵을 파는 것도 아니고, 아기만 준다고 맛없는 빵을 사주기도 그렇고요. 엄빠처럼 토스트한 빵에 버터를 발라 한 조각 주니까 오물오물 혼자 잘 먹네요. 옷이며 턱이 음식물에 젖지도 않고 아주 편하답니다.

하지만 역시 많이 먹지는 않아서 직접 입에 넣어주었네요. 그리고 점심부터는 다시 채소랑 고기로 보충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고개를 듭니다 ㅎㅎ

아빠의 한 수. 빵과 망고 함께 갈아 먹이기.




매거진의 이전글 네덜란드에서 육아휴직을 보내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