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미 May 31. 2024

우리 아들 연우이야기

연우이야기 1

<인권강사로서 나를 소개하는 말>

나는 인권강사다. 교육하며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마다 이런 이야기를 꺼낸다. “저는 네 명의 장애인의 가족입니다. 그래서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자연스레 장애인 복지 현장 사회복지사가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배 아파 낳은 아이는 아니지만, 마음을 다해 키우고 있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한 지 얼마 안 되어 학대를 당했습니다. 마음이 찢어지도록 고통스러웠고, 학대 가해자와 싸우다가 인권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인권 강사로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만남>

2013년 봄. 아는 복지관 사회복지사가 긴급하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래서 잠시만 돌보아 주기로 하고 4살 꼬꼬마 연우(가명)를 만났다. 연우는 처음 우리 집에 온 날, 4시간 동안이나 울다 그치다 울다 그치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배가 고팠는지 사과를 껍질째 두세 입 뜯어먹고 구석에서 잠들었다. 


<아빠, 괜찮아?>

처음에 기약했던 ‘잠시만’이 석 달 이상으로 길어진 어느 무더운 여름날, 우리 부부는 연우와 함께 외출했다. 남편이 연우에게 빙수를 사 주겠다고 나선 길. 길이 좁아서 남편이 앞에서 걸었고 나는 뒤에서 연우 손을 잡고 좇아갔다. 그런데 남편이 돌에 걸려 넘어졌다. 우당탕 넘어지는 남편을 보고 내가 달려가려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연우가 말했다. 


“아빠 괜찮아?”


우리는 세 가지 이유로 무척 놀랐다. 첫째, 자폐성 장애를 가진 연우가 스스로 말을 했다. 둘째, 연우가 남편을 ‘아빠’라고 불렀다. 셋째, 그렇게 말한 문장이 완벽했다. 나는 연우가 상황에 맞는 질문을 적절하게 구사해서 놀랐다. 사실, 연우가 가지고 있는 말 주머니는 가득 찼는데, 장애 때문에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나는 연우의 자발어(스스로 하는 말)에 감격했는데, 남편은 연우가 자기를 아빠라고 인식하고 불렀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단다. 


연우는 그날부터 우리 아들이 되었다. 정식으로 입양하지 않았지만, 우리 부부방 침대에서 함께 자고, 어린이집 졸업식장과 초등학교 입학식 모두 남편 손을 잡고 들어갔다. 아이가 나물 반찬을 먹기 싫어할 때 남편이 “아빠처럼 크려면 먹어야 해”라고 말하면 마법처럼 꿀꺽 삼킨다. 아이는 잘 때도 남편 다리를 꼭 붙들고 자고 내가 야간근무를 하러 간 일요일 저녁에는 둘이서 자장라면을 끓여 먹으며 자유(?)를 만끽한다. 연우는 남편의 아들이 되었다.


<부모로서의 성장, 그리고 감사>

나는 우리 연우 초등학교입학 후 방과 후교실에서 겪었던 학대 사건을 통해 인권강사가 되었다. 연우 덕분에 나는 발달장애인 부모가 어떻게 느끼는지 절절하게 알게 되었다. 


나는 과거에 사회복지사로서 열정만 가득했다. 그래서 부모님이 상담 오면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할 수 있어요. 연습하고 훈련하면 되어요. 어머니 더 단호해지셔야 해요.” 하지만 나는 연우를 만나고 바뀌었다.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고, 사람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만나는 부모님을 모두 선배님으로 모실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지나면 연우가 우리 품에서 10번째 생일을 맞이한다. 조그마하던 아이가 우리 품에서 내 키만큼 자라났다. 그리고 우리 부부도 부모로서 성장했다.

연우야, 우리 아들이 되어주어서 고마워. 


매거진의 이전글 온 우주가 빌어준 기운으로, 파이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