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ne jeong Oct 02. 2023

아빠의 마음

완벽한 점수

perfect (완벽한) score =백 점, 만점


아빠의 점수로 백 점이나 만점보다 더 높은 점수가 있다면 그 점수를 남편에게 주고 싶다.

아들과 며느리가 일주일 동안 여행으로 집을 비운다.

아들은 150평 정도 되는 마당에 집을 빼면 넓지도 않은 마당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일주일에 이틀 쉬는데 휴일이면 e스포츠와 휴식, 밀린 잠에 열중한다.

마당의 잔디나 나무를 방치하다 못해 며느리가 웃으면서 불만을 이야기하면 남편은 하루 날을 잡아서 해결한다.

이른 저녁을 밖에서 먹고 아들 집에 도착하자 이미 해는 꿈나라로 갔고 나도 슬슬 눈꺼풀이 무거워져서 침대를 넘겨다본다.

밀린 브런치 글도 읽고 답글도 쓰고 책을 펼치자, 이번에는 눈꺼풀이 아니라 눈이 무겁다.

아직도 나에게 최고의 수면제는 책인가 보다.


거의 9시간을 자고 일어났다. 집에서 준비해 온 과일과 빵으로 아침을 먹고 남편은 일을 시작했다.

오래전에 말끔하게 치웠던 정원은 마치 정글 같았다.

옆집으로 넘어가는 나뭇가지, 하늘까지 올라갈 것 같은 열대성 나무가 태풍에 집 쪽으로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 피해가 올 것 같다.

거실 옆 작은 마당에 포인세티아는 지난번에 밑동까지 잘랐는데 어느덧 허리를 훌쩍 넘는 높이로 다시 자랐다.

통행하기에 불편한 나무를 정리하고 큰 줄기는 작게 잘라서 버렸다. 뒤뜰 의자와 테이블에 쌓인 먼지를 빗자루로 쓸더니 걸레로 타일 바닥을 닦는 남편이 보인다.

도와줄 일이 있는지 물었더니 없다고 한다.

책을 읽다가 창밖의 남편에게 자꾸 눈이 간다.

 e스포츠에 열심이더니 배가 제법 나온 남편.

대걸레가 망가졌다며 수건 한 장 달라더니 쪼그려 앉아서 바닥을 닦는데 얼굴에서 땀이 뚝뚝 떨어진다.

많은 움직임으로 배의 지방이 현기증을 느끼며 이사 갔으면 좋겠다.


책과 남편에게 눈길을 주다가 어느 깊숙한 곳에 기억으로 가는 길을 따라 걸어간다.

아빠의 기억을 떠올리면 딸 셋인 우리 자매에게 하얗고 달콤한 전을 부쳐 주었던 생각이 난다.

쫄깃하고 달콤한 맛이었는데 바로 부친 전이 뜨거웠다. 그것을 아빠가 작게 떼어서 입김으로 호호 불더니 우리들 입에 차례대로 넣어주었던 일. 엄마와 아빠를 위한 김치전은 따로 만들었던 자상한 아빠.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일은 아빠가 항상 딸 셋을 데리고 목욕탕 간 일이다. 엄마가 힘들까 봐 그렇게 했다고 이야기하는 엄마의 얼굴에는 뿌듯한 미소가 머물렀던 기억도 찬조 출연하듯 올라온다. 물놀이를 마음대로 하도록 허락했던 아빠. 딸 셋이 인형을 목욕시키고 머리감기고 종알종알 놀던 일. 목욕탕에 가는 날이면 할머니에게 못난 놈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아빠.


기억은 갑자기 십여 년 뒤로 껑충 뛴다. 병원 침대에 누워있던 아빠의 모습은 저승사자와 반반씩 몸을 나눈 듯 보였다.

몇십 년의 세월이 흘러 할머니를 비롯한 집안 어른들의 장례식에서 아빠의 생전 이야기를 들으면 생각나는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 기억이 뭉텅 잘려 나간 느낌이다.

언니의 기억에는 아빠가 퇴근하면 나를 무릎에 앉히며 간식도 주고 이야기도 했다고 말하지만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아빠와의 기억은 손으로 세어도 남을 정도밖에 없지만 늘 남편 같은 아빠를 꿈꾸었나 보다. 할머니 방 툇마루에 앉은 어린 나, 가을 햇살이 춤추는 대추나무에 빨간 대추를 보며 내일쯤 따먹어야겠다고 입맛을 다시고 있다.  작고 어린 나는 이상과 현실을 배우는 중인가 보다.



아이들도 남편을 최고의 아빠라고 꼽는다. 그의 점수는 늘 만점이었으나 요즘 들어 점점 줄어든다. 언제까지 물고기를 잡아서 줄 것인가! 잡는 방법을 알려주고 스스로 잡도록 해야 한다. 방법을 알려주어도 잡지 않으니 안타까운 아빠는 오늘도 잔디깍이에 시동을 건다.

남편도 아이들이 더 잘하고 있으니 이제 자신이 할 일이 없다고 하면서도 도울 일을 늘 찾는다.

두 번 세 번 이야기하는 경우가 생기면 잔소리처럼 생각한다.

각자가 건강하게 독립적인 삶을 살도록 응원하는 삶.

아이들이 문제점을 스스로 찾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순간까지 기다리는 여유. 문제점은 아이들보다 인생을 오래 겪어온 우리 눈에 당연히 먼저 보인다. 보이는 순간 해결하려는 우리 세대의 조급함을 알 수 없는 아이들, 부모가 되어본 적이 없는 아이들은 모를 수밖에!

내가 원했던 아빠와 아이들이 원하는 아빠도 달라졌기에 서로의 눈높이에 맞게 조절이 필요하다.




한 줄 요약: 과유불급.

매거진의 이전글 곰은 싫어 여우로 살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