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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프랑스시골소녀 Jul 05. 2021

따뜻하고도 시원한여름밤

나는 지금 프랑스 시골에 살고 있다.

매일의 기록을 남기려고 노력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로는 내 기억력을 나 스스로가 믿지 못하고, 잊힌 세세한 기억들은 다시 기억 상자에서 꺼내기 위해서는 글과 사진만큼 좋은 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록에 대한 고민이 있다면 즐거운 순간, 순간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 어떠한 제약 없이, 기록에 신경쓰지 않으며 마음껏 즐겨야 할지, 아니면 이후의 기억을 위하여 순간을 덜 즐기더라도 기록을 해야 할지, 어떤 것이 나에게 더 유익하고 행복할지 고민이 든다. 결국 나를 위한 기억 기록일지, 나를 위한 물리적 기록일지 결국 행복 기록일 테니 어느 쪽이나 좋긴 하다. 매일매일 행복기록을 고민하고 있는  

나는 지금 프랑스 시골에 살고 있다. 




오늘은 크리스티앙 아저씨의 따뜻함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사실 그를 처음 봤던 날, 그의 따뜻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털털털 움직이는 낡은 트럭을 몰고 웃을 때 누우런 치아가 보이는 아저씨가 박력 있게 운전하며 나를 어떤 산속으로 데리고 가는데 어느 누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아저씨를 안 지 1달이 다되어가다 보니 그의 츤데레 같은 따뜻함에 반할 때가 있다. 


첫 번째 따뜻함. 이전에 설명했던 뜨거운 모래 위에 바닥이 녹아내린 내 빨간 구두를 기억할지 모르겠으나, 내가 너무 사랑하는 구두라고 말하자마자 아저씨는 자신이 고쳐주겠다며 그 두꺼운 손으로 요리조리 본을 뜨고 본드를 발라 구두를 만져주셨다.(고쳐주셨다고 말할수없는 이유가있기에) 모두들 구두가 망가지면 요즘은 당연하다는 듯 버리고 새로 사라고 했겠지만, 망가진 내구두에 대한 그의 태도는 너무나도 달랐다. 내 마음을 헤아리기라도 한 듯, 고쳐주겠다고 말해준 마음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그렇게 정성스레 손수 본드를 바르고 조여두었던 구두는 그의 따뜻함이 넘쳤는지 발가락 들어가는 데까지 붙어버려 신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지만 그래도 나는 그 구두와 따뜻한 마음으로 이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망가진 물건과의 따뜻한 이별. 


큰 수술을 받은듯한 내 구두


두 번째 따뜻함. 숙소 앞에 만들어주신 나만의 해먹. 누웠을 때 해가 비치지 않을, 나무가 적당히 해를 가려주는 위치에 레이첼과 나의 해먹을 묶어주신고 쿨하게 가시는 아저씨의 뒷모습을 기억한다. 해먹의 로망이 있긴 하지만 뭐 얼마나 머물까 싶었다. 그러나 해먹이 없었다면 나의 행복은 1% 줄었을것이라 확신한다. 낮잠은 기본이고, 개미 구경도 하고, 바람 구경도 하고, 책도 보며 정말 많은 시간을 보는데, 온몸을 감싸는 해먹에 누워서 오감을 열고 느낀 모든 것들은 아마 앞으로도 평생 그곳 이외에 어떤 곳에서도 느낄 수 없을 것 들이다. 그만큼 나는 그곳에서 느낀 모든 순간들을 너무 사랑했다.



세 번째 따뜻함. 1평도 안 되는 아주 작은 화장실에서 앉으면 문에 한 가득 딸의 어린 모습들이 있다.  와이파이가 잘 터지지도 않아 외로울 수도 있을만한 곳인데도 고개를 들고 하나하나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사진에 몰입하게 된다. 중요한(?) 순간에 따뜻함을 느끼도록 한, 아저씨의 의도가 아녔을지도 모르지만 그 안에서 느낀 아빠로서의 따뜻함을 느끼긴 했으니 따뜻함으로 쳐본다. 



네 번째 따뜻함. 남프랑스 산속 깊숙이 살면 문명이 뭔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절대 알 수가 없다. 티비도 안 나오고, 와이파이가 자주 끊겨 인내심이 웬만하지 않으면 영상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산속에서 조용히 사는 것도 너무 좋지만, 가끔 사람들이 또는 새로움이 그리울만할 때면 주변의 관광지를 데려가 주시기도 하신다. 아저씨가 데리고 간 모든 곳들 중 베스트 오브 베스트 한 곳만 기록해본다. 그곳은 커 다한 원형 협곡을 둘러 내려가다 보면 도착하는 마을이다. 옆에는 아찔한 낭떠러지가 이어진 40분 동안 협곡을 둘러 돌기만 한다. 내가 보고 있는 이 협곡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아찔하고 보고만 있어도 어지럽다.  나는 절대로 운전을 할 수 없는 위협적인 협곡을 둘러 내려가면 도대체 뭐가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렇게 설레이는 미로속을 헤맨듯한 기분이 들다 도착한 곳. 웃음소리와 시원한 물소리로 꽉 차있다. 파라다이스. 내가 봤던 모든 곳들 중 이곳을 나는 나만의 파라다이스라 부르고 싶다.  (다시 가게 된다면 꼭 운전 잘하는 친구를 데려가야 한다. 무조건.)  이렇게 오늘도 따뜻하면서 시원한 여름밤이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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