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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프랑스시골소녀 Aug 08. 2021

16. 해바라기가 더 좋아진 이유

나는 지금 프랑스 시골에 살고 있다.


프랑스에 오기 전 상상했던 프랑스 시골살이의 내 모습은 건강한 음식을 먹으며 살도 빠지고 추가로 튼튼한 복근을 가지게 되어 햇볕에 살짝 그을린 채로 섹시하게 땀을 닦는 모습을 상상했었는데,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치즈를 끊임없이 먹어대는 까만 꾸숑(돼지를 불어로 하면 꾸숑인데, 돼지라는 직접적인 말보다는 귀여운 억양의 불어가 덜 상처될듯하여)이 되어 가는 듯하다. 

프랑스 시골 꾸숑이 되어가고 있는


나는 지금 프랑스 시골에 살고 있다.





밭에 가는 길. 해바라기 무리가  빼꼼히 머리를 들고 나를 쳐다보고 있다. 사실 나보다는 오늘 아침에 새로 맞이한 태양을 바라고 있는 거겠지만, 끝이 안보일 듯 펼쳐진 해바라기들을 보고 있으면, 똑같이 생긴 얼굴들이 쳐다봐서 조금 부담스럽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언제나 그곳을 지날 때면 또 왔냐며 인사해주는 따뜻한 그들이다. 그렇게 또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음을 느낀다.



여기서 해바라기가 좋아진 또 하나의 이유가 생겼다. 프랑스는 아침 빵에 여러 가지 잼 들을 펼쳐놓고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생각보다 프랑스의 빵들은 단순하다. 바게트, 통밀 빵 정도의 단순한 빵들을 주식으로 먹어서 인지, 빵에 잼은 필수다. 다양한 쨈 종류를 그날그날 입맛대로 골라먹는 재미를 매일 깨달아가고 있는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조합이 한 가지 생겼는데, 정말 매일매일 먹어도 절대 질리지 않고, 계속 계속 먹어도 계속 먹고 싶은 조합. 그건 바로 





참깨 퓌레와 해바라기 꿀 조합이다.

참깨 퓌레. 땅콩 잼 같은 점성에 고소한 맛이 나는 텁텁한 참깨 퓌레를 빵에 슬며시 깔고 그 위 달지만 달지 않은 해바라기 꿀을 얹어 빵을 뜨거운 블랙 티에 살짝 적셔 먹으면 텁텁, 달달, 촉촉이 모두 느껴지는 게 진짜 순간의 행복을 가져다준다. 방상이 알려준 꿀 조합인데, 말 그대로 꿀 조 합이다. 심지어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빵이 없어지는 게 아쉬울 정도다. 바게트 한 줄 다 먹을 수 있지만 참아본다. 이렇게 아침마다 먹고 먹고,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해바라기와 하루가 시작되고 나는 그렇게 해바라기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오늘은 작은 일상 얘기를 추가로 해보려고 한다.  나는 집에서 불을 잘 안 키고 사는 편이다.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에 적정량의 빛이 주는 안정감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창문이 크고 많은 집을 좋아한다. 온전히 햇빛으로만 생활하고 해가 지는 시간에 맞춰 집의 밝기도, 거실에 드리우는 그림자의 길이도 점차 변화되어 내가 지금 어떤 시간 때를 지나고 있나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좋아하는데, 본의 아니게 이곳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불을 끄고 생활하게 되었다. 이유는 모기. 이전에 지냈던 곳은 완전 산속 청청 숲이라 오히려 모기가 없었는데, 지금 사는 곳은 약간 도시와 근접해 있는 마을이라 모기가 많다. 더위에 문을 열어두는 대신 거실 등을 을 켜지 않고 종종 저녁을 먹는데, 오늘은 생각보다 자녁 준비가 늦어 늦은 저녁을 먹게 되었다. 남프랑스 여름 해는 9시~10시쯤 지지만 오늘은 8시 반쯤 저녁을 먹기 시작했으니 점점 어스름이 깔리는 거실에 내 동공이 점점 커져간다. 어느새 어두워진 어둠깔린 거실에 방상과 세실이 조심스레 얘기를 꺼낸다.  


"내 얼굴 보여?"
"응 보여. 왜?"
"유리가 나중에 한국 가면 이렇게 말할 거 같아!"
"뭐라고?"
"프랑스 사람들은 저녁을 어둠 속에서 먹는다고 말이야 모기와 함께"
"프랑스는 전혀 그렇지 않아. 오해하지 마"

그렇게 우리는 짙어지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대화를 하며 더듬거리는 남프랑스의 여름 저녁을 맛있게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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