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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프랑스시골소녀 Aug 23. 2021

매일 아름다움을 배우다

나는 지금 프랑스 시골에 살고 있다.


요즘 프랑스 영화를 저녁마다 보고 있다. 방상과 세실은 나의 불어 듣기와 발음을 위해 저녁 식사 시간마다 함께 불어 자막이 나오는 영화를 굳이 찾아 틀어주고, 심지어 영화의 흐름이 끊길 지라도 내가 이해 못하는 표정을 지으면, 언제나 영화 재생을 멈추고 열변을 토하며 영화 내용을 설명해준다. 너무 열심히 설명해줘서 사실 그들의 설명을 이해 못할지라도 이해하는 척, 이해한 표정을 지으며 리액션을 할 때도 있지만 말이다. 점심시간엔, 방상과 둘이 집에 돌아와서 점심을 먹으며 영화 "부산행"을 보기 시작했다. 이미 본 영화지만, 프랑스 더빙 및 자막이 나와 나의 불어 실력 위함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의 히트작 영화를 방상에서 소개해주는 문화 교류의 마음으로 30분 정도 되는 점심시간마다 짬짬이 부산행을 보던 셋째 날.

갑자기 방상이 내게 물었다.

'마지막에 누가 살아남을 거 같니?'
'나 이 영화 봐서 결말 아는데?'
'너 이 영화 봤다고?'
'방상 너도 이 영화 봤어?'
'응 나도 봤어'

그렇게 우리는 서로 봤던 영화를 점심때마다 처음 보는 영화처럼 서로를 위해 열심히 보고 있었던 것이다. 서로의 배려에 감동하며 끝까지 보기로 했다. 이미 봤던 영화를 또 보는 걸 좋아하는 나지만, 이 시간을 완전히 방해하는 단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프랑스 더빙이었다.  0.1%도 어울리지 않고 매칭도 안 되는 공유의 프랑스 더빙 목소리. 그의 목소리가 100% 어색하게 들리는


나는 지금 프랑스 시골에 살고 있다.
 



오늘은 알레스에서 서커스 공연이 열리는 날이다. 서커스. 그냥 이 단어만 들어도 설레는 날이다. 세실은 오늘 조금 늦게 퇴근한다고 하여 방상과 나만 서커스를 보러 알레스로 향했다. 서커스장을 마주한 나는 순간의 행복감이 서서히 젖어들었다.  햇살이 따스하게 비추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서커스장이 반짝 빛나고 있었고, 아이들은 각 나라 공주들이 모두 모인 듯 색색 공주 치마를 입고 걸어 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약속 없이 그저 마을 공연을 보러 마실 나온 이웃들과 반갑게 비쥬(프랑스식 볼뽀뽀)를 하며 안부를 묻고 있었다.



사실 내가 상상했던 서커스장은 화려하게 공 굴리고, 공중 부양하고, 점프하고, 코끼리 나오는, 그런 종류의 공연이었지만, 서커스장 곳곳에서 펼쳐진 작은 공연들이 더욱 나를 설레게 하였다. 어떤 공연은 두 배우가 열연하여 그 뜨거운 태양 아래 몸 개그 공연을 펼쳤는데 소소한 몸개그에도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은 까르르 거리며 공연에 스며들었다. 억지웃음을 짜내는 몸개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내가 여기 앉아 말도 안 되는 몸개그에 웃고 있다니, 실로 놀라웠다. 어쩌면 이곳에서 말이 안 통하는 내게 최고의 공연은 몸 개그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든, 어른이든, 외국인이든, 누구든. 우리는 하나. 위아 더 월드.



일부 공연이 끝나면 각자의 컵에 맥주를 양껏 담아 노래를 배경 삼아 맥주를 한 모금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그 기분은 딱 한 줄로 표현할 수 있다. 이 동네 사람이 된 소속감이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그 공간에 있는 내내 나도 이 동네 살면서 정말 이 동네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맥주 한잔 마시며 이웃들과 소소한 일상 얘기를 하며, 음악을 즐기는 내 모습.

아가를 안고 나와 즐기는 아이 엄마에서부터 세상 걱정이 뛰어다는 아이들까지. 내가 원했던 시골 마을의 따스함이었다.  하지만 이내 곧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내가 여행자이라는 사실이 슬퍼지기까지 했다.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느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빨간불에 잠시 대기한 차에 행색이 초라한 여자가 창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방상이지만, 오늘은 창문을 잠시 내려  여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더니 차를 한쪽에 세우고  여자에게 돈을 주고  자리를 떠났다.  방상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여자분이 임산부인데 남편에게 맞아 현재  곳도 없고 밥도 제대로  먹어 구걸을 하고 있다고 했다. 방상은 본인이 지금  돈으로  여자를 완전히 도와줄  없겠지만, 세실과 같이 임신한 여자의 몸으로써 오늘 밤만은 편하게   있도록 돈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나에게 설명하는 내내 그의 눈빛은 촉촉해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마음이 촉촉해 진채로 집에 도착했는데, 세실이 현관문 앞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 방상과 내가 나오면서 열쇠를 현관문 옆에 두고 갔어야 했는데, 공연에 늦을까 빨리 나오느라  사실을 새까맣게 잊고 말았던 것이었다. 하지만,  모든 상황에서 내가  놀란 부분은 세실의 태도와 말이었다.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웃으며 건넨 첫마디.

'공연 재미있었어?'

그러더니 미안해하는 방상과 내게 자기는 괜찮다며 즐거웠는지 물어보는 그녀를 보며 만약 나였다면?  제일 먼저 뭐라고 말했을까?  열쇠  놓고 갔냐며 화를 냈을까? 문자나 전화로 빨리 오라고 독촉했겠지? 심지어  무더운 여름날에 임신한 몸이었는데 말이다. 오늘 나는  그와 그녀의 아름다움을 배웠다.  이렇게 아름다움을 배워나가다 보면 나도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있겠지. 언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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