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프랑스시골소녀 May 08. 2021

5. 정말 이상한 날이야 (1)

나는 지금 프랑스 시골에 살고있다.


크리스티앙 아저씨와 수잔 아줌마와 이야기를 하다 보면 멍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앞서 언급했었던가? 그들은 스위스에서 퇴직하고 남프랑스에서 사는 스위스인들이다 (사실 이 또한 추측)

그들은 불어보다 독일어가 더 편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대화를 하다 보면 순식간에 독일어로 변한다.  
내가 못 알아듣는 불어를 하고 있나? 싶어 자세히 들어보면 1도 모르는 독일어다. 그럴 때면 레이첼과 나는 그냥 그 옆에 조용히 그들을 바라보고만 있다. 


독일어를 모르는 영국인 레이첼과 한국인인 나. 그리고 독일어 하시는 이혼한 스위스인 부부와 함께

나는 지금 프랑스 시골에 살고있다.




오늘은 몽펠리에 가는 날이다. 

몽펠리에는 프랑스에서 손꼽히는 큰 도시로, 며칠 전부터 크리스티앙 아저씨는 몽펠리에 카니발에서 드럼 연주를 하신다며 카니발 얘기를 어찌나 하시는지, 레이첼과 나는 며칠 전부터 잔뜩 기대에 차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나팔을 불고 북을 치거나, 화려한 카니발 차들의 행렬을 지켜보는 우리의 모습을 날마다 상상해왔다. 그날이 드디어 온 것이다. 우리는 시골 소녀들처럼 큰 도시에서 열리는 카니발에 간다며 아침부터 부산스러웠다. 오랜만에 화장품을 꺼내 화장도 하고, 한 칸짜리 캐리어 안에서 그나마 가장 예쁘다고 생각했던 옷도 꺼내보며 신나 있었다. 


레이첼은 연분홍 꽃무늬 점프 수트를 꺼내 입었고머리는 핀을 꽂아 말아 올려그녀의 작은 얼굴을 더 돋보이게 하였다. 나 또한 보라색 꽃무늬 점프 수트를 꺼내 그녀와 맞춰 입었고아끼는 빨간 구두를 꺼내 신었다. 
오랜만에 하는 화장이 어색하기도 했지만, 그간 출근길 버스에서 익혔던 손기술은 아직 죽지 않았다. 크리스티앙 아저씨는 피크닉도 이참에 가야 한다며, 도시락까지 쌌다. 빨간 보자기에 어제 만들어놓은 살구 파이, 치즈, 빵, 샐러드를 챙겼다.


그리고 도착한 곳


크리스티앙 아저씨와 몽펠리에 바닷가


몽펠리에 지중해.

우산이나 파라솔 하나 없이 그대로 모래 위 썬텐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마치 그들은 살이 더 익길 바라는 마음으로 앞면, 뒷면, 옆면까지 고루 익히고 있었다.  레이첼은 유럽 백인들은 피부가 약간 갈색, 검을수록 더 건강해 보인다고 느껴서 썬텐을 많이 즐긴다고 하였다.  이렇게 썬텐을 즐기는 사람 사이를 요리조리 걸오며 우리도 자리를 잡고 도시락을 펼쳤다. 지중해를 바라보며 먹는 도시락. 맨날 먹던 음식들이었지만 오늘은 기분이 다르다. 크리티앙 아저씨는 역시나, 늘 그렇듯, 점심 후 잠깐의 낮잠을 즐기셨고, 레이첼과 나는 수영복을 가져오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뜨거운 모래에서 “뜨거워 뜨거워”만 외치며 프랑스인 마냥 썬텐을 즐겼다.  




몽펠리에 근처 공원, 드디어 카니발 시작이다. 

공원 입구를 들어가자 2명의 아저씨와 아줌마가 빨간 풍선을 손에 쥐어 주신다.


빨간 풍선과 레이첼


“춤추실 거죠? 춤춰야 합니다. 당신은 빨간 풍선을 가졌으니까요”
“네 그럴게요”

온 힘을 다해 카니발을 즐기겠다며 시골소녀들이 어떻게 노는지 보여주겠다며 서로 앙다문 입술로 들어간 공원.



아직 초입이라 그런 걸 거야. 크리스티앙 아저씨 리허설 때문에 일찍 와서 그런 거지 아직 시작 시간이 멀긴 했지.  실망하긴 이르다며 계속 공원을 걸었다. 카니발 복장을 한몇 무리들만 보일뿐. 그뿐이었다. 


뭔가 이상한데?”
사람들은 다 어디 갔지?”
여기서 페스티벌에 참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뿐 인 거 같은데?”
아마그런 거 같아”
근데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페스티벌이 아닌 거 같아”
… 아마도?”


어리둥절한 레이첼과 나는 계속 두리번거리며 점차 설렘을 잃어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크리스티앙 아저씨가 참가하는 카니발은 몽펠리에의 작은 공원에서만 이뤄지는 소규모 동네 카니발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고개를 끝까지 들어야 볼 수 있는 거대한 카니발의 차량이나 흥이 넘친 발재간으로 춤추는 부대, 나를 잡아먹을 듯 쳐다보며 악수를 청하는 무대 위 섹시한 언니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5~10명 내외의 아이들과 노인들, 그리고 몇 안 되는 젊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마치 학교 학예회, 체육대회를 연상시키는 몇 그룹들이 공원을 북을 치며 3번 정도 도는 것이 오늘 카니발의 전부였다. 




우리 왜 화장하고이렇게 옷을 입고 왔지?”


레이첼과 나는 서로 한껏 들뜸에 치장했던 우리를 바라보며 웃음과 멍을 반복했고, 그렇게 황량한 공원을 마냥 걸었다. 그때 갑자기 왼쪽 발에서 이전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카니발에 간다며 소중하게 꺼내 신었던 나의 최애 빨간 구두의 밑창이 떨어지고 만 것이다.


레이첼이거 봐”
“무슨 일이야?”
아마 아까 몽펠리에의 바닷가의 모래가 너무 뜨거웠나 봐”
오 이런
괜찮아이건 심각한 일이 아니야~ 신경 쓰지 마”

오늘 우리가 느낀 황당함과 당황스러움이 너무 컸던지 신발 밑창이 떨어진 것은 그리 심각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내가 좋아했던 빨간 구두... 안녕..


“그나저나 우리 아저씨의 카니발이 시작되기 전까지 1시간이나 남았는데 카페에 갈까?”
“왜 안 되겠어? 가자”


그렇게 불어를 간신히 알아듣는 영국인 레이첼과 한국인 나는 몽펠리에에서 카페를 찾기 시작했다. 

작가의 이전글 4. 삼시 세 끼를 집에서 먹는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