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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프랑스시골소녀 Jun 13. 2021

나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잘 보내고있는 걸까?

나는 지금 프랑스 시골에 살고 있다.


스페인 피를 받아 열정이 넘치고 언제나 소리를 지르듯 얘기하는 스위스인 크리스티앙 아저씨의 말투에는 악센트가 있다.  그가 내 이름을 부를 때면 내 이름이 저렇게 우악스러웠나? 싶기도 하고,  강하면서 차분한 영국인 레이첼이 영국 악센트로 내 이름을 부를 때면, 내 이렇게 저렇게 고급스러웠나? 싶기도 하다. 

때로는 우악스러우면서, 고급스러운 이름이 되는 


나는 지금 프랑스 시골에 살고 있다.  




지난 주말, 크리스티앙 아저씨 집에서 3시간 거리에 위치한 엑상 프로방스에 다녀왔다. ('다녀왔다'라는 말을 쓰는 걸 보니 이곳이 정말 이제 내 집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남프랑스를 꿈꾸며 가장 살고 싶었던 곳인 엑상프로방스에 가기 전 나는 온통 설렘뿐이었다. 세잔과 물의 도시로 유명한 엑상프로방스에 도착. 첫 느낌은 "젊음"이었다.  프랑스인들이 은퇴 후 살고 싶어 하는 이곳에서 내가 '젊음'을 느꼈다고 하면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가 살고 있는 구석진 조용한 시골 마을과 비교할 수밖에 없다 보니 엑상프로방스는 내게 젊음과 활기가 넘치는 곳이다.   





이곳에 나는 윤지를 만나기 위해 왔다. 나의 첫 직장 동료 겸 친구인 윤지는 프랑스 대학원을 가기 위해 1년 반전부터 프랑스에서 살고 있다. 사회 초년생인 우리는 매일 야근에 쩌든 채로 수다를 떨던 어느 날 둘 다 미래에 프랑스 삶을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꼭 다시 프랑스에서 만나자며 여느 인사치레처럼 얘기했었는데, 정말 우리가 남프랑스에서 만났다. 그동안 못했던 얘기를 밤새도록 나누고 또 나누며 끊임없이 얘기했고, 모든 이야기의 끝은 우리가 정말 남프랑스 하늘 아래 같이 누워있다는 게 신기하고 믿을 수 없다는 듯한 감탄사로 마무리되었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하며 "자야만 해"를 외치다 결국 아침 새소리를 들으며 밤을 새우고 말았다. 그래도 좋았다. 남프랑스에서 한국말로 수다를 떨 친구가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한 밤이었다. 

 

엑상 프로 방스에서 맞이한 첫 아침. 윤지는 나를 처음 자신의 집 옥탑방으로 데려오며 자신의 집에서 가장 사랑하는 몇 가지를 소개해주었다. 이를테면 정각에 들려오는 종소리, 큰 침대, 그리고 창문 앞 지붕으로 가끔 찾아오는 고양이. 운이 좋았는지 그날 그 고양이가 찾아왔다. 옥탑방 작은 창문에 보이는 지붕 위에 찾아오는 고양이. 고양이와 인사를 하고 있으니 종소리가 들린다. 거리가 꽤 있는 성당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종소리가 꽤나 선명하다.  




윤지는 아침부터 김치찌개와 닭갈비를 나를 위해 요리했다. 한국에서 요알못이었던 자신이 여기서는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으니 스스로 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제는 업자 솜씨가 되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나는 생각보다 프랑스 음식이 잘 맞아 한식이 그리 그립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윤지의 프라이팬에서 올라오는 불그스름한 빛의 고추기름들을 보니 나도 모르게 반가웠나 보다. 4인분 김치찌개와 닭갈비를 둘이서(나 혼자 3인분) 해치워 버렸다. 심지어 밥을 먹으며 한국 예능까지 틀어줬는데,  김치찌개를 먹으며 한국인 옆에서 한국 예능을 보고 있으니 잠깐 한국에 갔다 온듯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2박 3일의 엑상프로방스의 짧은 여행은 순식간에 지나갔고, 여행 마지막 날 마르세이유 바다 구경 후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나는 시골에 살기 때문에 미리미리 서둘러야만 한다. 마르세이유 바닷가에서부터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기차 타고, 트램 타고, 버스 타고, 교통수단을 5번이나 갈아타고 도착한 집 근처 마을. 아저씨와 약속한 시간이 다가오자, 떨리기 시작한다. 


'아저씨와 소통이 제대로 안돼서 아저씨가 안 나오시면 어쩌지?'

'안 오시면 어떻게 연락하지? 아저씨는 문자도 잘 안보 실 텐데..'

'버스 내리는 곳이 이곳이 맞나?' 


아저씨와 만나기로 한 시간이 5분 지났을 무렵. 저 멀리 레이첼과 걸어오는 아저씨 모습이 보이자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온다. 그제야 내가 무사히 잘 다녀왔구나 싶었다. 집에 돌아가는 내내, 나는 엑상프로방스에서의 여행이 어땠는지 조잘조잘 차 안에서 얘기했다. 2박 3일 한국말을 얼마나 많이 했던지 그새 불어를 잊어버린 기분이 스멀스멀 들며 집에 다 와갈 때쯤 갑자기 크리스티앙 아저씨가 레이첼에게 말했다.


“유리에게는 비밀이야”


둘은 비밀스러운 눈빛을 주고받았고 나는 영문을 모른 채로 집에 도착했다. 개들이 나를 반기며 짖는 소리가 산속 깊이 메아리쳤다. 


“우리 집이구나. 내 침대구나”

안도감으로 몸이 늘어지려 할 때, 레이첼이 내게 말했다
 
“너에게 놀랄만한 것을 보여줄 거야”
“뭐?”
“따라와”
 
레이첼을 따라갔고 그곳에는 크리스티앙 아저씨가 미소를 지으며 갓 태어난 새끼 양 두 마리와 함께 있었다.
 
“어제 태어났어. 오늘은 2일째야”
“우아~~~~~~~~~~~~~~~~~~~~~~~”
 


새하얀 털을 가지고, 분홍 코가 반짝 빛나는 하얀 새끼양 한 마리와 만지면 뭉실뭉실 기분이 좋아질 거 같은 털 색을 가진 갈색 새끼 양 한 마리가 엄마 양 옆에 꼭 붙어 있었다.

 
“내가 없는 2박 3일 동안 우리 식구가 또 늘었네”





내가 잠깐 자리 비운 그 사이 새끼를 낳은 어미 양에게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양들이 ‘메에에’하고 울자마자 내 마음에 기쁨과 따뜻함이 서서히 채워져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도, 잠깐 함께 하지 못했던 크리스티앙 아저씨도, 레이첼도, 심지어 양들까지도. 각자 자신의 시간들을 잘 보내고 있구나. 나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보내고 있는 걸까? 문득 생각이 드는 밤이다. 밤이 깊었다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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