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동아리에서 느끼는 즐거움
독서모임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나즈막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나를 발견하고 슬며시 웃음이 났다. 사실은 멤버들을 만날 생각에 아침부터 설레었다. 독서모임이 끝나면 나는 주로 바람이 시원한 하구둑 강둑을 따라 걷거나, 은파 호수공원을 산책한다. 천천이 걸으면서 모임 하는 동안 내가 들은 말, 내가 했던 말들을 되뇌인다. ‘아! 그 질문엔 이렇게 답했어야 했는데!’
‘그 부분은 참 좋았어.’‘그 사람은 그 주제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따위 생각들을 하며 책 내용을 한 번 더 새겨본다. 그런 시간들은 나를 성장하게 만들고, 나 스스로 나에게 집중하게 하고, 내가 나를 좋아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언니. 나랑 같이 독서 모임 한번 나가볼래?” 절친의 권유로 처음 시작한 독서 동아리의 이름은 <문학으로 철학 읽기 (줄여서 문철)>이었다. 회원은 나 포함 6명, 그 중의 한 명은 부산 에서 군산까지 오는 회원도 있었다. 처음에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부산에는 독서 모임이 훨씬 더 많이 있을텐데 굳이 여기 멀리 군산까지? 오래되지 않아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이해하게 되었다. 같이 책을 읽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 분위기가 좋아서였을 것이다.
문철은 한 달에 한번 만나는데 한번은 문학에 관련된 책을, 또 한번은 철학에 관련된 책을 같이 읽는다. 회원들이 각 2권 정도 추천하는데 서로 자기 책을 추천하고 싶어 한다.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같이 읽는 맛을 아는 까닭이다. 우리는 저녁을 같이 먹으며 간혹 와인을 한 잔씩 곁들이기도 하면서 책과 인생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면 술술 이야기가 더 잘 나왔다. 평소에 알던 친구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책을 읽고 토론하는 모습은 상당히 멋져 보였다. ‘어떤 주제에 대하여 그토록 조리있게 말하는 모습이라니.., 저렇게 깊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그런 친구의 모습에 자극을 받아 나도 열심히 책을 읽었고, 그 모임의 분위기에 스폰지처럼 빠져 들어갔다. 책을 읽고 나서 나누는 주제는 거의 우리 삶의 주요한 질문과도 잇닿아 있어 그 사람의 삶의 고민과 철학에 대해 알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나의 생각들을 그 모임에서는 진솔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정리되지 못하고 흩어져있던 생각들이 조금씩 다듬어져 가는 느낌이었다.
집에서 혼자 읽었던 책들은 그저 글자만 읽고 넘어갔던 적이 많아서 쉽게 휘발되었지만, 같이 읽은 책은 오래 기억에 남았고 더 깊게 생각하고 더 많이 느끼게 하는 장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백 권의 책을 혼자 읽는 것보다 한 권의 책을 여럿이 읽는 게 낫다’는 누군가의 명언을 실감하면서 새로 모임에 들어오는 회원들에게 내가 자주 하는 말이 되었다. 지금은 일요일 낮에 시립도서관에서 모임을 갖는다. 시간대를 옮기면서 예전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약해져서 조금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오히려 책에 집중할 수 있는 장점도 있어 꾸준히 모임을 잘 꾸려가고 있다.
‘코로나 19’라는 사상 초유의 펜더믹 상황을 지나오면서, 얼굴 보고 만날 수 없는 ‘모임 해체’라는 절대절명 위기의 순간을 우리 모임도 겪었다. ‘금방 코로나 상황이 좋아지면 계속할 수 있겠지.’ 하면서 막연히 몇 달을 기다리기만 했다. 그러나, 책 모임을 하지 않는 공허함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이어서 온라인을 통해 화상회의 방식으로 모임을 계속 해왔다. 그 방식도 나름 유용한 면이 있었다. 회원 중에 약국을 하는 회원이 있었는데 안산으로 사업장을 옮겨 군산까지 모임을 위해 두 시간 넘게 달려오곤 했다.‘줌(zoom)’으로 모임을 하니, 그런 불편함이 해소되었다. 나 또한 고등학생 딸아이 학원 픽업 시간과 겹칠 때 운전을 하면서도 토론이 가능했다.
또 하나, 내가 요즘 제일 애정이 가는 독서모임이 있다. 이름은 ‘오독오독’
내가 사는 지방도시의 대표 동네서점, 한길문고 상주작가에게 에세이 수업을 같이 받은 사람들이 수업이 끝나고도 아쉬움이 많이 남아 같이 책을 읽기로 모임을 만들었다.
우리 구성원은 나이 육십이 넘어 제일 연장자인 이샘, 청소년자치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청일점 오샘, 50대 워킹맘인 나와 서샘, 7살 애기 엄마이자 우리 반장인 조샘, 그리고 우리의 에세이 선생님 배작가님까지 6명이다. 매달 한 번씩 만나 책을 읽고 소감을 나눈다. 1년분 책을 미리 추천하여 선정하고, 추천한 사람이 그 날 이야기할 꺼리를 발제한다.
이번 달에 우리는 이민진 작가의 <파친코>를 같이 읽었다. 책을 추천한 배작가님이 미리 같이 이야기할 주제와 질문을 발제하여 단톡방에 띄워놓았다. 첫 번째, 책을 읽은 소감 말하기. 이샘은 이 시기에 아버지가 일본에서 생활하셨다 했다. 평소 말이 없으셨던 아버지를 생각하며 이 소설에 빠져들었다고. 두리샘은 정교한 캐릭터와 상황묘사가 좋았다고 했다. 나는 지금 힘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했고, 세상에는 민주주의니 자유, 평등, 평화와 같은 높은 이상을 위해 투쟁하고 전쟁을 불사르는 사람도 중요하지만, 일상에서 먹고 사는 일, 삶을 살아내는 일도 그 자체만으로 고귀하다는 생각을 했다.
발제 세 번재 질문은 ‘소설에서 가장 마음 쓰이는 인물에 대해서 말하기’였다.
서샘은 어쩔 수 없이 야쿠자가 된 ‘고한수’라고 했고, 배샘과 이샘은 짧게 살았지만 많은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었던 ‘백이삭’이라고 했다. 공통으로 주인공 선자에게 감정이입이 되었고, 오샘은 그렇게 죽을 정도로 조선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게 싫었던 ‘노아’라고 했으며, 나는 솔로몬과 피비가 서로 좋아하고 사랑하지만 일본이라는 장소성 때문에 헤어지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또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부분을 함께 읽는 시간을 가졌다. 어떤 문장은 회원들이 다 같이 밑줄 그은 부분이기도 하고, 어떤 문장은 미처 눈여겨보지 않았던 문장을 다른 회원을 통해 발견하기도 한다. 우리 막내 조반장님이 책 본문이 아닌 작가의 말 중에서 한 구절이 좋았다고 하면서 소개해주었다.
다섯번째, ‘역사는 우리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문장을 읽으며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에 대해 이야기했다. 조샘은 대부분 버틴다는 느낌으로 살지만, 순간의 행복을 찾는 힘으로 산다고 했고, 이샘은 아버지의 삶과 아버지의 피가 내 안에도 흐르고 있어 살아가는 힘이 되어준다고 했다. 서샘은 늘 열심히 즐겁게 살려는 태도가 살아가는 힘이라 했고, 오샘은 신앙이며 나를 필요로 하는 존재와 소명을 위하여 살아간다고 했다. 작가인 배샘은 써야 할 이야기가 있어서, 나는 자연속에서 살아갈 힘을 얻고 또 하고 싶은게 너무 많다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다른 사람들의 살아갈 힘에 대해 들으면서 나의살아갈 힘이 몇곱절 더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파친코1, 2>를 한마디로 표현하기였는데, 나는 김승희시인의‘그래도’라는 시 한구절을 같이 나누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회원들 대부분이 재일조선인의 삶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 책을 통해 재일조선인의 삶에 대해 알고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이 역사소설의 큰 장점이자 매력이 아닐까 한다.
이렇게 독서모임을 하다보면 혼자서는 절대 읽지 않을 책들을 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작년에 읽은 SF소설 테드 창의 ‘숨’이 내게는 그랬다. 역사 소설도 전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분야인데, 파친코를 통해 작가의 위력에 대해 절감하면서 관심이 생겼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재일 한국인의 삶에 주목하고 있으니 말이다. 독서 동아리활동을 통해 주로 에세이나 소설, 철학으로 편식하던 독서습관이 차츰 분야가 확산되고 균형잡혀 가고 있다.
세 번째 내가 가지고 있는 독서모임은 <회현 부모들의 책수다>이다. 이 모임은 딸아이가 회현중학교에 다닐 때 학교에서 주관하여 만들어준 부모들의 독서 토론 동아리이다. 학교 선생님이 책을 선정해주시고, 때로 학부모들이 추천하기도 한다. 회원들이 전부 회현중학교 학부모들이라서 책은 주로 청소년 문제나 교육 관련 도서가 선정된다. 학부모라는 공통점으로 만나면 책 이야기도 하지만 육아 상담 시간이 더 길어지기도 한다. “우리 아이가 이랬는데 저랬는데..., 이런 일이 있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등.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뿜어나오는 유쾌한 에너지로 같이 있으면 많이 웃고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 들어서 아이가 고등학교에 진학하고도 나는 계속 이 모임에 나가고 있다.
또하나 장점은 학교의 지원을 받아 도서를 무료로 지원받는다는 점이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청소년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의 언어를 배워서 써먹으면 딸아이는 “엄마, 그런 말은 어떻게 알았어?” 하며 더 마음의 문을 여는 느낌이었다.
아이들의 언어뿐만 아니라 사고방식, 문화 등을 자연스럽게 습득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준다.
네 번째, 내가 속해 있는 독서 모임은 <직장 동호회, 책빵 가즈아>이다. 직장에서 약간의 지원을 받아 월 1회 정도 만나는 독서 모임이다. 같은 직장인들로 구성되어 있어 초반에는 주로 자기계발서나 사회 전반적인 문제를 다룬 책이 많았지만, 요즘엔 젊은 신규직원들이 들어오면서 인문학 등 다양한 분야로 범위가 넓어졌다. 회현 동아리와 마찬가지로 책에 대한 이야기도 좋지만, 직원간 친목 도모의 이점도 있다.
독서 모임을 하고 돌아오는 마음을 뭐라고 표현할까? 충만?
낮동안 풀리지 않고 쌓여있는 업무 스트레스를 조금은 떨쳐버리는 듯하다. 어디에서, 어느 공간 어느 시간에서 이렇게 진지하고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엄마와도 친구와도 자식과도 못 나누는 이야기들을 우리는 여기에서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한다. 심지어 “나는 얘기 안했는데...”하면서 극소심 A형인 내가 손을 들기도 한다. 이런 관계가 이 지상에 존재한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진짜 진짜 감사하다.
책을 같이 읽는 사람들, 같이 읽고 같이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 참으로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