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완 Mar 13. 2023

저기 그런데 나이가..?

수평어쓰기에 필요한 조건 

처음 만나는 사이에 나이를 묻고 궁금해하는 습관은 한국에서 유독 강하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예전에는 스스럼없이 나이를 물었다면 그래도 요즘엔 직접적으로 묻는것은 실례라는 인식때문에 자제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도 여전히 마음속으로는 궁금해 미치겠다는걸 나중에 대화를 해보면 알수있습니다. 직접적으로 묻진 않지만 궁금해하는건 여전하다는 것이죠.


저는 상대방의 나이를 궁금해하지 않는게 대략 10년정도 됐습니다. 궁금해하지 않으니 물을 일도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좀 더 친해지게 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야기를 나눠보면 대략 나보다 얼만큼 많구나, 얼만큼 적구나 하는것이 느껴지긴 하니 대화할때도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상대가 누구든지 저는 편한 말(존중어와 평어)를 사용하니까 나이가 많고 적음이 전혀 상관이 없고 그래서 궁금해할 일이 없습니다. 


이렇듯 수평어를 사용하면 나이차이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나이차이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반드시 좋은가? 좋은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려면 호칭문제도 함께 이야기해야 합니다. 수평어와 호칭, 그리고 나이차이는 서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수평관계에 도달하게 된다


인간관계는 원래 수평적인 관계로 시작됐습니다. 원시시대에 자연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개인은 집단화되었고 조직화되면서 역할에 따른 위계질서가 생기긴했지만 그것은 어쩔수없이 인간이 선택한 것이지 결코 자연스러운 방식은 아닙니다. 오랫동안 역할을 나눠서 살아가다보니 시간이 흐르면서 자식에게 세습되고 그렇게 신분계급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신분제가 남아있는 문화권은 여전히 존재하고 닭이나 침팬치같은 동물사회에서도 명령과 복종같은 수직관계가 관찰되기도 합니다. 수직관계는 앞으로도 사라지지않고 유지되겠지만 인간은 될수있는 한 수평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하고 그래야만 인간이 비로소 인간답게 살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지오웰의 소설 1984. 권력기구에 의해 감시당하는 삶을 비관적으로 표현했다. 시스템이 인간성을 저버릴 때 이렇게 암흑세계가 펼쳐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수직관계는 인간사회에서 결코 없어질 수 없습니다. 비인간적이지만 단시간에 효과적으로 '기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표에 집중하는 회사와 이겨야하는 스포츠팀, 그리고 원칙과 규율이 중요한 교도소나 군대같은 곳은 수직관계가 잘 작동하고 반드시 필요합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곳은 이런 곳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생활공간입니다. 집과 동네, 학교와 마트, 공원과 식당같은 곳처럼요. 우리는 이런 장소와 시간에 수평관계 품안에서 푹 쉴 수 있어야 수직관계의 시간을 견뎌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들과 수평관계를 추구해야 합니다. 이 말은 너무나 당연한 말입니다. 마치 '우리는 앞을 보며 걸어야합니다'라던가 '연필이 닳았다면 깎아야 합니다'와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써보는 이유는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수평관계를 추구하는 것이 힘들기때문입니다. 의식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으면 수직관계가 그 자리를 금새 차지해버립니다. 순식간에 내 수평공간이 도둑맞게 되는 것이죠.



수평어보다 중요한 것은 수평관계


말을 놓는다고 곧바로 친구가 되거나 어색한 사이가 금새 편안하게 되진 않을겁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말은 언제나 존댓말을 쓰지만 상대를 은근 얕잡아보거나 존중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그럴땐 언어는 공허하고 관계는 울적해집니다. 그래서 수평어는 수평관계에 도달하기 위한 장치이지 수평어를 쓰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진짜로 중요한 것은 자의식이 수평관계에 도달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상대가 누구든지 상관없습니다. 나이가 위아래로 얼마가 차이나든 나는 내 앞에 있는 사람과 수평적인 관계를 맺고 대화한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그래도 수평관계가 어려운 분들을 위해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장치들을 앞으로 몇가지 소개해보겠습니다. 오늘 이야기한 '나이 묻지않기', '나이 궁금해하지 않기'는 그 중 하나입니다. 의외로 별것 아닌것처럼 보일수도 있지만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으면 나도모르게 상대방과 나를 서열화해서 어느새 수직관계를 맺어버리고마는, 그런 경우를 적어봤습니다. 이것만 해도 타인을 대하는 세계관에 많은 변화가 생기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