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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완 Jul 10. 2023

'거리'의 공공성 그리고 어슬렁거림

제인 제이콥스의 <미국대도시의 죽음과 삶>

요즘 '미국대도시의 죽음과 삶'이라는 책을 반복해서 읽고있는데, 번역이 조금 어색한것 때문에 읽을때 불편한 점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굉장히 좋은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그 중에서 보도에 대한 부분이 흥미로워서 발췌해 옮겨보겠습니다.


오래전부터 개혁가들은 행인들이 분주히 오가는 모퉁이에서 사람들이 어슬렁거리면서 과자가게나 술집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건물 앞 계단에서 청량음료를 마시는 모습을 관찰해왔고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들에게 번듯한 집이있고 마당이 있다면 이렇게 거리에 나오지 않을텐데!"

이런 시각은 도시에 대한 오해를 대표해서 보여준다. 이런 주장은 어느 호텔에서 열리는 파티에 들렀는데, 이 사람들이 요리할줄아는 부인이 있다면 집에서 파티를 열었을것이라고 말하는것처럼 말이 안된다. 

파티나 도시의 보도생활의 공통점은 공공적 성격을 띤다는 사실이다. 두 가지 모두 서로 알고싶어하지 않는 사람들, 낯선 사람들을 한데 모은다.

[2장, 보도의 효용 : 접촉]


참고로 이 책에서는 Sidewalk가 '보도 : 보행자의 길'이라 번역됐지만 일상적으로는 '인도 : 사람이 다니는 길'을 더 많이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언급된 두가지 에피소드는 무척 재밌습니다. 첫번째 사례를 읽고 응? 무슨말이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면 두번째 사례로부터 작가가 의도한 바를 눈치챌 수 있습니다. 공적인 장소에서 하는 행동은 그것 나름대로의 특별함을 가지고 있으며, 결코 사적인 장소가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이 요점입니다. 더 나아가 공적인 장소가 활기를 띤다면 도시는 진정 도시다울수있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도시에서 살아가는 의미를 준다고 말합니다.


도시답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싶다면 이경훈의 '서울은 도시가 아니다' 책을 추천합니다. 제목이 다소 도전적이라 책 홍보를 위한 어그로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읽고보니 제목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공적인 장소는 어디일까요? 


저는 일단 도서관, 학교, 공공기관, 병원, 마트, 백화점, 터미널, 공항 같은곳들이 생각났습니다. 천장이 높고 대기실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그런 곳이 떠오릅니다. 그런곳에 갈때는 보통 최소한 그럴듯한 옷을 챙겨입고, 뒷머리가 눌려있지는 않은지 외모에 신경을 쓰며 전화를 하더라도 목소리를 조금 낮게 하는것이 상식입니다. 즉, 집에서 가족과 함께 있을때와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신경쓰고 있고,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지않기 위해 주의해야 한다는것을 그동안의 교육과 경험을 통해 알고있습니다.


병원과 백화점에 비해서 보도는 소박한 공공장소지만 무작위 많은사람들에게 활짝 열려있다는 점에서 그 어느곳보다 공공의 성격이 짙은곳입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보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보도가 다양한 사람들의 활동으로 인해 활기를 띤다면 동네는 범죄와 사고로부터 안전한곳이 되고 그 혜택은 다시 그곳 사람들에게 돌아간다고 말합니다. 


"보도에서 여러 사람들이 마주치고 인사하며 교류한다. 행여 나쁜일이 일어날것 같은 징조가 보이면 여러사람이 보도를 바라보고 있기때문에 최악의 상황은 피할수있다." 이런 상황은 어디선가 본것같은 익숙한 풍경이지 않나요? 80년대 이전 한국의 여러동네들이 이랬고 현재 시골마을에 남아있는 모습입니다. 그런 옛날 모습으로 돌아가자? 동의하세요? 옆집 숟가락이 몇개인지 알고있고 동네 모든 어르신들에게 인사해야하는 그런 환경이 정말 좋은걸까요? 그런곳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 대도시로 갔던건데 다시 돌아가자는건 무리한 요구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공공성'의 오해를 풀어야합니다. 동네 어르신이 "그래서 결혼은 언제할건데?"라고 묻는것은 '공공성'과 거리가 멉니다. 집 바깥에서는 친한 관계가 아니라면 공공성이 보장되어야 건강하고 활기있는 공공생활의 혜택을 누릴수있습니다. 이 책에서 그것을 '공중의 보도생활 public sidewalk life'라고 언급합니다. 


장사와는 무관한 이런 다양한 서비스를 두루 살펴본 뒤 나는 버니에게 물었다. "손님들을 서로 소개해준적도 있나요?"

"아뇨." 생각끝에 나온 대답이었다. "그런건 현명한 처사가 아닐겁니다. 이따금 동시에 가게에 들어온 손님 둘이 서로 관심사가 비슷한걸 알면 그 주제를 일부러 꺼내서 두사람이 원하면 계속 대화를 하게 내버려두는일은 있지만요. 그렇지만 소개시켜주니는 않아요."

'공생 togetherness'은 도시계획 이론의 오랜 이상에 꼭 맞는 역겨운 이름이다. 사람들이 어떤것이든 공유한다면 많은것을 공유해야한다는 '공생'은 도시에서 파괴적으로 작용한다. 그래야 한다는 요구는 도시사람들을 서로 갈라놓는다.

[2장, 보도의 효용 : 접촉]


제가 예전에 알고지냈던 제주출신의 친구도 그곳 동네의 '공생'관계를 싫어해서 그토록 육지로 건너오고 싶어했습니다. 친구가 어렸을때부터 쭉 봐왔던 주변 어른들과 마주칠때마다 툭툭 던지는 한마디때문에 그 지역을 벗어나고 싶었던것입니다. 


도시는 이런 무분별한 사적인 침략으로부터 벗어나고 공공성이 확보되어야 진정으로 '도시다움'을 만들수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도시는 일단 사적인 침략으로부터 벗어나는데는 성공했지만 진정한 공공성을 확보하는데는 아직 미숙한것 같습니다. 그 구체적인 사례로 '보도'라는 특정장소를 통해 '공공성'을 설명하는 이 책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도시계획가들은 아이들을 키우는데 얼마나 높은 비율의 어른들이 필요한지 모르는 것 같다. 오직 사람만이 아이들을 키우고 문명사회에 동화시킬 수 있다.

실생활에서 아이들은 오로지 도시 보도의 평범한 어른들을 통해서 성공적인 도시생활의 기본원리를 배운다.

[3장, 보도의 효용 : 어린이들의 동화]


지은이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어슬렁거리는' 보도가 좋다고 말합니다. 도시계획가들은 어린이들이 안전한 구역에서 놀수있게하려고 공원과 놀이터를 만들지만 오히려 그런곳은 동네사람들의 일상적 감시가 드물기때문에 때로는 더 위험한지대가 된다고하면서, 도보에서 오히려 아이들은 도시생활의 원리를 터득한다고 하는점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우리가 알고있는 기본상식과 정반대 주장이니까요. 이 '어슬렁거리다'라는 표현이 저는 좋았습니다. 정말 자연스러운 감시가 존재하고 사람들이 도보에 어슬렁거린다면 그것이 오히려 더 안전하고 활기있는 거리와 동네가 아닐까 생각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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