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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고가 낮은 곳 vs 높은 곳

어느쪽을 선택할 것인가

by 김정완

아내와 함께 가까운 신도시를 방문해 어느 중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테이블 위로 천장까지 시원한 수직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 들어오기 바로 직전에도 들렀던 카페도 마찬가지였다. 여기 주변 상가들의 층고가 높다는건 여러번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있었고, 이쯤되면 익숙해질만도 한데 여전히 낯선 이유는 내가 사는 읍내에서는 이렇게 층고가 높은 공간을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구도심의 구축건물 속 상가의 층고는 신도시, 신축건물의 층고와 차이가 크다. 층고를 높게 만들어 분양/임대하는게 최근 건축 트렌드임이 분명하다.


아래 사진을 보면 알수있듯 신도시의 평균적인 상가들의 층고는 꽤 높다. 조사해보니 예전의 1층 상가의 평균적인 층고는 2.7~3.3미터인데 최근엔 3.5~4.5미터로 높아졌단다. 그리고 2층부터 건물 꼭대기까지의 층고도 1층보다는 다소 낮더라도 예전에 비해서는 확실히 높아졌다. (2.4~2.7미터에서 3.0~3.5미터로)


충청투데이 <연합뉴스세종시 신도심 상가공실 해법 ‘오리무중’>




미네소타 대학교 조앤 마이어스-레비 교수의 유사 실험에 따르면,
천장의 높이가 2m 40cm에서 3m까지 30cm씩 높아질수록
사람들의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이 두 배 이상 향상되는 경향을 보였다.



흔히 실내공간이 높을수록 좋다고 여기는 까닭은 바로 이 연구결과 때문이다. 나도 이 연구에 대해서 아주 오래전에 얼핏 들었던 적이 있었고 그 이후부터 자연스럽게 층고는 높을수록 좋은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해왔다. 창의력은 비타민과 같아서 생존하는데 필수는 아니더라도 자주 챙겨 먹을수록 도움이 된다. 구체적으로 어디가 좋아지는지 알지 못하지만 백번 양보해도 해가 되는건 없고 분명히 어딘가 좋아진다는 강한 믿음이 있다.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이 실험의 결론을 살짝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됐다. 이 실험을 했던 교수의 해석을 자세히보면, 그가 높은 천장은 어떤 상황에서든 절대적으로 낫다고 이야기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높은 천장은 ‘공간의 확장성’을 암시하고
이는 뇌에 자유와 개방성을 인지하게 하여
더 넓은 사고(abstract thinking)를 유도합니다.

반면, 낮은 천장은 제한된 공간감을 주어
집중적인 사고(concrete thinking)에 유리할 수 있습니다.



패스트파이브 입주사들이 일하는 공간. 높은 층고의 개방감이 인상적이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에 내가 근무하던 회사가 서울 성수동 패스트파이브로 이사를 했다. 패스트파이브는 미국의 위워크(파산했지만)와 같은 공유오피스인데 여러 회사들이 아파트처럼 모여서 일한다. 인테리어와 어매니티, 공간배치 등을 이미 이쪽에서 계획&준비해 놨기때문에 그런 기본적인 인프라를 입주사들이 임대료를 내기만하면 곧바로 이용할 수 있다는게 최대 장점이다. 나 역시 일반 빌딩에서 일을 하다가 이곳으로 옮겼을 때 무척 만족스러웠는데, 그 중에서 가장 좋았던건 높은 층고와 따뜻한 조명이었다. 탁 트인 개방감과 쾌적한 시원스러움 덕분에 왠지 창의력이 올라간것 같았고, 사무실에 오래 머무는게 그다지 피곤하지 않았다. 확실히 같은 조건이라면 높은 층고는 매력적이다. 오래 머물러야 하는 곳이라면 높을수록 좋고, 다양한 종류의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는 일터라면 더욱 그렇다.




문제는 비용


낮은 층고와 높은 층고중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같은 조건이라면 층고가 높은 공간을 분명히 더 선호할 것이다. 문제는 층고가 높은곳은 비싸다는 점이다. 신축이라서 비싸기도 하겠지만 층고가 높은곳이 비싼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건물을 지을 때 모든 층고를 높게 만들면 건축비용은 틀림없이 더 들었을 것이며, 예전이라면 8개 층을 넣을 수 있는 건물에 이제는 7층 밖에 넣지 못하기때문에 줄어든 연면적은 평당 임대료의 상승을 불러올 수 밖에 없다.


임대료 상승 다음으로 머리속에 떠오르는 문제는 열효율이다. 여름엔 냉방, 겨울엔 난방이 중요한데 따뜻한 공기는 차가운 공기보다 가볍기 때문에 위로 쉽게 날아간다. 여름엔 높은 천장이 다소 유리할 수 있겠지만 겨울에 열을 최대한 지면에 머무르게 하려면 높은 공간은 불리할 수 있는데 이럴때 천장의 단열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요즘에 천장을 마감하는 방식은 노출 콘크리트(Exposed Concrete)가 유행중인데, 높은 층고와 이 노출 콘크리트 방식이 결합되면 겨울의 난방효율은 굉장히 떨어질 것 같다.


비싼 임대료와 나빠진 열 효율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얻는건 개방감이다. 층고가 높은 곳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이 곳을 방문하는 손님에게 시원한 공간감을 느낄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분명히 수직공간이 널찍한 공간의 첫인상은 쿨하다. 그런데 그 쿨함이 결국 매출로 이어져야 이 선택은 합리적일 수 있고 지속가능하다. 층고가 일반적인 공간에 비해서 높다는 이유로 20% 비용을 더 지불했다면 20% 정도의 매출을 더 기대할 수 있어야 한다.



유튜브 캡쳐 discovering chiang mai — local artisan shops and good coffee
문경의 작은 빵집 <모글리>, 따뜻한 느낌이 드는 공간인데 옛날 건물이라 천장이 낮은 편이다


일반적인 층고보다도 살짝 낮은 공간을 한번 떠올려봤다. 그러한 공간은 창의력을 발휘하기에 정말 힘드려나. 유튜브를 보다가 치앙마이의 어느 소박한 식당이 스쳐 지나갔는데 상당히 낮은 층고가 재밌었다. 저 곳의 공간감은 어떨지, 팔을 뻗으면 천장에 닿을듯 말듯한게 신경쓰이고 답답한 기분일지 궁금해졌다. 비록 개방감이 느껴지는 근사한 공간은 아니지만 충분히 따뜻하고 흥미롭고 아늑한 느낌이 든다. 적어도 내게는 매력적으로 보이고 방문하고싶은 기분이 든다. 실제로 내가 자주 방문하는 작은 빵집은 문경의 어느 작은 골목길에 있다. 이곳은 평수도 크지않아서 오로지 픽업만 가능한데, 오래된 건물이라 층고 또한 평균보다 낮다. 전체적으로 좁고 낮은 공간이지만 햇살이 잘 들어오고 꾸며진 소품들과 진열대를 채운 빵들, 그리고 주인장의 따뜻한 환대까지 이곳은 내게 충분히 멋진 곳이다.


20세기 도시계획에 큰 영향을 끼친 미국의 도시 활동가인 제인 제이콥스가 쓴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비록 층고에 대한 내용은 아니지만 낡은 것은 없어져야 마땅하고 그 자리에 새롭고 멋진것이 대체되길 바라는 현대의 우리들에게 1961년에 뉴욕에서 살던 지은이가 보내는 메세지가 담겨있다.


9장. 오래된 건물의 필요성

경제적 수익이 다양하도록 하기 위해 상당한 비중의 오래된 건물을 비롯하여 햇수와 상태가 각기 다른 여러 건물이 지구에 섞여있어야 한다. 꽤 촘촘하게 섞여 있을수록 좋다.

만약 어느 도시 지역에 새로운 건물들만 있다면, 거기 자리할 수 있는 업체는 높은 건물 신축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것들로만 국한된다.

대개 체인점, 체인 레스토랑, 은행 등이 신축건물에 들어간다. 그러나 동네 술집이나 외국음식 식당, 전당포 등은 오래된 건물에 들어간다.

낮은 수익을 올리는 업체들은 거리와 동네의 안전과 공중생활에 필요하며 오래된 건물에서는 성공적으로 유지될 수 있지만 신축건물의 높은 간접비는 이런 가게들을 무자비하게 쓸어버린다.

도시의 신축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업체들조차 가까운 곳에 오래된 건물들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제적으로 지나치게 제한된 획일적인 환경의 일부분이 되어 버린다. 따라서 기능적으로 너무 제한되어서 활기차고 흥미롭고 편리한 곳이 되지 못한다.


이 9장의 내용은 그동안 내가 신도시에서 느꼈던 아리송한 기분을 제대로 이해하게 해줬다. 분명히 더 나은 기술로 만들었을 건물과 보행로와 차도, 그리고 그곳에 여러종류의 최신 업체들이 들어섰지만 나는 신도시를 방문할때마다 분명히 만족하지 못했다. 이 신도시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신도시를 가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것을 소울(Soul)의 결여, 또는 내가 오래되고 낡은 느낌을 좋아해서 그런거라고 모호하게 생각을 흐렸는데 3년전 이 책을 읽고나서야 내가 그렇게 느꼈던 이유를 제대로 알게되었다. 층고가 높아진 것은 겉으로 드러나게 된 현상과 결과일 뿐, 근본적인 원인은 획일적인 도시계획에 있다. 대부분의 신도시는 한번에 후다닥 만들어진다. 그 곳의 건물들 또한 한꺼번에 최신스타일로 높고 크게 지어졌고, 때문에 임대료가 올랐고, 결국 그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프랜차이즈 업체들 위주로 들어올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가맹점들 역시 소상공인들일텐데 그들이라고 높은 임대료와 낮은 열효율이 달갑지 않을테고 나와 같은 소비자들은 업체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좁아져 아쉽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높은 천장을 바라보며 밥을 먹는동안 마음 한구석이 조금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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