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만 하고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과 다른 길을 선택해야할 때가 있습니다. 그동안 나를 지켜줬던 보금자리는 이제 안녕, 지금부터는 낯선 환경과 모르는 사람들, 모든것이 어색한 것 투성의 다른 세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저는 초등학교 3학년때 2번이나 전학을 해야했었는데, 선생님을 따라서 아이들이 모두 모여있는 교실로 걸어들어가는 그 느낌은 지금 다시 떠올려도 어색합니다. 새로운 학원에 등록하고, 반이 바뀌고, 새로운 버스를 타는것같은 일상적인 일조차도 누군가에게는 거대한 도전으로 기억됩니다.
하지만 이런 큰 변화는 사람을 '성장'시킵니다. 익숙한 환경에서 늘 하던 행동만 되풀이하면 내 안에 잠재된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내 안에 어떤 성향이 있는지 그것을 직접 해보기전까지는 절대 알아낼 수 없습니다. 어색하고 불편해도 이 너머 세계에 한발을 내딛어보는 것은 매우매우 중요합니다. 사람을 본격적으로 성장시켜주는 이러한 위대한 도전과 성장을 가로막는 것은 의외로 부모님입니다.
부모는 자식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정성껏 키워준 사람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가 살아갈 수 있게 언제나 옆에서 도움을 주었고, 생존에 필요한 일들을 하나씩 스스로 해낼 수 있게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자식이 10살이 되어도, 20살이 되어도 부모가 자식을 바라보는 기준은 언제나 현재의 일어나고 있는 객관적인 상태보다 살짝 타이밍이 늦게됩니다. 게다가 한 사람의 성장속도는 언제나 등속도가 아니라 어떤 접점을 만나는 순간 폭발적인 속도로 성장할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사춘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부모는 자식에 대해 취하는 태도와 기준이 항상 현재보다 살짝 늦기때문에 (과거의 육아기억때문) 자식의 미래지향적인 태도와 차이를 가질수밖에 없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어느정도 성장해도 이러한 과거지향적인 태도때문에 항상 미숙하고 보호해야 할 존재로 자식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자식이 안전한 울타리 바깥으로 나가 위대한 도전을 하려는 것을 1차적으로 막습니다.
'대학생 되면 마음껏 하도록 해'
'넌 아직 준비가 안됐어'
'남들은 다들 잘만 하는데 왜 딴소리니? 너 잘되라고 그러는거야'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않아하는 마음과, 자기답게 인생을 설계하고 싶은 욕망. 자식은 이 두가지 생각이 충돌하고 부모또한 자식을 보호하고자 하는 태도와 응원하고 지지해주고 싶어하는 생각이 충돌합니다. 가장 가까운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갈등은 불가피하면서도 한 사람의 성장을 가로막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부모님의 1차 저항을 이겨내고 스스로 위대한 결정을 내릴 때가 있습니다. 저는 주로 큰 결심을 욕실에서 샤워할때 하는 편입니다.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이 샤워할 때라서 그렇습니다. 큰 결심이라고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면 그것이야말로 위대한 도전이자 도약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때부터입니다.
Design Sprint라는 책을 쓴 구글 디자이너 제이크 냅이 한 말입니다.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 방법으로 오랫동안 조명되었던 브레인스토밍 방식을 까고(?) 대신 실천적인 디자인 스프린트라는 방식을 제안하는 사람입니다.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꽤 유명한 책입니다. 저는 이 말에 100% 동의합니다. 좋은 아이디어는 많지만 그것을 실제로 구현하기란 여러가지 이유로 쉽지 않습니다.
저도 예전에 그런적이 있었습니다. 굉장히 흥미로운 생각이 떠올라서 주변 사람들과 그 아이디에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흥분했지만 저는 결국 실행에 옮기지 않았습니다. 시간과 돈을 들여서 했는데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을 떨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늘 도망치기만 하진 않았습니다. 어느날 샤워를 하다가 이래선 안되겠다, 그냥 해봐야겠다고 다짐하고 곧바로 실행해서 결국 끝을 보았습니다. 지금 되돌아보면 그 결정을 하지 않았으면 지금 어떻게 됐을까 상상이 안될정도로 그 때 그 실행을 하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두 경우에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요? 조금 더 성공의 가능성이 높은 쪽을 선택했고 실패가 예상되는 일은 포기했을까요? 그렇게 간단히 성공과 실패를 예측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주변 사람들과 떠드는것은 그 자체로 재밌습니다. 상대방의 피드백이 더해져 기존 아이디어가 점점 발전되는 느낌도 들고, 즐거운 상상을 마음껏 하면서도 자질구레한 일들은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이 이야기의 결말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실행해보고 싶은 아이디어가 생겼다면 혼자서 묵묵히 진행하는 편이 낫습니다. 나를 잘 아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더라도 저는 자제하는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미신같은 말일수도 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면 알릴수록 일의 기운과 에너지가 점점 빠져나가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아이디어에 반복적으로 검증받는 것은 그만큼 현재 불안하고 자신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럴 땐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는 것을 멈추고 고독하고 묵묵하게 '진짜' 일을 하는것이 낫습니다.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일은 '진짜' 일이 아닙니다.
친구들과의 정기적인 만남도 나가지말고 일에 완전히 집중해서 고독하게 살아가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릴때 만났던 친구들 역시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과거지향적인 사람들입니다. 큰 도약을 하기 전에
'그런걸 배우지도 않았던 니가?'
'야 그냥 하던거나 잘 해봐'
이런 말을 듣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정기적인 모임에 2,3년 나가지 않아도 친구관계가 깨지는 일은 없습니다. 만약 2,3년 만나지 않았다고 관계가 변한다면 그것은 애초에 괜찮은 관계가 아니라는 말이기 때문에 전혀 아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을 멀리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지금 집중하고 있는 일과 관련된 사람들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그들과 건강한 관계를 맺고 나도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합니다. 도움을 받기만 해서는 좋은 관계라고 할 수 없습니다.
기존에 편안했던 인간관계를 잠시 멀리하고 낯선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 맺기. 이제까지 해보지 않았던 일을 새롭게 해보는 경험.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작업을 하면서 겪게되는 모든 일들은 프로젝트의 결과를 떠나서 한 사람을 무조건 성장시켜 줄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소란스러운 것보다 (제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다소 고독한 편이 차라리 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