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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완 Dec 27. 2022

3달동안 마을벽화를 그렸습니다


작년 겨울, 지인으로부터 잠깐 와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마을어르신들과 함께 노래를 만들었는데 이걸 활용해서 벽화를 만들어볼 수 있겠냐는 제안이었습니다. 유튜브에 뮤직비디오를 만들어서 올렸는데 반응이 아주 좋다, 대박이다, 어르신들이 아주 좋아한다, 이 비디오를 활용해 '뭔가' 더 해보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 회의에는 노래를 직접 만든 분과 인근 고등학교 교사, 그리고 마을대표자가 있었습니다. 벽화를 그리려면 최소 10명이 넘는 작업자들과 그림 도구들을 살만한 재정과 시간 등 여러 조건들이 필요하지만 고등학교 교사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거의 모든것이 가능한 상태였습니다. 학교와 학원만 오가는 고등학생들에게도 재밌는 활동이 될 수 있을것 같았고, 그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있던 저도 학생들과 좀 더 친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수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림에 대해서 알고, 학교와 학생과 마을 관계자를 알고, 개인시간을 내서 이런 일을 맡아서 해줄 사람은 저 말고 없을것 같았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막 나서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주변을 둘러보고 내가 해야되는 그런 상황이라면 기꺼이 나서서 하는 편입니다. '나다 싶으면 한다' 이런 자세로 계속 살아가고 있습니다 ㅎㅎ 하지만 제가 벽화를 직접 그려야 하는 일이었다면 아마도 주저했을겁니다. 그리고 사연없는 단순한 벽화였어도 역시 하고싶은 마음이 별로 들지 않았을테데 뮤직비디오가 재미있었고 노래를 만들게 된 계기와 그 결과가 좋았습니다. 그렇게 전 PM(프로젝트 매니저)으로서 벽화작업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유튜브 <예천어르신 뮤직비디오 난아니라고봐> 신스틸러 어르신


벽화에 참여할 학생들은 25명정도가 모였습니다. 이색적인 프로젝트라고 생각했는지 많은 인원이 모였고 저는 학생들을 노래별로 나눠 팀을 짰습니다. 작년 여름에 만든 노래는 총 5곡이었고 그 중 뮤직비디오로 제작된건 3곡이지만 저는 1곡을 더해 4곡을 벽화로 그리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총 4개팀이 만들어졌고 작업을 할 벽의 위치는 3팀이 모여있었고 1팀은 조금 (많이) 떨어져있게 되었습니다.


군사훈련 작전판을 방불케하는 벽화계획



벽 바탕부터 다듬기


처음 벽의 상태는 좋은 것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었습니다. 그림을 제대로 그리려면, 나중에 완성도있게 보이려면 그림은 잠시 미뤄두고 벽의 상태부터 업그레이드 시키는게 필요했습니다. 저는 이전에 벽화작업을 해본적이 없기때문에 다른곳에서도 이렇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우선 바탕칠을 칠하기전에 벽의 패인곳부터 평평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퍼티작업부터 시작했습니다. 이 작업은 제가 죽림주간을 리모델링할 때 주로 사용했던 방식이라 학생들에게 시범을 보여주며 설명해주었습니다. 참고 : 셀프 리모델링 2. 처마보수


그리고 벽의 바탕은 흰색이 아닌 아이보리색으로 칠했습니다. 흰 바탕은 다소 날 것 같은, 차가운 느낌이 든다고 할까요? 그림으로 벽을 가득 채울것이 아니라 벽의 면적이 넓기때문에 아무래도 바탕이 많이 드러나게 될텐데, 조금 따뜻하게 채워진 느낌을 들게하려면 바탕칠을 미색으로 하는게 좋을 것 같았습니다. 전자제품에 적용해본다면 100% 흰색보다는 옅은 미색이 좀 더 따뜻한 인테리어를 만들어준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개인취향이라서 정답은 없습니다 ㅎㅎ) 


노래 떡방티 벽화. 벽 아래부분의 처음 상태가 좋지 못했다. 떡방티는 예천 사투리로 떡을 담는 광주리를 말한다.


노래 '난아이라고봐' 벽화. 신스틸러 어르신이 나온 뮤직비디오 한 장면을 그대로 옮겼다.


담벼락 위로 보이는 나무를 이용한 벽화


핸디코트(퍼티)로 패인부분을 메우고 아이보리색으로 바탕을 칠했다.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뀌었다.


노래 떡방티 벽화. 노래가사를 이미지하기 애매해서 추상적인 이미지로 그렸다.


노래 난아이라고봐 벽화. 색 종류가 몇개 없는데도 그것들을 조합해서 섬세한 표현을 해냈다.


노래 꼬두밥찌는날 벽화. 나머지 팀들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 다소 외롭게 작업했던 팀



먹지로 글자 새기기


다른 벽화와 달리, 노래말이 있는 뮤직비디오를 벽화화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노랫말이 글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결국 그림과 글의 조합이 될텐데 그림은 자유롭지만 글은 지나치게 들쑥날쑥하면 전체적인 완성도가 떨어질 것 같았습니다. 더군다나 작업자도 여러명이고 실력도 제각각이라 정교한 터치가 필요한 글쓰기를 어떻게할지 고민하다가 먹지를 이용해 컴퓨터에서 프린트한 종이로 그대로 새기기로 했습니다. 크기와 서체는 제가 정해주었지만 위치와 간격은 학생들 스스로 정했습니다. 저도 처음 해보는 작업이라서 가능할지, 결과물의 퀄리티가 괜찮을지 궁금했었는데 결과가 만족스럽게 나와주어서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먹지와 출력물로 벽에 폰트를 새기는 작업. 글을 먼저 새기고 빈 영역에 그림을 채워넣었다.



미완성 될뻔했지만

완성했습니다


초여름에 처음 모여서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시작했지만 작업을 하다보니 어느덧 11월이 되었습니다. 12월로 넘어간다면 기말고사와 추위가 기다리고 있을텐데 학생들은 이미 기나긴 작업때문에 많이 지쳐있었습니다. (전투력 저하) 초반에 저는 당연히 완성이 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힘이 떨어져)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습니다. 많이 아쉽지만 올해는 이렇게 마무리하고 내년을 기약해보자고 선생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담당선생님은 벽화작업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얻은 경험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분이라 그 덕분에 마음의 부담과 조바심을 덜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체념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나갔던 마지막 날, 학생들은 극적으로 벽화를 완성해냈습니다. 


전문가도 대학생도 아닌 일반 고등학생들이 마을 벽화의 모든과정을 참여해서 끝까지 완성해냈다는 것이 무척 대견스러웠습니다. 저도 즐거운 기억으로 남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전체 담벼락의 면적을 더하면 상당히 넓은, 대규모 프로젝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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