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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이야기꾼 Nov 06. 2023

서로에게 간격이 필요한 이유

-김수복, <사이>

        사이

                    -김수복     


    눈을 감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사이가 참 좋다     


    나와 나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나무와 나무 사이

    새들과 새들 사이

    지는 해와 뜨는 해 사이     


    도착하여야 할 시대의 정거장이 있다면 더 좋다.       

   

  윤동주 시인은 ‘서시’라는 시에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소망했습니다. 이 시의 화자는 하늘을 우러러 모든 존재의 사이에 ‘사이’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 ‘사이’는 눈을 감고도 인지할 수 있는 ‘사이’이니 물리적 공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이’의 구체적 내용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먼저 ‘나와 나’ 사이에는 ‘사이’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나’는 현실을 살아가는 나와 이상을 지향하는 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현실을 살아가는 ‘나’와 이상을 지향하는 ‘나’ 사이에 ‘사이’가 있어야 좋다고 합니다. 현실적인 나와 이상적인 나가 한 덩어리가 된 ‘나, 즉, 꿈을 이루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나’가 아니라, 꿈은 저만치 두고 여유있게 현실을 살아가는 ‘나’가 좋다는 것입니다. 꿈에 도달하기 위해 직선으로만 달리지 말고 곡선으로 우회하면서 서서히, 천천히 꿈에 다가서면 된다는 것이지요. 꿈을 꾸되 쫓기듯 살지는 말자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나무와 나무, 새들과 새들 사이에도 ‘사이’가 있습니다. 멀리서 볼 때는 전체 숲이 한 덩어리로 보이고 새 떼들 사이에 공간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나무와 나무, 새들과 새들 사이에 충분한 공간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공간이 산불을 막아주고, 새들의 충돌을 막아줍니다. 

  지는 해와 뜨는 해 사이에 ‘사이’가 없다면 항상 낮이거나 밤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해가 지니 하루의 끝임을 알 수 있고, 해가 뜨니 하루의 시작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는 해와 뜨는 해 사이에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에너지를 얻습니다. 그 ‘사이’가 없다면 나무와 새들이 살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마지막 시행은 윤동주 시인의 에세이 ‘종시(終始)’에서 가져 왔습니다. 윤동주 시인이 생각하는 ‘시대의 정거장’은 조국의 광복이겠으나, 이 시의 화자가 생각하는 ‘정거장’은 꿈들을 잠시 내려놓고 쉬어갈 수 있는 시간적, 공간적 여유인 동시에 꿈을 향한 출발점이 되겠지요.  

   

  ‘인간(人間)’이란 말도 ‘인생세간(人生世間)’에서 나왔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 공간이란 뜻이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간격을 말하기도 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서로의 입장을 존중해 주고 서로의 활동의 공간과 생각의 공간을 인정해주고 지나친 간섭을 하지 않는 것은 당연히 중요합니다. 또한 계획한 대로 추진하려고 하는 마음에 약간의 제동을 걸고 한 템포 쉬어가는 ‘정거장’과 같은 간격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 시를 통해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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