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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담 Aug 16. 2021

#05 애 낳으면 개고생인데 왜 애를 낳을까

돌도 안된 아이를 안고 아이를 낳기 전에 가끔 오던 브런치 가게에 왔다. 테이블 세 개 정도의 자그마한 가게다. 주차장이 따로 없어 조금 떨어진 곳에 주차 후 걸어와야 했다. 그 300여미터가 새삼 그렇게 멀게 느껴질 수 없었다. 아기띠를 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걷는 나도 힘들었지만, 족히 몇 킬로그램은 될 육아가방에 아기 범보의자까지 들쳐메고 초여름의 땡볕을 걷는 마누라에게도 쉽지 않은 여정이다.


가게에는 대학교 졸업반으로 보이는 여학생 세 명이 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는 안쪽 테이블에 앉아 브런치 세트 두 개를 주문했다. 딸내미는 범보의자에 앉히자마자 조금씩 보채기 시작하더니 음식이 나오자 본격적으로 짜증을 부리며 의자 밖으로 튀어 나오려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또다시 육아 재난의 시간이었다. 아직 유튜브에 집중할 줄도 모르는 아이다. 안그래도 심심해서 짜증나는데 주방에선 베이컨 굽는 소리와 연기냄새가 넘어오고, 옆 테이블에선 알아들을 수 없는 수다소리까지. 모든 것이 너에겐 견디기 힘든 것 투성이겠지.


기어이 엄마는 식사를 포기하고 아기띠에 딸내미를 품고 가게 밖으로 나갔다. 가게 밖으로 나가서도 한동안은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정도에 당황해서 밥도 제대로 못먹을 레벨은 아니다. 지금 해야할 것은 혼자라도 즐겁게 식사를 하되, 신속하게 먹고 마누라와 교대해주는 일이다.


최선을 다해 밥을 먹은 뒤 밖으로 나가 아기띠를 바꿔 멨다. 마누라의 표정은 이미 저 세상이다. 아기띠를 한 채 가게 앞을 서성이며 슬쩍 들여다보니 마누라는 별로 즐거운 식사가 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원래도 밥을 빨리 먹어 식당 사장님들의 예쁨을 받는 마누라지만, 오늘은 속도가 더욱 빨랐다. 심지어 다 먹지도 않고 나왔으니 얼마나 빨랐겠는가.


다시 육아가방과 범보의자를 들쳐메고 차로 돌아가는 길에 마누라의 표정이 더욱 좋지 못했다. 어쨌든 점심 먹기 미션이 무사히 종료된 마당에 기분이 계속 나쁠 이유가 있을까. 이유가 있었다. 나는 듣지도 않고 있었던 옆 테이블 대학생들의 대화가 문제였다.


옆 테이블의 대학생들은 계속해서 우리 가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아이를 낳으면 여자로서의 삶을 포기해야 하고, 밥도 제대로 못먹을 정도로 자유를 빼앗긴다. 그러니 아이는 낳지 않아야 한다.


그런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아이를 낳아서 삶과 자유가 제한된다는 건 사실이기도 하다. 다만 그들이 바로 옆자리에 있던 우리를 스크린 너머의 재난영화로만 인식했던 건 문제다. 그들은 관객으로서의 대화를 한 것이겠지만, 우리는 배우가 아니었다. 뜬금없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면전에서 팩트폭력을 한 격이다. 철없는 학생들이 저지른 헤프닝이긴 하지만, 마누라는 적지 않게 상처를 받았던 모양이다. 내가 알았더라면 고구마를 먹은 마누라를 위해 가벼운 사이다 대화를 바로 옆에서 나눠주고 왔을텐데. 예를 들면, "요새 대학생들이 취업이 그렇게 어려워서 결혼도 못한다면서?"와 같은 역지사지식 대화.


아이를 키우는 일은 다시 아이의 삶을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아이가 가진 신체적, 사회적 제약을 나도 다시 한 번 같이 겪어야 한다. 마음대로 친구도 만나지 못하고, 애초 밖에 나가기도 어려우며, 무엇이든 먹으러 가기도 어렵다. 하지만 동시에 하루하루 변화하는 아이의 성장도 함께 겪는다. 1년이 하루같던 지루한 어른의 삶에 매일매일이 색다른 아이의 삶이 투영된다. 그래서 반복된 삶에 머물러있던 부모는 다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할 힘을 얻는다.


체제에 순응해서도, 육아의 어려움을 몰라서도 아니다. 여자로서의 삶도 포기하고, 몸도 마음도 소모되고, 어른이 되어 비로소 얻은 자유마저 얼마간 포기해야 하지만, 다시금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한다. 변화에 대한 기대와 아이와의 그 순수한 교감이 육체적 피로와 맞바꿔 마음을 충만하게 해준다. 비유하자면, 집 나가면 개고생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여행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왜 여행도 단점만 나열하자면 셀 수도 없지 않나. 지체높은 선조들은 자기 대신 아랫 것들을 시켜서 하는게 여행이었으니까.


그래서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아이를 낳는 이유. 



... 그래서 아이를 더 낳을 거냐고? 이제 새로운 여정은 충분히 겪었으니 다시 어른의 자유를 얻을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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