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가 복직한 뒤로 내가 어린이집 등원을 전담하게 되었다. 아침에 밥을 먹이고 옷을 입혀 같이 손을 잡고 어린이집까지 걸어가는 일은 힘들면서도 즐겁다. 나뭇잎 틈새로 부서지는 아침 햇살과 할 수만 있다면 기록해두고 싶은 아침의 풀냄새. 그리고 내 손에 꼭 쥐여진 너의 작고 몰랑한 손. 마누라에겐 늘 힘들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나에겐 괜찮은 하루를 시작하는 즐거운 루틴이다.
딸내미는 머리를 기르게 되면서 매일 아침 머리를 묶게 됐다. 평생을 머리를 길러본 적이 없던 나는 당연히 묶어본 적도 없었다. 솔직히 왜 묶어야 하는지도 모르다가 딸내미 머리를 묶어주며 비로소 머리를 기르는 과정에는 반드시 핀을 찌르든 머리를 묶든 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묶지 않고 자연스럽게 넘길 수 있으려면 앞머리를 정말 오랫동안 길러야한다는 걸 여태껏 몰랐다. 그런 서툰 아빠지만 어쨌든 이젠 제법 손에 익어 능숙하게 머리묶기를 해내고 있다.
딸내미의 머리를 묶어주는 일은 옷을 입히는 것과는 또 다른 매력이다. 약간의 손재주로 오늘의 너를 만들어내는데 일조한 기분이랄까. 여학생들이 서로의 머리를 땋아주며 친밀감을 느끼는 감정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물론 좀 크면 마음에 들 때까지 계속 다시 묶어 달라고 생떼를 쓴다고는 한다. 실제로 유치원에 다니는 지금은 옷은 물론 양말까지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 입겠다고 떼를 쓴다. 안 입는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너무 덥다, 너무 작다, 심지어는 이 옷을 입으니 다리가 아프다는 기발한 상상력까지. 결국 옷장 가득 한 번도 입지 않은 새 옷들은 다 제끼고 자기가 좋아하는 옷 두 벌 중 하나여야만 한다. 매일매일 입고 매일매일 빨다보니 이미 너덜너덜해진 옷이다. 다 떨어진 옷 두 벌만 매일같이 돌려입으며 등원을 하니, 누가 보면 무신경한 아빠가 옷도 신경안쓰고 보내는 줄 알까 걱정이다. 그나마 한 벌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 때는 손재주없는 아빠가 코난 친구 포비처럼 구석기시대 머리를 만들어놔도 가만히 웃어주니 그저 고마웠다. 다리 사이에 앉힌채 빗으로 잘 빗어서 고무줄로 묶어주는 그 과정은 더 할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그럼 유치원에 다니는 지금은 역시나 머리도 계속 다시 묶어 달라고 생떼를 쓸까? 다행히 아니다. 지난해부터 머리를 아예 안 묶으려고 하길래 그냥 아기 때처럼 바가지 머리로 잘라버린 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