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1화
5년간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나는 한 번도 할 말이 없어서 고민한 적이 없다. 보통 심리상담은 40분에서 1시간 정도 진행되는데, 그 시간 동안 나는 내 안에 숨겨왔던 투머치토커의 자질을 발휘하며 온갖 이야기를 했다. 어릴 적의 나쁜 기억들부터, 현재 마주하고 있는 인간관계의 고민부터 미래에 대한 걱정과 내 인생에 대한 회의와 세상에 대한 분노까지. 그런 이야기를 열심히 하다 보면 1시간 정도 되는 상담 시간은 금방 지나가 버렸고 그러고 나서도 찝찝한 기분으로 집에 향했다.
그렇게 내가 느끼는 모든 문제를 선생님 앞에 가져다 놓으면서 내가 원하던 것은 단 한 가지였다. 이 문제들에 대해 상담소 밖에서는 생각 안 하는 것.
그러나 그 소망이 이루어진 적은 없다. 상담소에 이야기하면 좋은 해결책을 얻기도 했고 그 해결책에 따라 문제가 풀리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 제자리 걸음이었다. 오히려 문제를 다루기 어려워지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무언가 해결해보려는 노력을 한 탓에 문제가 더 복잡한 형태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내가 상담을 처음 받기 시작했을 때의 이야기인데, 그때 나는 당시 사귀던 사람과의 관계에서 고민이 많았다. 그 사람은 누군가와 오랜 기간 친밀한 관계를 맺는 데 익숙지 않은 사람이었다. 사실 나 또한 그런 상태여서 우리 둘 사이가 계속 삐걱거렸다. 그때 내가 갖고 있던 고민은 애인이 나에게 대충 대하는 것 같았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우리 두 사람은 사귀기 시작할 무렵, 100일이 되면 서로 도시락을 싸주고 적당한 선물을 서로 주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100일이 돼서 도시락을 싸 가니 정작 애인은 완전히 모든 걸 까먹은 상태였다. 내가 그날 아침에 오늘이 100일이라는 것도 알려줬으나 그냥 그런 약속을 했다는 것 자체를 잊은 것 같았다. 뒤늦게 선물이라도 사오겠다고 했는데, 나에게 내민 건 포스트잇 하나였다. 정말, 문구점에 가면 3천원 정도에 파는 포스트잇 말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그는 내가 상상도 못한 형태로, 내가 연애에 대해 가지고 있던 기대를 무너뜨렸다. 데이트 하는 날에 등산복을 입고 나오거나, 면도와 세수도 하지 않은 채 나타나는 건 기본이었다. 이 점을 상담하니 상담 선생님은 "솔직하게 본인이 기대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라"고 했다. 이에 따라 솔직히 털어놓으니 애인은 세상 누구보다 화를 냈다. "내가 언제 너보고 성형하고 오라고 한 적이 있냐"며, 한 마디로 내가 자신의 외모를 지적한다는 게 싫다는 거였다. 또 선물은 마음이 중요한 거라며, 선물의 금액을 따지는 내가 속물 같다고 했다(나는 금액을 지적한 게 아니라 뭔가 선물다운 선물을 받고 싶다고 한 건데 말이다). 나는 그쯤에서 이 문제가 더 골치 아파졌다고 느꼈고 그냥 포기했다. 차라리 상담사가 해결책을 주지 않았다면 나았을 것이다. 그럼 그냥 그 지점에서 '에이 꺼져'하고 헤어졌을 테니.
이런 식으로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가중되기만 하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결국 어떻게 해봤자 생각이 많은 머리를 부여잡고 하루하루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은 변하지 않았고 나는 심리상담을 중단했다.
하지만 5년 간의 심리상담이 내게 남겨준 게 없지는 않았다. 한 가지 교훈은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도와주려고 애써도 결국 내 삶은 내 손에 달려 있다는 거였다. 아주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는 이곳저곳에 도움을 청할 때 이 당연한 사실을 잊어 버린다. 아무리 심리 상담 선생님이 좋은 조언을 해줘도 내가 그 조언을 실천해서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생각이 없다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대신, 심리 상담은 내게 응급 치료와 같은 역할을 했다. 내가 정말 심각한 상황에 있을 때, 예를 들면 끔찍한 충동에 시달리거나 실제로 스스로에게 크든 작든 해를 가하고 있을 때 상담 선생님과의 관계는 도움이 되었다. 내가 한창 불안한 상태일 때 여기로 연락해도 된다며 개인 연락처까지 공유해 준 선생님께는 늘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 점점 가라앉아가는 내 삶 속에서 갈피를 잡아야 할 때, 필요했던 건 마음가짐의 변화였지 심리상담이 아니었다.
최근 6개월간 내 마음가짐은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맨날 누워만 있었는데 요즘은 미라클모닝을 실천하며 새벽 5시에 일어나고 아침마다 2시간씩 운동을 하고..." 이런 게 아니라, 생각 많은 나 자신을 그냥 받아들이게 되었다. 예전에는 '생각이 너무 많아서 괴로워, 왜 이런 온갖 생각을 하는 거지? 제발 좀 단순하게 살고 싶다'라며 머리를 쥐어뜯었다면, 이제는 '생각이 정말 많군'이라는 생각에서 더 나아가지 않으려 한다. 왜냐하면, '단순하게 살고 싶어'라며 이런저런 생각을 더하다 보면 진짜 생각이 너무 많아서 어찌 할 줄을 모르겠는 지경으로 빠지기 때문이다. 그저 담담하게 내 상태를 받아들이기. 그게 내가 현재에 도달한 단계다.
'머릿속을 조용하게 하는 법'을 이곳저곳 물어봤지만 결국 그 방법은 내 안에 있었던 셈이다. 머릿속을 조용하게 하려면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생각부터 하나둘씩 '전원을 꺼야' 한다. '생각이 너무 많군'이라고 이 상황을 일단락시키고 마음의 평정을 찾는 것, 아니 평정을 찾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마음 상태가 더 악화되는 걸 막는 것, 그게 5년에 걸쳐 내가 이뤄낸 성과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상태에 2년 전에 도달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2년 전에 정말 최악의 생각 홍수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2년 전, 나는 한창 해야 할 일이 많아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 2편에서 계속